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전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장 권한의 상당 부분을 새로 만드는 ‘사법행정회의’에 넘겨 사법행정을 총괄하도록 하는 개편 방안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내부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후속추진단)이 법원 안팎 의견수렴 끝에 만든 개편안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 지시로 만들어진 후속추진단 논의 결과를, 대법원장 자신이 수용하지 않는 모양새다.
김 대법원장은 12일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후속추진단이 사법행정회의 신설 등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안을 구체화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대법원규칙안을 마련해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고 전하면서, “국회에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의견을 표명하기에 앞서 법원 가족 여러분으로부터 구체적인 법률 개정 방향에 관한 의견을 듣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이런 추가적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할 것을 법원행정처에 지시했다. 대법관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추가 의견수렴이 필요한 이유로 “사법발전위는 사법행정회의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단일안을 채택하지 못했고, 후속추진단 역시 완전히 의견을 모으지는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사법발전위(위원장 이홍훈 전 대법관)는 사법행정 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하면서 법원 안팎의 의견을 들었다. 사법발전위 결정 내용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속추진단도 법원 안팎의 의견을 두루 수렴했고, 지난달 말에는 외부전문가 토론회와 법원 내부 간담회도 열어 의견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속추진단의 발표 이후 대법원이 개편 방안에 대해 다시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선 것은, 사법행정회의의 위상과 구성 등 개편 방안의 핵심 내용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발전위와 후속추진단을 거쳐 나온 안에 대해 인제 와서 또 의견을 듣겠다는 것은, 후속추진단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뜻 같다”고 전했다. 그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 총괄기구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법원 내부 반발이 크다. 또 법원 내부 의견을 묻겠다는 것은 김 대법원장도 그런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대법원장 권한이 너무 많이 줄어드는 것에 당황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후속추진단이 지난 7일 공개한 사법행정제도 개편 방안은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한편, 그동안 대법원장이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사법행정 사무 총괄 권한을 새로 만드는 사법행정회의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 사법행정회의는 법관 보직 인사권을 포함한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하고, 관련 공무원을 지휘하게 된다. 대법원장은 법관 임용권, 대법관 제청권 등 헌법상 권한과 상고심 재판장의 권한 등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대법원 예규의 제·개정 등 주요 업무는 반드시 사법행정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사법행정회의는 대법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법관·비법관 위원 5명씩을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외부인사로 구성될 비법관 위원 5명은 ‘사법행정회의 위원추천위원회’가 공모 절차를 거쳐 추천한다. 또 법원행정처를 완전히 폐지하면서, 법원사무처를 신설해 사법행정회의가 결정한 사법행정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법원사무처에는 현직 법관이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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