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 전 대법관, 전 법원행정처장. 한겨레 자료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조사까지 ‘최후의 2인’이 남았다. 그중 한 명인 박병대 전 대법관이 19일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전직 대법관 중에선 차한성·민일영 전 대법관에 이어 세 번째, 피의자 신분으로는 차 전 대법관에 이어 두 번째, 공개 소환으로는 첫 번째다.
같은 날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촉구 여부를 논의한다.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사법농단 수사와 법원 내 탄핵 논의가 서로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9일 오전 9시30분 박 전 대법관을 공개 소환한다. 사법사상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첫 번째 전직 대법관이 된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31차례 공범으로 적시된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14년 2월부터 2년간 임 전 차장의 직속상관인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주요 사건 재판개입과 법관사찰 등을 승인하고 보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그가 △일제 강제징용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헌법재판소 동향 파악 △통합진보당 해산 후속 사건 등에 두루 관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 조사에 이어, 후임 법원행정처장인 고영한 전 대법관 조사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으로 올라가는 수사의 최종 연결고리를 완성할 계획이다.
전직 대법관이 포토라인에 선 직후인 오전 10시,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사법농단과 관련해 ‘명백한 재판개입’ 행위가 이미 확인된 현직 법관의 탄핵 필요성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한다. 중대한 헌법 위반을 한 고위공직자를 검찰 수사나 유죄 확정 여부와 별개로 파면할 수 있도록 한 탄핵제도의 취지를 살려, 재판 독립 침해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평가와 탄핵 선례를 법원 안팎에 뚜렷이 남기자는 것이다. 법원 공식기구인 법관회의에서 탄핵 촉구 결의안이 가결되면 국회의 탄핵소추 논의도 탄력을 받게 된다.
당초 이날 회의에서는 상고심 개선 방안, 법관 인사제도, 법원행정처 업무이관 등 사법행정 주요 현안을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2일 차경환 대구지법 안동지원장 등 안동지원 소속 판사 6명 전원이 ‘재판개입 법관 탄핵 촉구 결의안’을 법관회의에서 논의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안건의 무게 중심이 확 바뀌었다.
법관회의가 시작되면 안동지원 판사들의 탄핵 촉구 의견에 공감하는 법관대표들이 추가 안건 상정을 요구할 예정이다. 한 판사는 18일 “이미 20여명 이상이 안건 발의에 뜻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법관회의 내규에 따라 법관대표 10명 이상이 요구하면 의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정해야 한다.
법원 내부에서도 “명백한 재판독립 침해 행위자에 대해 유무죄와 별개로 국회의 탄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상당 부분 힘을 얻고 있는 만큼 법관회의가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법관이 다른 법관의 탄핵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큰 만큼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지더라도 가결(참석자 과반)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문구를 수정해 탄핵 촉구에 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다.
탄핵 촉구 결의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거나 부결될 경우 ‘제 식구 감싸기’라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판사는 ‘비공개 온라인 법관 카페’에 올린 글에서 “위헌적 직무수행을 한 동료 법관 탄핵에 온정적 심정을 앞세워 거부감을 표한다면, 같은 법관이 저지른 사법농단 재판에서 (마찬가지로) 온정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거라고 (국민에게) 강변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최우리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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