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박용진 의원이 유치원 비리 관련 <한겨레>와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안팎은 차분했다. 국회 방호과 직원 몇몇이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우려했던 사립유치원 단체의 소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난 5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 300여명이 “사립유치원을 비리 집단으로 매도한다”며 국회 방호과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단상을 점거한 뒤 막무가내로 토론회를 막았다. “우리가 적폐냐”라는 항의와 함께 박 의원 등을 향해 야유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박 의원이 지난 11일 사립유치원 감사결과를 일부 실명 공개한 뒤,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한 여론이 들끓으면서 26일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31일 박 의원이 주최한 2차 토론회인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정책토론회’에는 박 의원을 비롯해 교육부와 유아정책연구소, 학부모단체, 시민단체 등이 참석해 사립유치원 관련법 규정 정비와 장기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다. 토론자로 한유총이 초청됐지만, 이들은 별다른 답변을 보내지 않은 채 불참했다. 박 의원은 “한유총 쪽에서 ‘박용진 3법’ 통과되면 생존권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투명한 운영과
유치원비 횡령 방지, 안전한 급식을 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면 그동안 유치원 운영을 어떻게 한 것이냐”며 “오늘은 한유총 자리가 비었지만, 언젠가 아이들을 위해 대안 마련을 논의할 자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강화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발제자로 나선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변호사)은 “정부가 사립유치원이 유치원비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한 것은 무상유아교육에 정면으로 반하는 모순된 제도”라며 “사립유치원 이용 학부모들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차별도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위원장은 “사립유치원은 ‘학교’의 하나로 정기적인 공공감사의 대상인 만큼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비회계와 개인 돈이 완전히 구분되는지 등을 철저히 지도·감독하고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해 개정을 추진 중인 이른바 ‘박용진 3법’과 관련해서는 “사립유치원에도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당연히 적용하도록 규정을 정비하는 한편, 유치원 비리가 국·공립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보조금’ 유용에 대한 규정을 전체 유치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유아교육 지원금을 크게 늘리면서도, 이를 감독할 공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누리과정 도입 뒤 유치원 지원금·보조금을 늘렸는데 실제 보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회계감사가 부족했고, 유치원알리미 등 감사에서 적발이 돼도 관련 정보를 유치원이 알아서 공시하는 구조였다”며 “교육청의 장학지도가 교육과정뿐 아니라 유치원 행정과 운영 전반에 걸쳐야 하고, 유치원 정보공시도 별도의 모니터링단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용진 3법’에 대해서는 “정원 20명 이상 사립유치원에만 의무 설치하도록 된 운영위원회의 규정을 확대 강화하는 한편, 현재 자문기구인 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하도록 관련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직 시민감사관과 학부모·시민단체들도 뜻을 모았다. 사립유치원 특정감사에 적극적이었던 김거성 전 경기도교육청 대표시민감사관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만으로 유아교육 공공성 확보가 달성되는 게 아니”라며 “장기적으로 사립유치원을 법인화하고, 초등학교 교장이 원장이 되는 병설유치원보다 적어도 유치원 자체 원장이 있는 ‘병설형 단설유치원 설립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전 감사관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추가 감사를 하고,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고발과 세금추징 등 강력하게 처벌해 비슷한 일이 거듭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현행법 테두리에서 전남·울산·세종 교육청은 이미 전수 감사와 실명공개를 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유아교육 관련 담당 공무원과 여야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유치원 비리 책임의 8할은 교육당국에 있다”고 꼬집었다. 조 대표는 “유치원 전수조사가 가능할 만한 감사 인력을 확보하고, 유치원 먹거리와 회계 문제를 조목조목 알고 있는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교육당국이 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유치원알리미의 의무 공시 사안으로 비리 감사 적발 결과를 포함하고, 한해 1억원씩 급여를 받는 사립유치원 가족 직원을 막기 위한 ‘급여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이와 관련해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투명한 회계를 위해 내년까지 200명 이상 유치원에 에듀파인을 우선 의무 도입하고, 유치원 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정보공시 위반 때 처벌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권 과장은 또 “개인유치원의 학교법인 전환 때 진입 요건을 완화하고, 신설 사립유치원의 의무 법인화를 추진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사립유치원이 일방적인 폐원 등으로 집단대응에 나설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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