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작성 의혹을 수사 중인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민·군 합동수사단’ 공동 수사단장인 노만석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장(가운데)이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령관 때 전국 50여개 모든 기무부대를 돌면서 성대하게 행사를 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도피가 길어지면서 대신 조사받는 옛 부하들의 불만이 크다.”
군의 한 관계자는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도피 행각’을 보는 군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주도한 조 전 사령관은 지난해 9월 전역 뒤 그해 12월13일 학업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7월 꾸려진 민·군 합동수사단(단장 전익수 대령, 노만석 부장검사)이 다각도로 조 전 사령관 접촉을 시도했지만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도 자신이 수사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한다. 합수단은 지난달 여권 무효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 체류자격 취소 조처를 했다. 조 전 사령관에겐 매월 400여만원의 군인연금이 꼬박꼬박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합수단은 7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만들어진 계엄 문건의 목적과 지시자 등을 확인하지 못하고 수사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합수단은 이날 수사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 전 사령관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기소중지(수배)한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사건 전모와 범죄성립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조 전 사령관을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까지 소재 불명 상태”라고 기소중지 이유를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이 체포되면 수사는 재개된다. 해외 도피에 따른 기소중지는 공소시효가 줄지 않는다.
합수단은 또 계엄령 검토를 지시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연관 여부가 드러날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참고인중지를 결정했다. 합수단은 “두 사람을 조사하지 않았다. 조 전 사령관을 조사한 뒤에 공모 및 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계엄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으로 예정됐던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등 8명도 같은 이유로 참고인중지가 결정됐다.
기무사가 독자적으로 계엄 문건을 작성했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것이 합수단의 평가다. 합수단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지시 내지 암묵적 승인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물증과 관련자 진술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사령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16년 12월9일 청와대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대선 당일인 지난해 5월9일까지 모두 5차례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합수단 관계자는 “통상적 절차가 아닌 ‘특이한 루트’로 방문했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의 고발로 지난 7월26일 수사에 착수한 합수단은 석달여에 걸쳐 김관진·한민구 전 장관 등 204명을 조사하고, 국방부·육군본부·기무사령부 등 90곳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계엄 문건이 작성된 사실 외에 구체적인 준비 행위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합수단은 지난해 2~3월 기무사가 계엄령 검토 사실을 감추기 위해 위장 조직인 ‘미래 방첩업무 발전 방안 티에프(TF)’를 만들고, 계엄령 검토 문건이 마치 한-미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 기간에 작성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훈련비밀’로 올리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관여한 소강원 전 참모장(육군 소장), 기우진 전 기무사 5처장(육군 준장), 전 기무사 중령 등 3명은 이날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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