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유치원 관련 발표가 잇따랐다. (왼쪽 사진부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립유치원 집단 폐원’ 등에 대한 정부 대응 방침을 밝혔고, 박영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장은 조희연 교육감을 만났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설명했다. 연합뉴스, 강창광 기자,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유치원 교비가 무슨 반반 치킨입니까?” “학부모 부담금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겁니까?”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유치원 관련법 개정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이다. 한국당은 30일 국가지원회계와 일반회계 분리를 뼈대로 하는 유아교육법 등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마련해 공개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유아교육 현장의 대란을 막고 사립유치원의 교육 정상화를 위해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 확보, 학부모 감시권 확대 강화 등 원칙 하에 개정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 자체 법안을 다음달 3일 심사가 이뤄지는 국회 교육위에 낼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앞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치원 3법’과 함께 병합심사가 이뤄진다. 전문가와 시민단체·학부모들은 ‘박용진3법’과 비교해 한국당 법안이 후퇴했다고 보고, 사실상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가 요구하는 ‘사유재산 인정’을 우회적으로 반영한 안이라고 비판했다.
■ 한국당 ‘유치원법’ 어떤 내용 담겼나?
한국당 ‘유치원법’ 개정안의 핵심은 유아교육법상에 사립유치원 회계를 설치하고, 국가지원회계와 일반회계로 구분하는 것이다. 현재 유아교육법상 국공립 유치원 회계는 있지만, 사립유치원 회계는 없다. 이 개정안에서 말하는 국가지원회계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나 지원금(바우처) 등을 말한다. 국가지원회계는 에듀파인을 통해 교육청에 보고하고 정부의 감시를 받도록 했다. 특히 누리과정 지원금(바우처)을 교육 목적으로 사용해야한다는 법 조항을 신설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 조항을 새로 넣었다.
일반회계는 특별활동비나 교재비 등과 같은 ‘학부모 부담금’과 유치원 운영비, 시설부담금, 적립금 등을 말한다. 국가지원금 수입 이외 모든 수입이 일반회계라고 보면 된다. 일반회계는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고 학부모운영위에 보고하고 자문받도록 했다. 일반회계도 에듀파인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관할청이 일반회계의 운영과 편성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외에도 유아교육법에 사립유치원의 위반 사실을 공표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법률과 시행령 등에 의해 중대한 위반사실이 발생하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단, 위반 사실 공표 전, 소명 기회를 부여했다.
한국당은 또 사립학교법 일부 개정안도 공개했다. 이 안에서는 법인유치원의 경우 ‘교비회계와 법인회계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 운영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한국당은 “사립유치원의 경우 초·중·고등학교에 비해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며 “법인 운영비를 교비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학교급식법 개정안도 냈는데, 원아수 300명 이상인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만 학교급식법 적용을 받게 하기로 했다. 박용진 의원이 모든 유치원의 학교급식법의 적용을 받도록 한 것과 비교가 된다.
■ 한국당 법안 조목조목 살펴보니
한국당은 에듀파인 도입을 강조하며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이 보장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개정안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유치원은 에듀파인 사용을 제외한다’라는 조항을 포함시켜 빠져나갈 여지를 열어뒀다.
무엇보다 한국당 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지원금과 학부모 부담금으로 구분 회계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학부모 부담금의 경우 사립유치원이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문제가 많다. 김한수 경기대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는 한국당 안에 대해 “유치원 교비가 무슨 반반 치킨이냐”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유치원들이 공시하는 예·결산안은 세세한 항목을 확인할 수 없어 회계 지식이 없는 학부모들은 제대로 감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도 ”학부모가 낸 원비를 따로 관리하면, 사실상 에듀파인을 안하겠다는 것”이라며 “궤변”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개정안에서 “관할청은 일반회계의 운영과 편성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 부분이 ‘꼼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관할청이 감사하려고 하면 유치원이 자율성 조항을 들이밀 수 있다”며 “사실상 원비를 원장들이 마음대로 쓰게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반발했다. 윤정인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자유한국당은 한유총의 대변인처럼 보인다”며 “현재도 학부모 부담금은 상한선이 없는데, 학부모들 원비는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구분회계안은 현재의 감사 체계마저 흔든다는 지적도 있다. 김남희(변호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유치원은 사립학교법,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적용을 받는 교육기관”이라며 “구분회계는 교육기관의 투명성과 공공성에 반하는 것이고, 비리 유치원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말했다. 특히 사립유치원에게 구분회계를 인정해주면, 다른 사립 초·중·고교 등 사립학교법상 기관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다른 사립 초·중·고교 기관들도 구분회계를 요구할 경우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도 “한국당 안대로 하면, 법 개정 전 사립유치원이 법률상 학교여서 학부모 부담금이든 아니든 목적을 벗어난 용도로 사용하면 배임죄로 처벌하던 규제마저 작동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집행위원은 “일반 회계로 전환하면 그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유치원생 교육 및 돌봄에 소요되는 비용에 쓰지 않아도 형사적으로 문제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무상보육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2012년 무상보육 정책이 실시되면서 2조가 넘는 국민 세금이 사립유치원에 들어갔으니, 운영 및 회계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어느 유치원을 지원할지 말지 결정하려면 회계 정보가 필수적이다”며 “구분회계안으로는 무상보육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제29조 1항의 단서 조항을 보면, 학교법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의 경우 “일반회계를 법인회계를 통합하여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지금은 교비회계에서 법인회계로 돈을 보낼 수 없는데 그걸 풀어주자는 것”이라며 “범죄의 합법화”라고 비판했다.
김한표 국회 교육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맨 앞줄)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내놓을 사립유치원 관련법은 김 간사가 비공개로 보고한 뒤 논의가 진행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보조금 전환 안해 처벌 강화 피하고, 사유재산 우회 인정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법에서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해서, 보조금에 따른 관리·감독을 명시하고 있 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면 횡령죄가 적용되는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유치원 회계의 목적 외로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당 안에서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지 않고 지원금 형태로 그대로 뒀다. 자유한국당은 국가가 전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형태의 ‘바우처’ 정신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금 형태로 둘 경우 처벌도 박용진법에 비해 약화된다. 그 처벌마저도 보조금이나 지원금의 경우만 해당돼, 학부모 부담금 등을 목적외로 사용해도 처벌 조항이 없다.
한유총이 그동안 주장했던 ‘사유재산 인정’ 효과를 낸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장은 “한국당이 낸 자료의 세출 항목에 사립유치원 운영, 시설 설치 등이라고 표기해놨는데 이는 시설 사용료를 의미한다”며 “우회적으로 사유재산을 보전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도 유치원은 학원과 달리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이며, 사업소득에 세금도 물지 않는다. 유치원 건물과 토지의 취득세·재산세 감면, 상속 시 납부유예 뒤 장기납부 등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학부모 부담금 등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우회적으로 시설사용료까지 허용해둔 점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있다. 이한상 교수는 “사립유치원이 엄연한 교육기관이라 지금은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혜택을 누리는데 우회적으로 사유재산까지 보전해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학교급식법을 원아수 300명 이상인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전국 유치원 9029곳 중 원아가 200명 이상인 사립유치원은 591곳에 불과하다. 300명 이상으로 하면 실제 법 적용을 받는 유치원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한편, 한국당은 이번 사립유치원법 관련 심사를 전면 공개해 국민적 판단을 구할 뜻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법안 심사에 대한 소위원회 활동을 중계방송으로 공개해 국민적 판단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법안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자유한국당 법안심사소위의 활동이 국민들에게 읽혀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양선아 정유경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