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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웃이 출근 준비하는 소리, 내 알람시계 되지 않길

등록 2018-10-14 09:48수정 2018-10-14 17:22

[토요판] 이런, 홀로!?
소음 없는 주거 공간을 바라며
나는 복도 끝 집의 사람이 몇시에 출근하는지 알고 있다. 그가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는 내게 알람 시계가 됐다. 얇은 벽과 좁은 틈의 공간을 두고 이렇게까지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하는 게 과연 정상인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복도 끝 집의 사람이 몇시에 출근하는지 알고 있다. 그가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는 내게 알람 시계가 됐다. 얇은 벽과 좁은 틈의 공간을 두고 이렇게까지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하는 게 과연 정상인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소리로 전해지는 타인의 일상

고시텔, 원룸, 옥탑방…
소음이 일상이 된 임시 거처들

이웃에 피해 주지 않기 위해
과도한 조심과 눈치 보기 해야
방음이 가능한 주거 공간 원해

나는 복도 끝 집의 사람이 몇시에 출근하는지 알고 있다. 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외우려고 한 것도 아니지만 1년 가까이 비슷한 시간에 같은 소릴 들었으니 알람 시계처럼 알게 됐다. 그의 출근 소리는 실제로 내 아침을 깨우는 알람 시계이기도 하다. 잠이 덜 깬 채 이불을 끌어올리며, ‘저 사람은 참 일찍도 출근하네’하고 안타까워한다. 고시텔, 다세대주택 원룸, 다가구주택, 그리고 다시 다세대주택의 원룸. 혼자 산 지 8년차가 되니 이 정도 소음쯤은 이제 익숙하다.

옆집 사람은 늘 늦은 밤에 씻어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내 집과 맞댄 벽면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물론 샤워기 소리인지 세면대 수도꼭지 소린지 세탁기에 물이 들어가는 소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자려고 누운 침대 옆 벽면으로 흐르는 물 소리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우리 집과는 약간 먼 윗집 또는 다른 옆집은 가끔 새벽 1시에 세탁기를 돌려 드럼통이 말 그대로 드럼을 쳐대는데 그럴 때도 속으로 욕 한번 하고 잠들어버린다. 매너 없게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냐, 하다가도 혼자 사는 처지에 너무 바빠 지금 이 시간밖에 돌릴 여유가 없었나 보다 이해해버린다. 또 윗집의 어떤 사람은 밤 10시까지 꼭 운동을 하는데 콩콩콩 뛰는 소리가 꼭 집을 무너뜨릴 것 같다. 곧 자야 하는데 어쩌려고 저러는 건가 화가 났다가도 귀신같이 10시가 넘어가면 소리가 잦아든다. 이제 너도 자라는 신호인가.

# 고시텔에서 겪은 소음의 충격

지금은 익숙해진 소음이지만 층간 소음 없는 아파트에서 살다 처음 겪은 소음의 충격은 20살, 고시텔에서였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설고 좁은 방 안에서 겨우 머리를 베개에 뉘었을 때 옆집(엄밀히 말하면 옆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벽 쪽으로 손을 뻗으면 그 방의 사람에게 내 손이 닿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르는 타인과 가까이 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일상을 사는 삶은 계속 이어졌다.

답답한 고시텔 이후, 원룸의 삶도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고시텔처럼 옆방의 전화 소리나 대화 소리가 바로 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현관 문 닫는 소리하며 더운 여름철엔 여러 방에서 나는 소리가 창문과 창문을 통해 옮겨갔다. 그 탓에 각자 무얼 보고 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건너 건너 어느 방의 사람은 꼭 샤워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뭐니 뭐니 해도 소음의 최고봉은 다가구주택 꼭대기의 옥탑방이었다. 큰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옥탑방을 둘로 나눠 한 방은 내가 살고 한 방은 집주인의 사돈이 집주인 노릇을 하며 살았다. 그분은 내가 친구나 애인을 데려오면 여지없이 현관문을 열고 지청구를 놓았다. 얇은 벽 탓에 방에 앉아만 있어도 내가 누군가를 데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사생활은 하나도 보호되지 않았다. 그분이 자기 방에서 방귀를 뀔 때마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다른 소리도 아니고 방귀 소리가? 방귀 뀌는 소리 외에도 그분이 친구와 전화하는 소리며 가끔 방으로 올라오는 손주들 소리며 그 많은 옆집의 소음을 듣고 있자니, 내가 엄마한테 그분을 욕하던 전화며 애인과 ‘꽁냥’댔던 소리며 모든 게 아득해졌다.

여러 방과 집의 형태를 거쳐보니 고시텔이 유독 방음에 약한 곳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이후 방음은 포기하게 됐고 소음은 점점 일상이 돼가고 있다. 처음엔 황당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냥 너무 심하지만 않길 바라며 방을 구한다. 오죽하면 지금 집은 방음이 좋은 편이라고 느낄까. 적어도 생활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안 들리니까. 물론 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세대주택 건물에서 하나같이 다들 혼자 사니 딱히 말할 일이 없어 말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그 정도는 방음이 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가끔 오는 내 친구들 또는 애인과 내가 하는 말들이 이미 옆집들에 다 들리고 있는 건지 알 노릇은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조용히 대화하는 것, 출근할 때 문을 최대한 살살 닫는 것, 청소기와 세탁기는 일찍 사용하는 것, 음악이나 노트북 소리를 크게 키우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다.

# 원룸은 참고 견디는 공간인가

한때 인터넷에서는 와이파이 이름을 ‘○○○호 ㅍㅍㅅㅅ’ ‘×××호 좀 닥쳐’ 유의 말들로 설정한 사진이 인기였다. 가끔은 밤에 발생하는 소음을 주의하라는 일명 ‘사이다’ 포스트잇을 현관문에 붙여놓고 찍은 사진도 인기 게시물이었다. 아파트에서 설계 및 공사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층간 소음 문제는 이미 공론화됐지만, 원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원룸이라는 공간은 대부분 애초에 각자의 소리가 들리라고 지어놓은 듯한 집 사이의 공간 크기와 너비, 두께를 가지고 있다. 복도에서 보는 현관문들은 믿을 수 없게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어떤 곳의 좁은 방들은 도면보다 더 좁게 나뉘고 쪼개진다. 벽과 벽 사이에 콘크리트 대신 놓인 석고보드 벽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내 공간을 찾기 위해 방과 방을 건너 다니면서 열심히 벽과 벽을 콩콩 두드려본다. 두드림과 동시에 텅 빈 듯한 벽과 벽 사이의 소리, 멀리 가지도 못한 채 바로 돌아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집의 설계자와 책임자는 정말로 이 공간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 지은 걸까, 한번도 한숨을 쉬지 않았던 걸까, 가끔은 진심으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애초에 방음이 불가능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아파트의 층간 소음만큼 사건이 크게 비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다 원룸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혹은 곧 떠날, 잠시의 도약을 위해 머물러 있다 갈 자리로 여기기 때문인 걸까. 조금이라도 더 넓고 좋은 공간으로 가기 위해 잠깐은 참고 견디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인 걸까. 철새라 불리듯 옮겨 다니는 게 그나마 비교적 쉽기 때문인 걸까.

이 글을 쓰는 자정이 넘은 이 시각에도 옆옆집은 문을 평범하게 닫았지만 쾅 하는 소리가 복도 전체와 여러 현관문을 울렸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에 붙은 ‘소음 주의 규칙’이 적힌 관리인의 종이가 무색하다. 그는 고작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적잖은 사람을 단잠에서 깨웠을 테다. 그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섰다는 걸 알게 된 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1분 뒤 바로 창문 밖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던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들이 유난히 조심성이 없거나 유독 소음을 많이 내는 사람들인 건 아니다. 옥탑방의 그 할머니도 자신의 집에선 마음대로 방귀를 뀔 수 있어야 한다. 옆집 사람도 밤늦게 씻을 수 있다. 쓰레기를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다. 얇은 벽과 좁은 틈의 공간을 두고 이렇게까지 조심해야만 하고 숨을 죽이고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정상인 건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그의 출근이 더 이상 내 알람 시계가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 집이 더 보편적이면 좋겠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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