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인 5월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열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국민허그’ 행사에 참석한 두 사람이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지난해 5월 집권 직후 ‘1호 인사’로 그를 중용한 문재인 대통령은 1년 남짓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두터운 신임을 주는 듯 보인다. 조 수석은 대통령의 비서관 신분임에도 ‘청와대 발’ 헌법 개정안 발표(3월19~21일),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발표(6월21일) 등 주요 현안을 다루는 공개 석상에 ‘주연급’으로 나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직접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는 “역대 어느 정부의 민정수석도 감히 해보지 못한 일”(전직 검찰 고위 간부)을 자연스럽게 한다. 그렇게 해도 될 만큼 비중과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 대통령의 ‘법무 참모’로서는 어떨까. ‘서초동’ 쪽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조 수석의 직무와 밀접한 최근 일련의 현안들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7~8월 전기요금 한시 인하와 관련한 대통령의 직접 지시, 국군기무사 해편, 청와대 일자리 비서관실 행정관의 ‘직권남용성’ 전화, 검찰 인사 등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①대통령의 “너무 나간” 전기요금 인하 지시
“7월과 8월, 두 달 간의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해 한시적 누진제 완화와 저소득층, 사회복지시설 등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 확대 등 전기요금 부담 경감 방안을 조속히 확정해 7월분 전기요금 고지부터 시행해주기 바랍니다.”
지난 8월6일,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기요금 인하를 ‘지시’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막강하니까, 전기요금 정도는 맘대로 올리거나 내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 대통령의 이런저런 지시도 “법령에 따라”(정부조직법 제11조) 이뤄져야만 적법하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법적 책임이 야기될 수 있다.
전기요금은 ‘전기판매사업자’인 한국전력(한전)이 만드는 ‘기본공급약관’에 포함된다. 한전은 이 약관을 작성 또는 변경할 때 반드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장관이라고 해서 맘대로 인가를 해줘서는 안 되고, 산업통상자원부 안에 설치된 전기위원회의 심의가 필수다. 전기사업법과 한국전력공사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그러니까 이 절차에 따라 7~8월 전기요금을 인하하려면 한전의 약관 변경 신청→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 여부) 판단→전기위원회 심의→약관 변경 순서를 밟아야 적법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런 법적 절차와 직접 관련이 없는 대통령이 ‘7~8월 전기요금을 깎아주고 7월분 고지서부터 반영하라’고 지시를 한 것이다. 이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대통령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전기요금 부담 경감 방안 마련을 ‘적극 검토하라’는 정도에서 멈췄어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인하 방안과 시기까지 공개적으로 특정해서 지시했다. 너무 나간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행정감독권 행사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정감독권 행사도 법령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전기요금 문제는, 대통령이 검찰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반드시 법무부 장관을 통해야 하는 것과 구조가 비슷하다.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을 통하든지 해야 하는데, 직접 지시한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은 법적으로 그럴 권한이 없다. 수십 년 계속된 관행도 법에 맞지 않으면 처벌해온 것이 이 정부의 기조가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 케이티(KT)에 특정 인사의 채용을 요구한 것이 ‘경영진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방해했다’고 해서 유죄가 인정된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ㄱ)
자칫 잘못하면 문 대통령의 배임 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다. 요금 경감이 한전의 매출 감소와 직결돼 있어서다. 더욱이 한전은 증시에 상장된 회사이고, 전기요금 인하 논란 당시 주가가 빠지기도 했다.
“주주들이,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한전 사장을 배임으로 문제 삼으면, 전기요금 인하를 지시한 대통령도 배임의 공범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퇴임 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대통령 입에서 저런 워딩이 나오기 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느 정도 수위로 말해야 하는지 미리 스크린하는 것이 청와대 법무참모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한 검사)
②국군조직법 위반한 안보지원사 검사 파견
기무사를 해편-해편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한다면서 청와대가 마련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대통령령)의 특징 중 하나는 내부 감찰 강화다. 이를 위해 군인이나 군무원이 아닌 민간인이 감찰실장을 맡을 수 있도록 대통령령을 새로 만들었다. 안보지원사령 제7조2항을 보면 “감찰실장은 2급 이상 군무원, 검사 또는 고위감사공무원으로 보한다”고 돼 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검사를 감찰실장에 앉히고 싶어 했다. 대통령령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언론에 그렇게 알렸고, 지난 7일 안보지원사 창설준비단 법무팀장에 이용일(50)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을 임명했다. 법무팀에는 이 지청장 말고도 그 아래로 2명의 검사가 더 파견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이런 결정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우선, 국군조직법 위반이다. 국군조직법은 “국군에 군인 외에 군무원을 둔다”(제16조)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군부대에는 군인과 군무원만 근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군을 개혁하고 싶어도 각 군 참모총장에 민간인을 임명할 수 없는 근거조항이다. 안보지원사 역시 군부대이므로 이 조항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안보지원사령은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에 불과하다. 이렇게 국군조직법을 위반한, 다시 말해 ‘위법한’ 안보지원사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여러 언론이 지적했지만, 청와대는 제대로 된 해명 한마디 없이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아는 청와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용일 법무팀장 인사는 감찰실장 보임을 염두에 두고 한 인사”라며 “이번엔 사정이 급해서 그렇게 됐다. 정기국회에서 국군조직법을 개정하면 된다”고 했다. 정기국회에서 개정 입법이 안 되거나 늦춰지면 하위 법령에 불과한 안보지원사령이 국군조직법을 위반하는 ‘위법’ 상황이 지속될 수 있는 데도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다.
게다가 검찰의 영향력 줄이기 위해 타 기관 파견을 축소하겠다는 이 정부의 방침도 스스로 어겼다. 법무부는 지난 달 13일 하반기 검사 인사를 단행하면서 “검사 외부기관 파견 시 파견 요건 충족 여부를 엄격히 심사, 국정원 등 4개 기관(국정원, 감사원, 통일부, 사법연수원) 파견 검사를 6명 감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전체 파견 검사는 이번 인사 전 46명에서 41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새로 검사만 3명, 그것도 기존에 없던 자리를 만들어 파견을 보낸 것이다. 청와대는 일회성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검사 말고 적임자를 찾아보기는 했을까. 이러고도 ‘검찰 공화국’ 운운할 수 있을까.
“굳이 검사를 데려다 쓰고 싶으면 국군조직법부터 손 보고 나서 인사를 하는 것이 맞다. 안보지원사령이 명백한 국군조직법 위반인데도 청와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
③‘직권남용’ 전화 건 청와대 행정관 방치
청와대에 근무하는 정한모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경기도 산하 한 공공기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갑질’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 행정관은 전화를 받은 직원이 “제가 말씀드리겠다”며 민망한 듯 웃자 “지금 웃음이 나오냐”, “이 양반이 지금 나랑 장난하고 있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그쪽이 통화한 내역, 주고받은 문자 다 한번 볼까요?”, “원의 사업 한번 다 떠들어(들추어) 볼까?”라고 노골적인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통화가 이어진 9분36초 동안 전화를 받은 기관 직원이 모두 17차례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하니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적지 않은 언론이 정 행정관의 고압적 언사에 주목해 ‘전화 갑질’을 제목으로 뽑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정 행정관은 “공공기관 갑질 근절 차원, 일자리 차원에서 제가 간담회 등을 통해 개별 제보받은 내용을 조사한 것”, “본질은 이게(자신의 고압적 태도) 아니라 공공기관의 불공정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그 대목이다. 정 행정관의 행동은 직권남용의 소지가 짙다. 설령 그가 문제 삼은 계약이 불공정 계약이라고 해도, 정 행정관은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할 법적 권한이 없다. 그 점은 일자리수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제보받은 내용이 있다면 경기도청이나 해당 기관 감사실에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청와대 행정관이 개인 정보와 기관 예산 운운하는 건 협박이라고 느꼈다. (정 행정관의 전화는) 권력 사유화이자 공적 권력의 남용”이라는 공공기관 직원의 말은 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정 행정관이 전화를 건 시점이 지난 6일, 기사 나온 시점이 11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정 행정관을 감찰 차원에서 조사했다거나 그의 소행에 걸맞은 ‘조치’를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감찰 조사를 해서 응분의 조처를 해야 할 사안이다. 민정수석실의 첫번째 임무가 청와대 내부 감찰과 근무 기강 확립이라는 점은 조 수석도 잘 알텐데….” (과거 민정수석실 근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
조국 민정수석은 막후 조율에 그쳤던 역대 민정수석들과 달리 공개석상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6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을 마친 조 수석(오른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을 마친 뒤 서명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④“구관이 명관?”…‘도돌이표’ 검사 인사
올해 6월과 7월, 두 차례 이뤄진 검사 인사를 두고는 지금도 뒷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6월19일 고위 간부 인사, 7월13일 검사 인사를 각각 발표했는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고위 간부 인사 직전인 6월18일 오후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를 하며 인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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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과거 정부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은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럿 인사 조처돼왔다. 하지만 일부 논란이 된 검사들은 여전히 승진하고 주요 보직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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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장관: 그렇다. 그런 점을 인정한다. 그동안 중간중간 원포인트 인사로 과거에 문제된 사건과 관련된 검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다만 검사장 이하 인사에서 잘못된 경우가 한 두 자리 있었다. 수백 명 인사를 움직이다 보니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검찰 고위 간부와 검사 인사는 이 인터뷰 이후에 이뤄졌다. 그럼 그 뒤에 이뤄진 두 차례 인사에서는 ‘잘못된 경우’, ‘놓치는 경우’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기자가 앞서
법조외전(31) ‘뒷말’ 가시지 않는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지적한 것 말고도 문제적 사례는 계속해서 발견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3월부터 청와대의 ‘하명’을 받은 검찰은 포스코 경영진의 비리를 캔다며 반년 이상 수사를 이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피의자와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정준양 전 회장 등이 기소됐다. 그러나 1,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다. 검찰 수사가 무리였다는 방증이다. 그럼 당시 이 수사의 주임검사이던 조상준(사법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어떻게 됐을까.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그는 우 전 수석이 건재하던 2016년 4월 검사를 사직하고 방위사업청 초대 방위사업감독관으로 갔었다.(이 인사의 배경은
우병우, 군 고위직 2명 쳐내고 ‘자기사람’ 꽂았다는 <한겨레> 기사에 나와 있다) 그랬던 조 검사는 지난 4월 2년 임기를 마치고 대구지검 검사로 ‘조용히’ 복직한 뒤 7월 인사에서 전국 검찰청 석순(蓆順) 2위인 부산지검의 2차장으로 발령 났다. 2차장은 특수부 등 인지 부서를 총괄 지휘하는 요직이다.
여기서 잠깐, 법무부가 7월 인사 당시 내놓은 보도자료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의 첫 번째 특징으로 ‘검찰 인권보호 기능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내세우면서 대검에 인권부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검 인권부에 인권수사자문관 5명을 배치하여 특별수사 등 검찰의 주요 수사에 대하여 ‘악마의 변호인’ 또는 ‘레드팀’의 입장에서 자문함으로써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확보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사후 검증이 아니라 실시간·동시 검증을 통해 인권 침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반년 넘게 수많은 사람을 강제로 수사하고도 1, 2심에서 연거푸 무죄를 받은 수사 책임자를 요직에 발탁하면서 동시에 인권보호 기능을 강화했다고 자평하는 검사 인사의 이 ‘오묘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검찰은 2014년 말 <세계일보>의 보도로 불거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수사하면서 문건의 ‘내용’ 확인은 배제한 채 ‘유출’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전 경정만을 기소했는데, 이어진 재판에서 조 전 비서관은 무죄, 박 전 경정은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이 역시 잘못된 수사였다는 점이 재판을 통해 입증된 셈이다.
특히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전 경정과 당시 사건 수사검사 등 관련자를 불러 조사하겠다”고 <한겨레>에 밝힌 바 있다. (
조국 민정수석 “정윤회 문건 수사 검사 등 불러 조사”)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조 수석의 다짐은 흐지부지 실종됐고, 당시 이 사건 주임검사였던 임관혁(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동기들이 선호하는 천안지청장에 보임됐다.
‘박근혜 정부 검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우병우 수사다. 검찰은 꼭 2년 전 우병우 민정수석와 그 처가 관련 각종 의혹,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동시에 수사한다며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했었다. 우 전 수석의 연수원 동기이면서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의 대표 격인 윤 전 고검장이 이 수사를 어떻게 했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그런데 그 팀에서 수사 실무를 총괄했던 김석우(연수원 27기)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순천지청 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 사건들이 하나 같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해하고 국민의 신뢰를 끌어내린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역설적인 인사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적 사례는 그뿐이 아니다. 2016년 5월 서울남부지검에서 검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형사2부에 근무하던 김홍영 검사가 부장의 폭언과 인격 모독을 견딜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인 김아무개 부장은 결국 대검 감찰을 받고 징계위에 회부된 뒤 해임됐다. 당시 김진모 남부지검장은 총장 경고를 받았는데, 부장과 지검장 사이에 있던 조상철(연수원 23기) 차장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무부의 핵심 요직인 기획관리실장에 발탁된 뒤 지난 6월 인사에서 대전지검장으로 전보됐다. 역시 잘 나가는 자리다.
“2012년 서울동부지검에서 일어난 초임검사의 피의자 성폭행 사건 때 간부들을 어떻게 했나. 대검이 석동현 지검장의 사표를 받고, 1·2차장은 고검으로 날렸다. 멀쩡한 검사가 상관의 폭력 때문에 자살했는데, 당시 차장에겐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계속 좋은 보직을 준다는 게 형평에 맞는 일일까. 관리 책임은 차장에게도 물어야 맞다. 신상필벌은 어느 조직에나 중요한 원칙 아닌가. 반면에, 사건 처리 등에서 뚜렷한 잘못이 드러난 것도 아닌데 단지 공안을 오래 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법무부가) 사표를 받은 이상호 전 대전지검장이나 계속 지방으로 돌리고 있는 윤웅걸 전주지검장의 경우와도 너무 대비된다.” (한 부장검사)
⑥‘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라야 요직 맡는다?
이번 검사 인사를 보면 이전 정권 인사에선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특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에서 주요 인지 사건 수사를 지휘하거나 보고받는 핵심적인 자리에 모두 청와대 행정관 출신들이 배치된 것이다.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법무부 최고 요직인 검찰국장에 기용된 윤대진 검사장(연수원 25기)은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4월부터 1년 반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당시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이번 인사에서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앙수사부장)에 임명된 이성윤 검사장(연수원 23기) 역시 2004년 3월부터 1년 남짓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 여기에 한동훈(연수원 27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유임되면서, 특별수사 관련 3개 핵심 보직에 모두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임명되는 초유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한 차장 역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9월부터 만 2년간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바 있다. 세 사람 모두 검사직을 그만 뒀다가 청와대 근무가 끝난 뒤 복직했다.
검찰과 검사의 정치적 중립을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라고 하기엔 아이러니다.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지낸 한 변호사는 “검찰 역사에서 청와대에 파견 다녀온 검사들로 이 3개 자리를 모두 채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도 없던 인사”라며 “개개인이 검사로서 훌륭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인사를 이런 식으로 하면 후배들에게 ‘청와대를 다녀 와야 출세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대통령의 의중 파악이 체질화됐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과거에도 주요 포스트를 청와대 근무자들로 채우는 인사는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인사를 놓고 왜 조 수석 탓을 하는지 의아해 하는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조 수석은 이번 검찰 인사에 깊숙이 관여했다. 검사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비서관 자격으로다.
“조 수석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결국 검사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인사 원칙에 맞는 인사인지 아닌지를 충분히 살피고, 합당하지 않은 인사라면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걸러내는 것이 민정수석의 역할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ㄷ)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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