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과 집행 총괄 vs. 의사결정 심의·의결 기능만
사법행정회의 외부인사 참여 및 권한 등도 찬반 의견
법관 설문조사, 법원장회의 거쳐 다음주 최종안 확정
‘개혁 포기’ 비판, “가능한 신속한 결정 필요” 주장도
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4층에서는 법관과 법원 직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사법행정제도 개편안에 대한 법원 내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법원행정처 제공.
사법행정 제도 개혁을 위한 대법원 안 확정을 앞두고 법원이 내부 토론회를 여는 등 다시 의견수렴에 나섰다. 사법발전위원회와 후속 실무추진단을 거쳐 법률안까지 마련된 상태에서 추가로 의견수렴을 하는 것이 ‘개혁 실기와 후퇴’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3일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원 토론회'는 법원 내부망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 법원에 생중계된 가운데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핵심 쟁점인 ‘신설 사법행정회의의 권한과 위상’을 놓고 발제자들부터 뚜렷한 의견차이를 드러냈다. 사법행정회의가 의사결정 기능 말고 집행 기능까지 가져야 하는지, 대법원장의 권한 상당수를 사법행정회의가 넘겨받아 총괄하는 것이 헌법상 문제는 없는지 등이 논란이 됐다.
사법발전위와 후속추진단의 다수의견을 대표한 유지원 변호사는 “이번 개혁은 과거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를 통한 권한 남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행정처 권한 분산만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회의체인 사법행정회의가 대법원장 한 사람이 독점하던 때와 같이 권한을 남용하리라는 것은 기우다. 일부 주장대로 사법행정회의가 의사결정만 맡고 대법원장이 지금처럼 집행 기능을 독점하면 대법원장의 기존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된다. 의사결정과 집행 기능의 분리로 인한 문제도 예상된다. 사법행정회의는 대법원장과의 권한 분산 차원에서 지휘감독권까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기 고법판사는 후속추진단 내 소수의견을 밝히면서, “헌법상 최고 사법행정기관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총괄 권한을 사법행정회의로 넘기면 대법원장이 대법원을 대표해 사법행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위헌 소지가 있다. 사법행정회의에 법관이 아닌 위원이 참여하는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수의견대로 대법원장에게 독점된 사법행정 의사결정 및 집행 권한을 사법행정회의에 그대로 이관하면 사법행정회의가 ‘또 다른 법원행정처’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할 위험이 있다. 사법행정회의가 심의의결기구로 의사결정권만 행사한다는 점을 명확히하자”고 말했다.
사법발전위 전문위원으로 사법행정제도 연구를 맡았던 함윤식 변호사는 “제때 개혁입법이 이뤄지지 못하면 사실상 개혁 거부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분리된 사법행정 기능이 다시 사법행정회의로 귀속됨으로써 권한 분산이라는 기본방향이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 신설 사법행정회의가 그런 기능을 적절하게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며 “헌법적 관점에서도 ‘법원’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권한을 포기하거나 방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후속추진단에 참여했던 전영식 변호사도 “현행 헌법으로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심의·의결하고, 견제하는 기구로서만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 사법행정의 최고기관으로 보는 (다수의견의) 총괄기구안은 현행 헌법체계에선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법행정회의의 ‘인적 구성’과 관련해선, 사법행정회의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데 대한 법원 일각의 우려가 일부 드러났다. 발제를 맡은 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사법부 독립은 법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것이다. 사법부 독립은 법관들만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독단이다. 법관과 비법관이 동수로 사법행정회의를 구성하는 경우에만 실질적인 논의와 설득, 동의 절차가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법행정회의 위원 전부를 비상근으로 하는 것은 사법행정회의를 형해화하는 장애가 된다. 사법행정회의가 의사결정기구로서도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상근 위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법원직원 이근호 참여관은 후속추진단이 마련한 법원조직법 개정 의견 대부분에 찬성 또는 조건부 찬성 의견을 밝혔다. 그는 “사법행정회의를 구성할 외부 위원이 철저히 국민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단체, 민주화운동단체 등을 통해 추천을 받도록 해야 한다. 사법행정회의에 법원공무원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위 산하 분야별 위원회 구성에 관한 토론에서는 분야별로 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할 것인지, 비법관 위원도 분야별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할 것인지 등이 쟁점이 됐다. 법관인사운영위원회에 대해서도, 대법원에 사법행정회의와 별개의 독립된 위원회로 하는 방안과 사법행정회의 산하 위원회로 두는 방안이 있다고 김민기 고법판사가 발제를 통해 밝혔다. 김 판사는 “법관인사운영위원회를 대법원 산하 독립위원회로 두더라도 판사 보직에 관한 기본원칙은 사법행정회의의 승인을 받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법관이 아닌 사람이 법관 인사 초안을 마련하도록 할 경우 적절한 인사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환영사를 통해 “사법행정제도 개선을 위한 법원행정처 개편 방안은 지난 70년간 사법부가 유지해 온 사법행정의 체계와 근간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중요 사안 결정에 있어 법원 가족 여러분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의견수렴 절차는) 국회와 법원 내부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날 토론회에 이어, 5일부터 12일까지 전국 법관을 대상으로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향의 주요 쟁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다. 4일에는 사법발전위원회 최종 회의가 열리며, 7일에는 전국법원장회의를 통해 법원장들의 의견도 수렴하게 된다. 대법원은 의견수렴 결과를 토대로, 국회 사법개혁특위 일정에 맞춰 다음주 중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