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직원들의 기강해이를 다잡아야 하는 책임은 조국 민정수석에게 있다. 조 수석이 지난 2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들 처음 보는 일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정권 말기에나 터질 법한 일”이라고 혀를 찼다. “청와대의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소속 특별감찰반(특감반)을 전원 교체하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한 뒤 법조계 인사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특감반의 전신쯤 되는 옛 ‘사직동팀’ 폐지 이후 이런 충격적인 일은 일찍이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알려진 비위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29일 오후 청와대 관계자와 출입 기자들의 질문-대답 중 일부다.
-(비위가 드러나 원소속기관인 대검으로 복귀시킨) 김 아무개 행정관 외에 ‘별건’이 있다는 것인가?
“숫자나 혐의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
-비위 행위자가 복수라는 것 아닌가.
“그것도 말하기 곤란하다.”
29일 밤 일부 방송은 ‘특감반원들이 일과 시간 중 골프를 치거나 접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오보”라고 대응했지만, ‘뭔가 더 있다’는 심증은 해소하지 못했다.
“특감반이 골프를 쳤다는 일부 보도를 보면서 설마 했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기강해이도 이런 기강해이가 없다. 특감반 업무 차원에서 갔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골프장에서 누군가를 암행 감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라운딩을 따라다니면서 사람 뒤를 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 골프 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청와대 외부 공무원들의 비위를 살피고 감시해야 할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에서 이런 비위가 터졌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다” (사정기관에서 일했던 변호사)
일부에선 ‘전원복귀’라는 청와대의 ‘강수’에도 미심쩍은 시선을 보낸다. 김 행정관의 비위와 관련해선 청와대 발표의 진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에선 28일 방송 보도 이전에 정식으로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고, 청와대는 2주 전 구두로 통보했다고 한다. 이것도 희귀한 일이다.
“지인의 사건을 알아보고 다녔다는 특감반 김아무개 행정관 기사가 방송에 나온 게 28일 저녁이다. 김 행정관이 대검으로 복귀했다는 시점은 그보다 훨씬 앞인 2~3주 전이고. 만약 방송 보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이번 일을 청와대가 공개했을까. 청와대는 김 행정관 보도가 나오고 추가 비위자에 대한 취재가 들어오니까 ‘전원복귀’라는 예상 밖의 강수를 둔 것 같다. ‘조직쇄신’이란 말을 쓴 것도 ‘개혁 조처’로 포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어떻게 해석하든, 사상 초유의 ‘특감반 전원복귀’는 애초 의도만큼 효과적이지 않은 듯하다. 11월 들어 유난했던 청와대 직원들의 잇따른 ‘일탈’과 연장선에 있어서다.
지난 10일에는 청와대 경호처 직원 유아무개(36·5급)씨가 술집에서 다른 손님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전 4시까지 술을 마시다 피해자를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심지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욕설하고 행패를 부려 폭행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23일엔 김종천(50) 전 의전비서관이 청와대 차량을 직접 몰고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 단속에 걸렸다. 적발된 것은 한밤중인 0시35분께 청와대 근처로, 혈중알코올농도가 0.12%였다고 한다. 만취 수준이다. 국회에서 음주운전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통과를 논의하고 있던 시점에 ‘사고’를 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10일 음주운전을 ‘살인행위’에 비유하면서 처벌 강화를 강조한 터라 충격이 더했다.
그리고 닷새 만에 특감반 행정관의 비위 사실이 보도됐다. 청와대 기강 해이에 대한 비판은 ‘진화’가 아니라 ‘확산’되는 모양새다. 당장 야권에선 김 행정관의 직속 최상급자인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상 초유’의 일은 특감반 전원복귀만이 아니다. 집권 1년 반 만에 청와대 직원들이 이렇게 자주 ‘사고’를 친 것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 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걸까.
“촛불로 집권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조금만 지나쳐도 오만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동안 터진 ‘사고’를 보면 ‘감히 누가 우릴 건드려’ 같은 집단적 정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주먹질하고 경찰에 행패 부린 경호처 직원, 음주운전을 한 김종천 비서관, 경찰에 대놓고 수사 중인 사건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김 행정관까지 모두 권력중독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청와대의 온정적 대응도 문제다. 김 비서관은 직권면직이 아니라 징계 회부를 해야 했다. 청와대가 관련 대통령령에서 가벼운 처분을 택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김종천 전 비서관 처리를 다시 보자. 김 전 비서관을 직권면직한 근거로 청와대는 ‘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을 들었다. 국가공무원법에 위임 조항이 있으니 여기까지는 맞다. 김 전 비서관과 직접 관련되는 것은 이 규정 중 ‘징계’ 조항이다.
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 제9조[징계 등] ①별정직공무원에게 ‘국가공무원법’ 제78조 제1항 각호 또는 제78조의 2 제1항에 따른 징계 또는 징계부가금 사유가 있으면
직권으로
면직하거나
징계처분 또는 징계부가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
직권면직과 징계처분은 ‘하거나’로 연결돼 있다. 임면권자인 대통령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징계가 아닌 직권면직을 택했다. 청와대는 의원면직이 아니라 더 센 직권면직이라고, 직권면직은 의원면직과 달리 징계기록이 남는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직권면직이 그만큼 강도 높은 처분일까.
“절차를 밟아 징계하면 시간이 걸리고, 속된 표현으로 ‘빨간 줄’이 남게 된다. 어떤 사유로 징계위에 회부되고,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전부 기록이 남는다. 일종의 전과인 셈이다. 나중에 다른 공직을 알아보거나 취업을 하려 할 때도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직권면직은 그냥 내보내는 것이다. 공무원 생활 수십 년 했지만, 직권면직된 사람에게 징계기록이 남는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말 자체가 모순이다. 징계위 회부도 하지 않고, 징계처분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무슨 징계기록이 남는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직권면직을 택한 것은 김 전 비서관을 봐준 셈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일반적인 공무원의 음주운전 징계 규정에도 맞지 않는다. 인사혁신처가 작성·공개한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인사혁신처 예규 제61호)를 보면 ‘공무원 음주운전 사건 처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김 전 비서관도 국가공무원이었으니 당연히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았어야 한다.
“음주운전은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무원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알코올 농도에 따라 징계기준에 차등을 두고, (…)
혈중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의 상태에서 운전한 경우나 음주측정 불응의 경우에는
최초라도 중징계, 2회 이상 음주운전한 경우에도 배제징계가 가능하도록 함.”
경찰 적발 때 김 전 비서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였다. 징계위에 회부됐다면 아무리 낮춰 잡아도 정직 이상의 중징계가 불가피했다. 앞서 음주운전으로 ‘전과’가 있다면 배제징계, 즉 파면이나 해임될 수도 있다. 해임은 3년, 파면은 5년간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자격이 박탈된다. 파면은 퇴직급여도 절반이 깎인다. 그러나 김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직권면직 덕분에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게 됐다.
김 전 비서관의 음주운전은 까맣게 잊고 있던 사건을 다시 불러냈다. 지난 8월 ‘갑질 전화’ 사건으로 큰 논란을 빚었던 일자리수석실 정한모 행정관이 그사이 징계도 없이 업무에 복귀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가 먼저 밝힌 게 아니라 23일 <한겨레>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행정관의 경우) 특별한 위규 사항이 없어서 지난주(12~16일) 업무에 복귀 조처했다”고 말했다.
애초 청와대는 정 행정관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자 그를 대기 발령하고 징계 회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사이 업무 복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김 전 비서관 사건을 계기로 물어보자 그제야 공개한 것이다.
정 행정관의 업무 복귀 사실이 일부 알려진 직후, 김판석(62) 인사혁신처장은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공무원의 갑질’ 문제 심각성을 언급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김 처장은 최소 감봉 처분 등 강화된 징계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갑질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부당한 업무 처리, 편의제공 요구, 인격 모독 등 갑질에 대한 공직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한층 강화된 징계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최소 감봉 처분을 할 예정이다. 비위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이 인정되면 파면 혹은 해임 조치된다. 지금까지는 강등이나 정직을 적용받았는데 앞으로는 공직에서 물러나 3~5년간 재임용이 제한되는 것이다. 올해 말에 공무원 징계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년 2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갑질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갑질 문화 개선”을 문재인 정부의 국민주권 분야 7가지 성과 중 두번째로 꼽았다.
정한모 행정관의 ‘무사복귀’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양반이 지금 나랑 장난하고 있어?”, “그쪽이 통화한 내역, 주고받은 문자 다 한번 볼까요?”, “원의(기관) 사업 한번 다 떠들어(들추어) 볼까?” 녹취록에 나오는 정 행정관의 말이다. 이게 ‘부당한 업무 처리’, ‘인격 모독 등 갑질’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런데도 청와대는 “특별한 규정 위반이 없었다”고 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도 사건이 있었다. 청와대에 파견 나온 공무원이 현지에서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것이다. 이 사건 때도 청와대는 쉬쉬하며 해당 공무원을 원소속기관에 복귀시킨 뒤 징계 절차를 밟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 2월 한 신문의 보도를 통해서다.
“김종천 전 비서관의 음주 적발 시각이 0시35분, 경호처 5급 직원이 술에 취해 다른 손님 코뼈를 부러뜨린 시각이 새벽 4시가 넘어서다. 청와대 일과가 오전 7시에 시작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때까지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만 봐도 기강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검찰 관계자)
이번에 문제가 된 특감반의 지휘 체계를 보면, 직속 상급자가 반부패비서관, 그보다 상급자가 민정수석이다. 그림으론 ‘조국 민정수석-박형철 반부패비서관-특감반’이다. 정 행정관, 김 전 비서관, 경호처 5급 직원의 처분을 따질 때 대통령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는 최종 책임자는 민정수석이다. 대통령의 최고위 법무 참모인 것이다. 조 수석 아래엔 청와대 내부 기강을 다잡으라고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 때문에 야권에선 조 수석의 사퇴와 경질을 요구하지만, 조 수석 자신은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 수석은 최근 자신의 직무가 아닌 사안에 대해 책임을 거론했다.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다. 특감반 김 행정관의 비위가 적발돼 대검으로 돌려보낸 뒤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제 성장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정치·정책은 ‘결과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조 수석은 특감반의 추가 비위가 알려진 30일에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거나 “결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연달아 터진 사고를 보면 정권 말기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심각성을 깨닫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청와대 구조가 단선이라, 반부패비서관, 민정수석, 비서실장 중에 책임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우병우(민정수석) 지키겠다고 안간힘을 쓰다 더 큰 화를 부른 박근혜 정부의 선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대 민정수석 중에 2년 이상 재임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조 수석도 잘 아는,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한 말이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