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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교칙 정하고 행사 기획…민주시민으로 거듭나는 아이들

등록 2018-11-11 15:25수정 2018-11-17 01:35

제1회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
부산 부경고 ‘시민교육’ 사례 발표
창업동아리 격주 금요일 카페 운영
“생기부 한줄보다 소통 배워 더 중요”
조희연 “학생 주체성 제도적 안착을”
유은혜 “싹 자라 사회 울타리 될 것”
유은혜 교육부 장관(맨 뒤 왼쪽 여섯째부터), 양상우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참가자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시교육청 연수원에서 열린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에서 학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유은혜 교육부 장관(맨 뒤 왼쪽 여섯째부터), 양상우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참가자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시교육청 연수원에서 열린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에서 학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직 중·고교생인데 맡겨도 되겠어?”

‘흔한 편견’이다. 하지만 부산 부경고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학교에선 학생들이 ‘교칙’을 정한다. 해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400인 원탁토론’에서 학칙을 토론한 뒤 투표로 자신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한다. 또 이 학교의 사회적기업 창업동아리 ‘로운공작소’는 격주 금요일에 학교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특수학급 친구들이 구운 쿠키를 함께 팔고, 수화로 주문하는 친구들에겐 할인해준다. 체육대회 기획, 금연캠페인, 매점 판매품목 신청·관리, 공동체협약 바꾸기 등 어지간한 학교에서 ‘어른 몫’인 일을 학생들이 주도한다. 세월호 참사 땐 학교 벽에 ‘위로의 나무’를,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뒤에는 ‘평화의 나무’를 그린 뒤 학생들끼리 포스트잇으로 의견을 나눴다.

학교가 ‘학생다운 학생’이 아닌 ‘학생이자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것이다. 이 학교는 자치적 학생회를 꾸린 지 3년 만에 학생회 지원자가 1학년 전체 130명 가운데 80명에 이를 만큼 인기라고 한다. 최지아 학생회 부단장은 “친구들이 ‘덕분에 학교 올 맛이 난다’고 말해줄 때 힘이 난다”며 “학교에서 생활기록부에 쓸 경력만 쌓는 게 아니라 시민의 일원으로서 소통과 나눔,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영상]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한겨레> 주최로 열린 ‘제1회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시민교육’의 다양한 사례와 의견이 제시됐다. 학교 안팎에서 학생이 한명의 ‘시민’으로 구실을 하도록 성평등, 다문화, 노동·인권, 평화 등을 배울 기회가 민주시민교육 과정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학생들이 축제 기획 등 자치활동을 통해 자신들에게 배정된 예산을 짜임새 있게 쓰도록 훈련하거나,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간 수평적 의사결정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사례도 나왔다. 부경고 이융 교사는 “아이들의 미숙함을 능력의 문제가 아닌 기회의 문제로 여기고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다려줘야 한다”며 “사소한 모자이크를 매일 하나씩 붙여나가면 나중에 꽤나 괜찮은 그림이 된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국정과제의 하나로 내놨다. 지난 1월엔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과를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관련 예산 44억원을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조차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서울·경기·충남을 뺀 나머지 14곳엔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전담부서도 없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다. 발제자로 나선 정원규 서울대 교수(사회교육과)는 “기성세대들에게 시민교육은 과거 정부에서 순종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으로 인식돼 친미반공교육(이승만), 유신독재교육(박정희), 국민윤리교육(전두환), 신자유주의적 준법교육(노태우)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권에서도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이념 교육’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국민 개개인이 국가 최고 권력자라는 헌법정신을 학교 현장에서 배우는 ‘주권자 교육’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국가 차원의 손해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발제에서 “한국은 글로벌 창의성 지수(GCI)에서 2015년 현재 ‘기술성’은 세계 1위지만 ‘관용성’은 70위까지 떨어져 있다”며 “시민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인적 자본이 뛰어난데 개인들의 면면은 내적 균형이 많이 깨져 국가 경쟁력 면에서도 상당한 위기라는 걸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현실적인 고민이 적잖다. 포럼에 참가한 제주도교육청 한 장학관은 “제주도 민주시민교육과를 준비하지만 어떤 계획을 거쳐, 무슨 구실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올바른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교육부가 체계적인 연구와 시범학교를 거친 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교육청에 보내달라”고 제안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은 “학생회 생활을 하며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 의견을 제시하지만 정작 교장선생님이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다’ ‘예산이 없다’는 식으로 거의 들어주지 않는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스쿨미투’만 봐도 학생들의 주체성과 자기주도성이 달라졌는데, 학교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흡수해 안착시켜야 한다”며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정규교육화,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대표 참여, 학교 민주주의 지표 개발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포럼에 앞선 간담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싹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숲이 되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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