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 아무렇게나 치는 피아노음에서 위안을 받고 있는 나는, 요즘에야 그의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90년대생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딸이 악기 하나쯤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맞벌이 때문에 방과 후에 시간 때울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피아노학원은 단출했다. 10대 남짓한 피아노는 얇은 합판으로 구분된 독방에 한 대씩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합판이 얼마나 얇았냐면, 옆방에서 피아노를 치는지 아니면 농땡이를 치는지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선생님은 독방 문에 난 작은 유리창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피아노 연습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했다.
나는 선생님이 악보 위에 그려준 포도알(연습곡을 한번 칠 때마다 채워나가는)을 채우기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굳이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들과 못 치는 아이들을 구분하자면, 나는 못 치는 쪽에 가까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음악을 느끼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과, 선생님에게 혼나는 게 싫어 억지로 건반 순서를 외워 치는 것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았다. 웬만큼 연습하면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모두 대상을 주는 동네의 흔한 피아노 연주회에서도 나는 대상이 아닌 금상을 받았다.
피아노에 조금씩 흥미를 잃다 보니 독방에서 점점 더 농땡이를 치는 시간이 늘어났다. 포도알 15개를 채워야 하는데, 일단 10분 정도는 의자에 앉아 멍을 때렸다. 피아노를 못 치는 아이들은 악보 중에서도 맨 앞장만 너덜너덜했다. (수학 못하는 아이들이 ‘수학의 정석’ 교재 중에 ‘집합’ 부분만 손때가 묻는 원리와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연습이 끝나고 했던 화음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알파벳도 잘 모르는 아이가 화음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리 만무했다. 화음 공부 시간에는 거의 대부분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초등학교 6학년. 피아노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엄마를 조르고 졸라 피아노학원을 그만뒀다. 당시 아빠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가격의 피아노를 구매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참이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배운 게 아깝지도 않으냐”며 나를 다그쳤지만, 이미 내 마음은 돌아선 뒤였다. 원장 선생님에게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하고 학원 문을 나서던 그때 나는 거의 인생 최초의 해방감을 맛봤다. ‘더 이상 독방에 갇혀서 포도알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후로 더 피아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큰맘 먹고 산 피아노는 그야말로 ‘비싼 장식품’으로 전락했고, 그 이후로 악기 연주는 내 인생에서 없는 일이 됐다.
15년 만에 다시 산 피아노
잊었던 피아노를 자취방에 들인 건 15년 만의 일이다. 6개월 전, 미니멀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어서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찬 비좁은 자취방 한구석에 작은 디지털피아노를 들였다. 상담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 거칠고 잔혹한 세상에서 직장인으로 살아남은 지 5년이 되던 올해를 기념해 한 상담센터에서 심리검사를 했었는데, 진단지에서 ‘우울 지수’가 매우 높게 나왔다. 알게 모르게 화가 쌓였다고 한다. 상담사는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누굴 만나거나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은 아니라고 했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만드는 게 좋은데, 가급적이면 악기를 연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이었다.
악기 연주?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봤던 것이 피아노였다. 마침 유튜브에서 정재일이 피아노를 치는 영상을 봤는데,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이긴 했다. 마침 영화 <라라랜드>에서 나오는 사운드트랙의 건반 음이 듣기 좋긴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긴 한데, 내가 실제로 치면 더 재밌을까?’ 더는 포도알을 그리지 않고 연습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가격만 놓고 보면 피아노 연주는 다른 취미보다 진입장벽이 높았지만, 일단 3개월 무이자 할부로 디지털피아노를 결제했다. 할부가 아까워서라도 한 3개월은 열심히 치지 않을까 하는 얕은수도 없진 않았다.
15년 만에 마주한 피아노는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손은 달걀을 쥔 것처럼 동그랗게.’ ‘건반은 손끝으로 가볍게.’ 초등학생 때 독방에서 홀로 읊조렸던 주문을 수없이 소환했지만, 마음과 손가락은 신나게 따로 놀았다. 일단 낮은음자리표 계이름이 읽히지 않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심정이 이런 기분일까.’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한 나머지 왼손 건반의 악보에 계이름을 다 적기 시작했다. “도… 파… 솔… 시….” 그제야 조금씩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낮은음자리 계이름이 조금 익숙해지자 이제는 올림표(샤프)와 내림표(플랫)의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직장생활에서 쌓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굳이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겠다고 결심한 건데, 오히려 분노가 더 쌓이는 느낌이었다.
‘포도알의 공포에서 벗어나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겠다.’ 피아노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마음먹었던 호기로운 결심은 결국 할부가 끝나는 3개월을 채 가지 못했다. 악보엔 먼지가 쌓였고, 좁은 자취방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났다. ‘처분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피아노의 중고가격을 검색하며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시작했다. 참고로 애인은 나와는 달리 중학생 때부터 기타와 피아노를 꾸준히 연습해온 실력자다.
“나는 악기 연주랑은 인연이 없나봐. 이제는 피아노를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야.”
“너무 잘 치려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냐? 하루에 10분씩만 연습해도 꾸준히 하는 게 더 나아.”
이 무슨 공자님 같은 말씀이신가. 더 이상 손가락 때문에 화병을 얻을 순 없다는 내게 애인은 일단 진정하라며 카카오톡으로 ‘짤’을 하나 보내줬다.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였던 노엘 갤러거가 2010년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건 직업을 위한 활동이 되면 안 돼. 네가 즐거워서 하는 게 돼야지. 그리고 한 5년쯤 지난 뒤에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해도 시발 뭐 어때? 그냥 구석탱이에 세워놓기만 해도 멋지잖아?”
나는 이 짤을 본 뒤 조용히 중고거래 사이트 창을 닫았다.
‘아무연주대잔치’의 편안함
‘재능이 없어도 뭐 어때?’ 욕심을 버리니 그제야 마음의 벽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악보를 죽도록 쫓아가기보다는 샤프와 플랫이 없는 악보부터 천천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가끔 악보를 보기 싫은 날에는, 마치 작곡가가 된 것처럼 나 혼자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며 말도 안 되는 멜로디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화음의 원리도 잘 모르는 내가 ‘아무 연주 대잔치’를 하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악보를 보면서 조금 연습하다가, 도저히 아닌 것 같으면 다시 마음대로 뚱땅거린다. 15년간 나를 괴롭혔던 ‘포도알의 압박’에서 비로소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지난 7월23일 세상을 뜬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여러 지식인들과 나눈 대화를 엮어 2010년에 낸 책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의 표지에는 첼로를 켜는 고인의 사진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를 통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으냐”는 물음에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답했다. 모든 사람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아무렇게나 치는 피아노음에서 예상치 못한 위안을 받고 있는 나는, 요즘에야 그의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