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지난 2012년 5월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선고를 듣고 나온 피해자 유가족들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표적인 재판거래 의혹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 판결이 이달 말 선고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여아무개(95)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 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 사건을 심리해, 이달 중 ‘특별기일’을 정해 판결을 선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지난 7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뒤 그동안 심리를 이어왔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의 주심인 김소영 대법관이 다음 달 2일 퇴임하기 이전에 선고를 마치기로 하고 이례적으로 특별기일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이 선고를 서두른 데는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이 박근혜 정부와의 ‘거래’를 통해 이 사건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판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법원은 2012년 5월 여씨 등의 소송에서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 후 법원은 원고 한 사람당 1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3년 8월 다시 올라온 이 사건을 접수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5년 넘게 재판을 미뤄왔다.
지난 8월 이후 거듭된 전원합의체 심리에서는 2012년 대법원 판결 당시 쟁점이었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한-일 협정)이 개인청구권에 미치는 효력, 개인청구권 행사기한 등이 다시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본 기업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책임이 없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한다”며 여씨 등이 패소한 일본 법원의 판결 효력을 부인하면서,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 등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한-일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한-일 협정 당시 일본 정부가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점 등에 비춰보면 손해배상청구권 등 개인청구권은 한일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에 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이번 전원합의체 심리에서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이 재상고심에도 미치는지, 일본이 국제소송으로 강하게 반발할 것인지 등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상고심 선고가 예상보다 앞당겨진 것은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건 종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확정하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전범 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린다. 외교적 갈등 가능성은 우려된다. 반면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 종전 대법원 판단을 스스로 뒤엎는 것이어서 큰 논란이 예상된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79년 부마 민주항쟁 당시 계엄령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아무개씨의 재심 사건을 새로 심리한다고 이날 밝혔다. 심리에서는 당시 부산·마산 지역에 내려진 계엄령과 위수령의 위법 여부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될 전망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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