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방경찰청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주니어보드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조직 문화 혁신을 꾀하고 있다. 울산청 제공.
퇴근 뒤 이성 직장 상사한테서 “맛집 발견했는데 같이 가자”, “요즘 고생 많던데 술 한 잔 사줄게”라는 연락이 온다면?
울산지방경찰청이 1일부터 상급자가 이성 하급자에게 사적인 연락을 하지 말라는 ‘사적 연락 금지법’을 시행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법’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청장이 서명한 업무 지시 성격의 내부지침이다.
진짜 법처럼 6개 조항과 부칙까지 갖춘 이 법을 살펴보면, ‘사적 연락’은 업무와 연관성 없는 내용을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울산경찰청이 제시한 5가지 금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안부 연락 : “주말인데 뭐하니” “오늘 뭐 먹었어?” “○○에 왔는데 너무 좋다~”
2. 사적 만남을 요구하는 연락 : “소주 한잔 하자”“재밌는 영화 나왔던데 같이 보자” “너희 집 근처인데 잠깐 보자” “시험공부 하느라 힘들지? 밥 먹자”
3. 퇴근 뒤 술에 만취해 하는 연락
4. 온라인 지라시(정보지), 언론 정리 자료 등을 반복해서 보내는 행위
5. 기타 하급자의 퇴근 뒤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적인 연락
다만, 이런 금지는 1 대 1형식의 연락에만 적용되고, 카카오톡 단체방 등 3명 이상이 동시에 소통하는 공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울산지방경찰청이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적 연락 금지법’.
이 법은 “모든 직원들은 퇴근 뒤 개인적인 시간을 침해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는 “특히 직장 내 상급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일과 중’에만 유효함을 명심하고, 일과 이후에 개인적인 이유로 하급자의 사생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그런데 실제 적용 대상은 ‘이성 하급자’로 규정했다. 왜일까?
울산경찰청 차봉근 기획팀장은 “전체 부하 직원으로 할지 이성 부하로 한정할지를 놓고 많이 고민하고 토론했다. 장기적으로는 성별 구분 없이 전체 부하 직원으로 하는 게 맞지만, 여성 하급자들이 조직 내 소수자로서 겪는 고충이 더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단 이렇게 첫걸음을 떼기로 한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조항이 ‘제4조 친절함 오해 금지’라고 한다. 이 조항은 “상급자는 이성 하급자의 친절함이나 만족스러운 리액션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의에 기인한 것임을 항상 인지하고, 이를 이성적 호감의 표시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상급자는 가끔씩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떠올리며 자신이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경계한다” 등 상급자가 스스로 주의해야 할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 조항은 없지만, 관서장이나 부서장에게 자신을 포함한 상급자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의무를 부여했다. 또, 모든 직원이 고용노동부가 제작한 ‘직장 내 성희롱 자가 진단 어플’을 이용해 연 1회 자가 진단을 하도록 했다.
울산경찰청의 ‘사적 연락 금지법’은 지난 8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경찰청 내 ‘주니어보드’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과장급 이하 20~30대 실무자 15명으로 구성된 ‘블루 보드’는 정기적 모임을 열고 조직문화 혁신 방안 등을 청장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