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조합원은 피해자 아냐”
공소장 열람·복사신청 거부
“피해자 범위 지나치게 좁게 해석…
범죄대상자가 진술도 못해” 비판
공소장 열람·복사신청 거부
“피해자 범위 지나치게 좁게 해석…
범죄대상자가 진술도 못해” 비판
삼성전자가 수년간 와해공작 대상으로 삼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들은 ‘피해자’일까 아닐까. 삼성전자 서비스기사 김아무개(43)씨는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김태업)에 공소장 열람과 복사신청을 했다. 김씨는 검찰이 노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로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등을 재판에 넘길 때 공개한 ‘불법 사찰’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그린화’(노조탈퇴 작업)를 진행하며 노조원의 결혼·이혼 여부, 채무 등 재산상태, 임신 등 건강상태 등을 수집하고 관리했다. 그러나 김씨는 공소장을 받아보지 못했다.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대리하는 금속노조법률원이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김태업)에 공소장 열람과 복사신청을 했지만 계속 거부 당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의 피해자는 공소장 등 소송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장이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다른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허가할 수 있다.
재판부는 지난 19일 열린 공판준비절차 때 “노조원이나 금속노조 쪽에서 재판기록 열람과 등사, 공소장 열람과 등사 신청이 계속 들어온다. 이 사건은 사적인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신청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그만 신청하라’는 취지다. 이 사건은 노조활동의 자유와 독립성이라는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없고, 따라서 노조와 노조원들 또한 신청 자격이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형소법에 따라 재판부의 이런 결정에 불복할 방법은 없다.
노조쪽은 노조원과 노동조합 모두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모든 유형의 부당노동행위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져왔다. 피고인의 범행으로 노조가 위축됐고 연쇄적인 위장폐업으로 한달 동안 369명이 노조를 탈퇴하는 등 노조원수가 1600여명에서 700여명으로 급감했다”며 ‘어째서 피해자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노조를 대리하는 박다혜 변호사는 23일 “범죄 피해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진술권을 보장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에 피해자의 열람·등사 신청권이 추가된 것이다. 그 취지에 따라 피해자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사찰까지 당했는데 정작 본인에 대한 범죄가 기소됐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진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했다. 금속노조법률원은 노조파괴 전문업체인 창조컨설팅 사건 재판 때는 ‘노조=부당노동행위 피해자’가 인정돼 재판기록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한 판사는 “부당노동행위는 노조 활동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호하는 것이라 사회적 법익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기획폐업으로 일자리를 잃고 사찰까지 당했다면 개인적 법익을 침해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이 직접적으로 이익을 침해받았다면 개인적 법익도 보호 법익으로 봐 재판기록 열람·등사 신청권한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무원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경우, 이는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면서도 공무원 개인의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도 봐야한다. 삼성 노조와해 사건 재판부의 판단은 피해자의 범위를 극히 좁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목장균·최평석 전무 등의 재판은 오는 26일 ‘무려’ 7번째 공판준비절차를 진행한다. ‘검찰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6월19일 첫번째 공판준비절차를 밟은 뒤로 넉달 넘게 정식 공판을 열지 못하고 있다. 최 전무 쪽 변호인은 “(노조와해는) 실제 실행된 게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뿐인데 (삼성에서 부당하게 압수한) 문건이 유무죄 심증과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삼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던 중 노조와해 관련 문건을 발견한 바 있다. 재판부는 지난 19일 6번째 공판준비절차에서 “피고인의 구속기간이 5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제대로 된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있다. 위법 수집 증거 주장으로 공방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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