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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넉달째 구속영장 ‘0’…사법농단 수사 어디까지 왔나

등록 2018-09-17 11:42수정 2018-09-18 12:17

강희철의 법조외전 (35) 검찰 수사 중간점검

김명수 대법원장 ‘수사 적극협조’ 발언 뒤에도 영장기각 계속
임종헌 추석 이후 소환…수사초점 ‘재판거래’ 확인에 맞춰져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창설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읽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창설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읽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의 사법농단 사건 수사가 17일로 넉 달째에 접어들었다.

웬만한 사건 같았으면 진작 끝났을 시점인데, 이번 수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구속영장 청구가 단 한 건도 없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절반도 못 왔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과 비협조를 넘어선 ‘수사 방해’ 탓이 크다. 20명을 훌쩍 넘는 검사들이 투입돼 석 달 넘게 진행 중인 검찰 수사는 어디까지 왔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검찰의 속사정을 짚어봤다.

① “수사 적극 협조” 대법원장 발언 뒤 변화?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대한민국 사법부 70돌’을 기념하는 법원의 날 행사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부율 10%, 10개 청구하면 겨우 1개만 내준다는 압수수색영장 기각과 그에 따라 거세진 비판 여론을 의식한 말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월15일에도 “검찰 수사에 협조를 마다치 않겠다”고 다짐했었으니, 그 뒤 상황을 보면 낯이 뜨거워 울만 했다. 대법원장이 두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협조를 약속했으니, 무슨 변화가 있을까.

김 대법원장의 발언 다음 날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법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 중 하나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차명 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사무실에 대해서는 영장을 내주면서 ‘현직’ 판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불허했다. 주요 자료가 은닉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 압수수색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장 발언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사표시일까. 검찰 관계자는 “어떤 변화도 없다. 그냥 하던 대로 기각하고 있다. 대법원장 한 마디에 바뀔 거라고는 애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영장기각을 통해 ‘재판과 사법행정은 분리돼 있다, 대법원장 말에 우린 영향 받지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진작에 법원이 그런 자세로 일했으면 사법농단 사건 자체가 없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영장 법관들이 ‘매’를 벌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② 임종헌·박병대·양승태는 언제 소환되나?

최근까지도 임종헌 전 차장은 추석 연휴 전 ‘포토라인’에 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주요 소환자들 대부분이 임 전 차장한테서 ‘재판 거래’ 등과 관련한 각종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출석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은 추석 전 조사가 어렵다. 소환하기 전에 다져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진작 한 번 불렀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고 했다.

검찰의 입장 변화는 18~20일 ‘평양 정상회담’ 일정을 의식한 결과일 수도 있다. 검찰은 국가 중대사가 진행 중일 때, 특히 대통령의 일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쪽으로 쏠려야 할 여론의 시선을 서초동으로 가져오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 오래 전 일이지만, 2002년에도 그랬다. 검찰은 한·일 월드컵 전부터 김대중 대통령 아들 김홍업 씨의 금품 비리를 수사하고 있었지만, 월드컵 기간 전후에는 압수수색이나 소환 등 공개수사를 일절 중단했었다.

임 전 차장의 ‘윗선’인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소환 일정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세 사람 중에선 임 전 차장이 가장 먼저,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이나 양 전 원장과 관련해 임 전 차장에게 물어볼 것이 많다고 한다.

임 전 차장 조사는 여러 차례 검찰에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실무를 총괄한 임 전 차장은 한번 소환으로 조사가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1차 소환 뒤 신병 처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도 공개·비공개를 포함해 검찰에 모두 10차례나 소환됐다. 자신의 업무 수첩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실행하고, 관련 문건 수만 개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도 10여 차례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임 전 차장도 검찰에 ‘사실상 제출’한 유에스비(USB) 저장장치의 문건들과 관련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박병대 전 처장이나 양 전 원장은 사정이 조금 다른 듯하다. 검찰 관계자는 “그런 고위법관 출신을 (망신주듯) 여러 번 부르기는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은 수사가 정점에 다다를 무렵 검찰에 출석할 공산이 크다.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공개 소환된 ‘양승태 대법원’ 시절 고위법관들. 왼쪽부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서울고법 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법 부장판사).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공개 소환된 ‘양승태 대법원’ 시절 고위법관들. 왼쪽부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서울고법 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법 부장판사).

③ 검찰 수사초점 어디에 맞춰져 있나?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를 통해 상고법원을 둘러싼 ‘재판거래’가 실제로 기획·시도됐다는 사실은 상당 부분 확인했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의 유에스비(USB) 저장장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업무 수첩 등을 토대로 관련자들을 조사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등이 참석한 ‘삼청동 회의’ 등도 밝혀냈다. ‘지시-입안-시도’까지는 윤곽이 파악된 셈이다.

그래서, 현재 검찰 수사는 그다음 단계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판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려면 상고심 재판을 담당하는 대법관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재판연구관들을 움직여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을 읽어 보면, 목표가 뚜렷이 보인다. 그런 보고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실행하지도 않을 보고서를 만들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입장은 완강하다.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사법행정의 영역과 대법관-재판연구관들이 주축을 이루는 상고심 재판의 영역은 엄격히 분리돼 있어 재판거래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법관들은 재판거래라는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다.

반면 검찰은 재판 거래가 실행됐다는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 특정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와 재판의 결론, 그로 인한 파급 효과, 대법원의 유·불리까지를 다룬 행정처 작성 문건들이 이미 여럿 발견됐고, 일부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된 사실까지 확인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법관들이 ‘재판의 본질적 측면을 침해할 수 있다’면서 압수수색영장을 계속해서 기각하고, 대법원이 자료를 임의제출할 것처럼 하면서 지금껏 안 내놓고 있는 까닭은 재판거래의 실행을 입증할 보고 문서 등이 압수될 것을 우려해서라고 본다”며 “재판 거래가 사법 농단의 핵심인 만큼 반드시 실체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④ 검찰 수사 연말 안에 끝날까?

이번 수사에 투입된 검사는 17일 기준으로 27명을 헤아린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뒤 검찰의 특별수사 역량을 대표하는 서울중앙지검의 특수 1·3·4부가 모두 투입됐다. 검사가 3~4명만 관여해도 큰 사건이라고들 하는데, 근 6배가 넘는 대규모다. 증원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과거 검찰사에 족적을 남긴 2003~4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검사 숫자는 20명을 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이어진 ‘박연차 사건’ 때도 검사는 20명 전후였으니, 이번 수사를 대하는 검찰이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검찰 안에서는 농반진반 “조사받는 사람보다 조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8월~9월 초에 걸쳐 수사인력이 대폭 보강되면서 속전속결로 11월 말쯤이면 끝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있었다. 지난해부터 쉼 없이 지속해온 적폐 수사의 피로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제 상황, 법원과 검찰의 ‘갑을관계’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수사를 마냥 계속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기 증거인멸로 떠들썩했던 ‘유해용 사태’를 겪으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이전부터 계속된 법원의 영장기각이 검사들의 ‘전의’를 자극하고, 수사 장기화를 자초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행정처 자료를 서버에서 내려 받는 검찰의 ‘포렌식’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 “한마디로 아무 영양가 없는 것만 골라서 주고 있다”(검찰 관계자)고 한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최근에 수사팀 검사들 얘기를 들어 보니, ‘법원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법원이 참 어리석다. 저렇게 검사들을 자꾸 자극하면 파고 또 파서 결국엔 (법원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술’을 얹었다. 13일 사법부 창립 70돌 기념사에서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힘을 듬뿍 실어줬다. 사법부 잔칫날이라 사법부 스스로 개혁하라는 메시지를 몇 차례 반복하긴 했지만, 키워드는 ‘의혹의 규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초동에선 문 대통령의 이번 기념사 내용이 지난 1일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나온 발언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해석한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 청산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결론은? 올 연말까지 수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검찰 지휘부의 방침이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고 연말에 딱 끝난다는 것도 아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모쪼록 해를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며 “언제 끝날지는 우리(검찰)가 아니라 법원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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