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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요? 저희가 ‘구출’해드리겠습니다

등록 2018-09-15 09:15수정 2018-09-17 10:06

[토요판 커버스토리] 성범죄 변호 ‘산업’은 성업 중
▶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가해자들을 전문으로 변호해주는 로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광고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들을 의뢰인으로 유치한 뒤, 각종 ‘전략’을 구사해 의뢰인이 무죄나 기소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성범죄 변호 ‘산업’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회사 대표인 ㄱ씨(남성)는 회사 대리인 ㄴ씨(여성)와 2016년 9월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ㄱ씨는 호텔에서 ㄴ씨와 술을 마시던 중, ㄴ씨의 어깨와 손을 주무르고 볼에 입을 맞췄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ㄴ씨는 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적은 문서를 ㄱ씨에게 제시하며 항의했고, ㄱ씨는 문서에 ‘위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조치를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을 손으로 적고 서명했다. 그 다음날엔 ‘피해자가 겪은 불쾌한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원치 않는 언행과 강압으로 인해 피해를 준 점, 정신적·육체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한 점을 거듭 사과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ㄴ씨에게 보냈다.

하지만 ㄴ씨는 ㄱ씨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ㄱ씨는 ‘성범죄 전문’으로 유명한 로펌을 찾아갔다. 담당 변호사는 ㄱ씨에게 받은 ㄴ씨와의 카카오톡 대화내역 가운데 ‘두 사람이 평소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추려 증거로 제출했다. 법정에서는 “ㄱ씨가 문서에 서명한 것은 문서의 진위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 것이다. 서명 직후에 곧바로 반박 메일을 작성해 인사 담당자에게 보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ㄱ씨가 ‘피곤하지 않냐’며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지만 벌써 뒤에 와서 내 몸을 마사지 하고 있었다”, “ㄱ씨가 손마사지를 잘한다고 하면서 손을 주물러서 계속 이런 것은 싫다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7월 “피고인이 피해자가 작성해 온 문서의 내용을 모두 인정해 서명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일단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직원이 자신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빨리 사건을 정리하고 해결하기 위해 인정했을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담당 변호사는 자신의 로펌 홈페이지에 이 사건을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에 곧바로 의뢰인에게 항의하고, 회사 쪽에 항의 메일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며 의뢰인조차 항의문서에 서명하는 등 매우 불리한 정황이 많았다. 하지만 담당 변호사는 우선 피해자와 의뢰인 사이의 관계에 집중해 평소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추행이라는 상황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사건 발생부터 고소 시점까지 오래 걸렸다는 점에 착안해 변론을 했고, 그 결과 무죄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로펌의 홈페이지에는 성범죄 혐의를 받은 의뢰인에게 무죄나 기소 유예 등을 받아준 1800여건의 ‘성공 사례’가 소개돼 있다.

서울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ㄷ씨(여성)는 최근 직장 회식자리에서 상사(남성)로부터 추행을 당했다. ㄷ씨의 문제제기로 상사는 회사에서 해고 됐다. ㄷ씨는 상사를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전에 상사 쪽 변호사가 연락을 해왔다.

“고소를 하면 경찰 조사도 받아야 하고, 법정에도 나가서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해야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 의뢰인도 정말 미안해하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드릴테니 합의하시죠.”

‘고소 전에 미리 합의를 유도해 고소조차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영업전략’이었다. 하지만 ㄷ씨는 상사를 고소했다. 그러자 상사 쪽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피해자의 ‘평소 사생활’을 언급하고, ‘피해자답지 않다’고 주장했다. ㄷ씨는 아직 상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가해자 쪽만 변호하는
성범죄 전문 로펌 증가세
‘성공사례’ 내세워 인터넷 광고
네이버 파워링크에만 77개 업체

‘억울한’ ‘오해’ ‘한순간 실수’ 등
가해사실 왜곡하는 광고 문구
‘구출 시스템’이라는 표현까지
광고 문구 규제 법안 발의돼

“사과 말라, 카톡 메시지 수집하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라” 등
의뢰인에게 대응 전략 짜줘

기소유예 받아내는게 변호사에 최선
피해자가 합의하도록 심리적 압박
합의 안하면 무고 등 역고소 협박도
“역고소하면 사건 늘어 밑져야 본전”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강화”
2차 피해, 고소 남용 제재 필요 지적

“몇년 전에는 한두개였는데…”

변호사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몇년간 ‘성범죄 전담’을 내세우는 로펌(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등)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런 로펌들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아닌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변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범죄에는 강간, 추행 등의 성폭력, 카메라 불법 촬영, 성매매 등이 포함된다.

한 변호사는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업체가 1~2개에 그쳤는데 최근에는 최소 50개를 훌쩍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성범죄’로 검색을 하면 ‘파워링크’ ‘파워컨텐츠’ ‘비즈사이트’ 등 광고코너에 줄줄이 로펌들의 목록이 뜬다. 이중 파워링크 코너에 있는 업체만 77개(14일 기준)에 이른다. 업체 이름 아래에는 ‘성범죄 무혐의, 무죄 성공사례’ ‘성범죄 전담’ ‘성범죄 형사 전문’ ‘성범죄 수천건 성공사례’ 등의 설명이 달려있다. 현행 규정상 공식적으로는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업무 광고 규정에 따라 전문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만이 ‘전문’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데, ‘성범죄’라는 전문분야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범죄 전담’ ‘성범죄 형사 전문’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변호사들이 성범죄 변호 업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은 로스쿨 도입 등으로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수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만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과거 변호사 선임에 소극적이었던 카메라 불법촬영, 성매매 범죄 관련 당사자들도 변호사를 적극 선임하는 추세다. 특히 ‘미투 운동’(나도 고발한다) 확산으로 성범죄 관련 고소·폭로가 늘면서 ‘시장’이 더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성범죄 가해자 쪽 변호를 담당해본 한 변호사는 “가해자가 혐의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엔 무죄 입증이 가능할 경우에만 사건을 맡는다. 무죄 입증이 어려워 보이면 혐의를 인정하게 하고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며 “성범죄는 의외로 사건들의 특징이 전형적이고 기계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해 실제 업무량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것을 유도함으로써 수임료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점도 변호사들에게는 ‘매력적’인 점이다.

2차 피해 부르는 광고문구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 성범죄 전문 로펌들의 광고 내용, 변호 과정, 재판 전략 등에서 ‘2차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충동적인 호기심이나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성범죄 혐의가 언제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도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성범죄 혐의를 받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법무법인 ㅎ)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인 ‘피해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자칫 피의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수사가 흘러갈 수 있고, 억울한 성범죄자를 만들 수도 있다.”(법무법인 ㄱ)

“생각보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는 가까운 연인 사이나 부부사이일지라도 성립 될 수 있다. 오해로 인해 또는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성범죄 사건에 연루됐다면 성범죄 전문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아라.”(법무법인 ㅎ)

성범죄 전문을 표방하는 로펌들의 이런 광고 안에 들어있는 ‘억울한’, ‘오해에서 비롯된’, ‘한순간의 실수’ 등의 문구는 성폭력 가해 사실을 왜곡·은폐하고, 피해자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가해자에게 접근했다는 식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ㅇ법인은 공식 블로그에서 ‘구출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의 ‘구출시스템’은…만약 자신의 혐의가 명백하다면 범죄에 대해 어떻게 인정하는지, 피해자에게 어떤 식의 태도를 보이는지 등에 따라 최대한 합의를 보거나 기소유예 혹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수사단계에서는 불기소 처분 유도, 합의시에는 불기소처분 또는 경미한 처벌 유도, 구속됐을 경우에는 불구속 수사나 불구속 재판 유도, 재판단계에서는 무죄나 선고유예·집행유예를 받아내겠다.” 이처럼 성범죄가 처벌 대상이 아닌 구출 대상이라는 인식을 표출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는데, 이 남성은 과거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피해자와 끈질기게 합의를 시도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의뢰인과 합의하에 한 성관계의 상대방이 고등학생이었던 사건이었는데, 저희 법인의 진정성있는 설득 끝에 결국 상대방은 고소를 포기했다.”

ㄱ로펌이 성공사례라며 직접 블로그에 올린 사례들이다. 이런 광고들은 가해자에게 ‘범죄를 저질렀어도 변호사만 잘 만나면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가해자 변호인의 소위 ‘무죄와 감형 전략’은 이전에도 있어 왔지만,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에 두드러지는 현상”이라며 “단순 ‘방어’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대담하고 적극적인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광고가 증가함에 따라 최근 국회에서는 성범죄 관련 변호사 광고의 문구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대표발의한 ‘변호사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변호사 등의 업무광고 내용이 성폭력범죄 피의자·피고인의 법률적 조력을 위한 것일 때에는 성평등 관점에 따른 건전한 성의식에 합치되는지,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격이나 명예를 손상하지는 않는지에 대해 (대한변협) 광고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게재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도록 했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 광고에서 객관적 사실을 과장하거나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내용, 변호사의 품위를 훼손하는 내용 등만 규제하고 있다. 추혜선 의원은 “일부 법무법인이 성범죄 가해자의 변론을 맡는 광고를 하면서 성폭력범죄피해자의 인격과 명예를 손상시키고 2차 피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싣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심사를 거치게 함으로써 성폭력범죄 피해자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여성단체들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남발을 멈추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명 연예인 박 아무개씨의 성폭력 사건 2차 고소인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죄는 무죄로 최종 판결났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여성단체들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남발을 멈추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명 연예인 박 아무개씨의 성폭력 사건 2차 고소인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죄는 무죄로 최종 판결났다. 연합뉴스
“한순간의 실수” 강조하라?

일단 광고를 통해 의뢰인을 유치하면 성범죄 전문 로펌들은 대응 ‘전략’을 세워준다. 로펌에서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말라’는 것이다. “사과를 하면 범죄를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증거가 돼 재판 결과를 뒤집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보화 연구원은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다보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던 가해자들이 변호사를 만나고 온 뒤 돌연 자신이 했던 사과는 공갈, 협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발뺌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 마음을 움직이라”는 조언도 한다. 성범죄 전문 로펌의 ㄹ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은 대부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고 당사자만 아는 일이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리면 배심원단 심증을 흔들 수 있다”며 “피의자가 국민참여재판에 나갈 때 입는 옷 하나, 장신구 하나까지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준다”고 말했다. 또 “‘나는 억울하다. 유죄를 받게 되면 직장, 가정까지 다 잃는다’고 동정심에 호소하면 배심원들도 마음이 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국민들은 ‘우리나라는 형량이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막상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되면 억울한 사람을 유죄로 만드는 건 아닌지, 형량이 과한 건 아닌지 큰 부담을 느낀다”며 “가해자가 ‘한 순간의 실수였고, 반성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직장도 가족도 다 잃었다’고 하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이 신청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지는 판사가 결정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강제조항은 아니다. 대법원도 2016년 “성폭력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배제 결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시한 적 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들은 또 “모든 단계에서 변호사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ㄹ변호사는 “가해자를 상담하게 되면 직장 내 조사위 등 출석은 최대한 미루고 변호사 상담 이후 출석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는 변호사와 동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성범죄 전문 로펌은 경찰 출석 등 모든 조사에 변호사가 동행해주고, 동행비를 따로 책정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의뢰인이 평소에도 친밀한 관계임을 입증하기 위해 범죄 이전과 이후에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수집하고, ‘피해자답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들을 모아두라”는 조언도 한다. 김혜겸 변호사(법무법인 광안)는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하다보면 가장 전형적인 가해자쪽 논리가 ‘피해자는 문란한 여자다, 스킨십에 익숙하다’고 하거나 피해자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갈무리 해, ‘사건 이후에도 이렇게 잘 지낸 것은 피해자스럽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더욱 상처받고 ‘피해자스러움’을 강요당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한국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에 대한 피해자의 반격’을 주제로 모의법정을 열었다.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지난해 6월,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한국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에 대한 피해자의 반격’을 주제로 모의법정을 열었다.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협박 아닌 척 협박하는 게 능력”

성범죄 가해자 전담 로펌에서 가장 선호하는 결과는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않고 기소유예(죄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 처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하면 가해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범죄 전담 로펌의 ㅁ변호사는 “성추행 사건의 경우 아주 심각한 정도만 아니면,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하면 기소유예가 나온다”며 “로펌이 할 일은 피해자를 설득해 합의를 유도하고, 가해자가 착실하고 선량하게 살아왔다는 의견서를 써주는 것 정도인데, 이렇게 해서 기소유예를 받으면 건당 수임료가 500~1000만원 정도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업무량으로 보면 힘들게 무죄를 다투는 것보다 기소유예로 가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는 “가해자는 한번 성범죄자가 되면 10년간 신상정보가 등록돼 결혼, 취업, 가정생활 등 일상의 모든 일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돈을 많이 써서라도 기소만은 피하려고 한다”며 “가해자와 로펌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변호사비에 500만원∼1500만원, 피해자와의 합의금에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천만원 이상을 쓴다. 김혜겸 변호사는 “경미한 성범죄 가해자는 의외로 전문직 남성들이 많아서 수임료를 많이 내더라도 기소유예를 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성범죄 전담 변호사들의 주요 업무는 ‘피해자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된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경찰 조사나 재판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강조하고, 적당한 금액을 제시하며 합의를 하라고 설득한다.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역고소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실제론 협박인데 협박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이게 변호사의 능력입니다. 수사기관에 불려나가서 같은 이야기 계속 해야하고, 신상도 공개되는 등 앞으로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해주면서 차라리 돈을 받고 합의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합니다. 합의하는게 체력적·감정적 소모가 덜하다고 설득하는 거죠. 나도 피해자의 집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는데, 피해자는 변호사가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싫어해요. 그 자체만으로도 압박을 느끼는 거죠. 그러다 안되면 역고소를 이야기해요. 역고소는 변호사 입장에서 ‘밑져야 본전’이거든요. 합의 안되면 역고소해서 별도로 수임료 받을 수 있고, 합의가 되면 돼서 좋고요.”(ㄹ 변호사)

김보화 연구원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거나 합의 요구에 응하면 ‘꽃뱀’이 되고, 역고소를 당하면 자칫 ‘전과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윤리 차원의 규율 필요”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방어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가해자 입장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한 로펌 광고는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역고소를 부추기고 남용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변호사 윤리 차원에서의 규율과 자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명 변호사(법무법인 강호)는 “변호사가 할 일은 정당한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밝혀내고 피해 회복을 돕는 것인데, 이런 식의 성범죄 관련 광고와 변호 방식은 국민들에게 법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들고 ‘법기술적으로 꼼수를 써서 처벌을 회피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화 연구원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변호사 업계가 ‘시장화’되어갈 때, 많은 추가적 피해들을 양산할 수 있다”며 “변호사 교육연수에 인권, 젠더감수성 교육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은 “성범죄 전문을 내세우며 자극적인 문구로 광고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변호사의 품위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대한변협 차원에서 모니터링해 부적절한 광고에 대해선 시정조치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징계를 내리겠다”라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법률상담인줄 알았는데…광고였네

성범죄 전문 변호사 광고전략

“날이 좋은 날이어서 사람이 많았고 제가 지하철 성추행을 저지르게 됐어요. 지하철 성추행 혐의를 받고 경찰한테 조사를 받았는데요. 거기 목격자도 있어서 바로 피의자로 지하철 성추행 혐의를 받고 조사를 받았어요. 이런 경우에 지하철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나서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친구들 모르게 해결을 하고 싶은데요.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지하철 성추행 혐의로 처벌받고, 기소유예로 끝내고 싶은데 조언 좀 해주세요.”(네이버 지식인 상담글)

“지하철 성추행 혐의에 대해 범행 자백은 물론 반성하는 태도로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해결단계입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는 지하철 성추행 혐의를 받게 된 정황에 있어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지하철 성추행 혐의에 대한 재범 우려가 없음을 적극 주장함으로써 기소 전에 문제해결 가능성을 높여냅니다. 지하철 성추행 혐의 조사 동행부터 검사 면담, 변호인 의견서 제출까지 적극 조력을 받아 지하철 성추행 혐의를 받은 이후에 초기 문제해결을 해보시기 바랍니다.”(ㅇ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답변)

법률상담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광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특정 키워드가 글에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서다. 네이버 화면 갈무리
법률상담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광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특정 키워드가 글에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서다. 네이버 화면 갈무리
네이버지식인에 뜬 법률상담
알고보면 업체에서 만든 광고
‘지하철 성추행’ 등 키워드 반복
검색하면 상단에 걸리게 만들어

성범죄 가해자들 인터넷에 의존
검색광고, 바이럴마케팅 효과 높아
업체 비용 한달 평균 300만원
“한달 천만원씩 써도 남는 장사”

네이버 지식인에서 ‘지하철 성추행’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질문과 답변이다. 일반적인 법률상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질문에도, 답변에도 ‘지하철 성추행 혐의’란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하철 성추행’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마케팅 업체들이 쓰는 방법이다.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이럴 마케팅’은 노골적인 광고가 아니라 블로그나 카페 글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상품이나 기업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신뢰도나 인지도를 높이고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변호사 광고 시장 중에서는 특히 성범죄 분야에서 많이 활용된다.

성범죄 가해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관련 사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인 소개 등을 통해 변호사를 구하기 어렵다. 결국 혼자 인터넷 검색 등에 의존해 변호사를 구하게 된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들은 이런 사람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 전문 마케팅 업체에 의뢰해 비용을 주고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 카페 등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무소 이름이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업체들이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비슷한 제목과 내용을 담고 있다. ‘성범죄, 변호사 왜 필요한가’, ‘성추행 신상정보 등록되면’, ‘준강간, 불기소로 끝내야 한다’, ‘성매매 선처 가능하려면’, ‘지하철 성추행 조력 받아 대처하자’ 등 비슷한 제목의 글들을 일정 기간 매일 게시한다. 이런 글을 클릭해보면 성범죄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란 내용이 뜬다.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는 방식, 횟수 등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한달에 300만원 정도가 평균적인 비용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이런 방식의 홍보활동의 ‘선구자’ 격이었던 한 성범죄 전담 로펌의 관계자는 “로펌을 홍보했던 초기에는 마케팅 업체에 매달 1000만원 이상 돈을 냈다”며 “하지만 광고효과로 인한 사건수임으로 그 이상의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광고가 아닌 척’ 하는 광고도 많이 하지만, 포털의 공식 광고 코너에도 광고를 올린다. ‘파워링크’, ‘파워컨텐츠’, ‘비즈사이트’ 등의 이름을 달고 있는 코너들이다. ‘성범죄’, ‘성범죄 전문’ 등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변호사나 법무법인 목록이 뜬다. 이름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이들의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런 광고들은 이용자가 한번씩 클릭을 할 때마다 변호사가 포털업체에 돈을 지불하는 구조다.

13일 현재 네이버 키워드 광고의 경우, ‘성범죄 전문 변호’, ’성폭행’, ’강제추행 기소 유예’, ’성범죄 변호사’, ’성범죄 전문 변호사’ 모두 클릭 1번당 140원이었다. 한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네이버에서 검색을 한 뒤, 상단에 뜬 변호사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해당 변호사가 네이버에 140원을 낸다는 것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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