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 법원 문양 위로 빛이 쏟아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달 30일 검찰 사법농단 수사팀의 이메일 압수수색에 대해 “위법하다”고 공개 비판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일 두 번째 글로 그간 불거진 ‘원세훈 항소심’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관하여 법원 가족들께 드리는 글(2)’이라는 제목으로 에이(A)4 47쪽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2015~16년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으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여론조작 사건을 맡았는데, 1년 7개월간 재판을 진행한 끝에 선고도 없이 다른 부서로 떠나 고의 지연 의혹이 제기됐다. 또 공판 과정에서도 <손자병법>을 거론하며 ‘국정원 댓글공작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 용병술로 보인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등 편파적 재판 진행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에서 당시 법원행정처(행정처)가 형사7부의 ‘의중’을 파악한 문건 6건이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행정처의 해당 재판 개입 의혹을 담은 ‘원세훈 사건 환송 후 심리방향’(2015년 10월 작성)문건에 대해 “문건의 작성자가 해당 사건에 관한 제 업무에 영향을 미쳤음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제 사실이 잘못됐고, 따라서 위와 같이 잘못된 전제로 인하여 후속 논의가 왜곡되고 있다”며 “그 당시 저는 통상적인 업무처리방식에 따라서 업무를 처리했고, 관련자의 직권남용행위 등과 같은 불법적 행위가 제가 담당한 해당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먼저’ 재판을 진행한 후 서울고법 공보관에게 ‘과거에 이미 발생한 재판진행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해당 사건 재판진행에 대한 언론보도가 ‘먼저’ 이뤄지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판사들이나 지인들에게 ‘과거 이미 발생한 재판진행 상황 등에 관해 설명했다”, “개인적인 문의자들에 대한 설명은 일부 쟁점에 한해 1회적으로 간략한 설명이 이뤄진 경우가 많다”는 등 당시 재판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또 자신이 재판연구관들과 주고받은 이메일들을 압수한 것에 대해서도 재차 “별건 수사”라며 “대법원 규칙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결과에 이르는 준비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기재돼 있어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해당 법원 직원들에게 참관할 기회를 고지하는 등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그 자체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김 부장판사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인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서까지 ‘공개변론’하자 법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쏟아졌다. 한 판사는 내부 게시판에 익명으로 “(김 부장판사의) 글 대부분이 자기가 위법한 짓을 안 했고 자기 사건과 관련해 행정처의 직권남용이 없다는 사실관계 및 법리 다툼인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참고인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사안을 이렇게 장외에서 판사들을 상대로 죄가 아니라고 토로하는 것은 직무윤리 위반이 아닌지 심각하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김 부장판사의 ‘압수수색 위법’ 주장을 반박했던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도 이날 “수사 중인 사안의 관련자가 수사절차 외에 있는 법원 구성원들을 상대로, 해당 사안의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방의 주장을 미리 전달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고법 부장이면 검찰로 치면 검사장인데, 직위를 이용해 후배 판사들에게 자신의 혐의에 대해 판결문을 쓰듯 일방적으로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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