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역사 안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1000인의 김용균들 -‘구의역 김군과 김용군의 만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정규 기자
“구의역에서 일하다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군의 동료입니다. 3년 전 김군의 사고의 이후 김군의 동료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2인1조 원칙이 지켜지고 사고를 조장하는 각종 설비들이 개선됐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외주업체의 비정규직이었다면 우리는 위험근무를 거부하지 못했을 겁니다. 3년 전 김군이 숨지던 그날 김군의 어머니께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절규했습니다. 제2의 김용균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죽움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합니다”(서울교통공사 노조 임선재 PSD 지회장)
“3년 전 김군이 열차에 숨진 이 자리에 다시 선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저희 태안사업소 동료 고 김용균에게 일어났습니다. 서부발전 제1노조는 얼마 전 ‘용균씨 사고는 본인의 과실이 크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번 사고는 3년 전부터 설비를 개선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원청이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투쟁이 언제 끝날지 잘 모릅니다. 하루 빨리 유족이 원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 냉동고에 싸늘하게 안치돼 있는 용균이가 따뜻한 곳에 가길 바랍니다”(한국발전기술 태안지회 이준석 지회장)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석탄 이송기계에 끼어 숨진 지 40일째인 18일. 서울 구의역에서 3년 전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진 김군의 동료들과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동료들이 만났다. 이들은 김군과 김용균씨를 추모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촉구했다.
서울교통농사노조·발전비정규직·비정규직100인대표단 등으로 구성된 ‘청와대로 행진하는 1000인의 김용균 행진단’은 18일 오후 1시께 서울 광진구 구의역 4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구의역은 지난 2016년 5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였던 김군이 ‘1인2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곳이다.
1000인의 김용균 행진단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있는 구의역 김군들과 여전히 생사의 경계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태안화력 김용균들이 만나 청와대로 행진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간접교용 노동자의 재해 경험은 평균 37%로 원청 정규직보다 2배 높았다.
오후5시께 전태일 동산 앞에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 이주빈 기자
1000인의 김용균 행진단은 기자회견 뒤 구의역을 출발해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한다. 구의역→건대입구→평화시장→전태일 동상→광화문분향소→청와대 사랑채로 이어지는 행진이다.
이날 오후 5시께 전태일 동상 앞에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가 열렸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우리의 권리는 나라가 찾아주지 않는다.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는 신념으로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사회는 10년 20년뒤에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며 “대통령께서 공공기관에서라도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회를 마친 300여명의 참가자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김용균 분향소로 이동했다.
분향을 마친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이후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행진했다. 전태일 동상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부터 걸어온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모습을 본뜬 김용균 조형물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는 저녁 8시부터 ‘우리가 김용균이다’ 문화제가 열렸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왼쪽 끝) 등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설치된 고 김용균씨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조형물 앞에 멈춰 섰다. 이정규 기자.
이날 문화제가 시작하기 직전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고 김용균씨의 사망사고 원인을 분석할 진상조사위원회(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을 이낙연 국무총리가 위촉한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태의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 발표에는) 진상조사위가 규명한 진실을 규명한다면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대책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빠져있다”라고 말했다. 또 “수많이 죽어가는 우리 동지들을 더는 보고 견딜 수 없어 공동투쟁에 나섰다”며 “사고 근본원인인 죽음의 외주화 하청 산업을 끊어낼 때, 이 싸움은 끝난다. 시민사회 시민들과 함께 모아서 19일 이후 투쟁을 선포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교대생이라고 밝힌 윤아무개씨는 “나는 교사가 될 것이다. 나에게는 (고 김용균과 같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문제다”라며 “어쩔 수 없는 죽음 같은 건 없다. 그가 겪은 고통과 불합리함은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우리는 김용균의 죽음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100인 대표단 소속’ 6명은 이날 오후 3시께 청와대 정문 앞인 신무문에서 가림막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했다.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100인 대표단 제공.
한편,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100인 대표단 소속’ 6명은 이날 오후 3시께 청와대 정문 앞인 신무문에서 가림막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했다. 이들은 △고 김용군씨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악법 폐기와 노조법 2조 개정 △공공부문의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불법파견 처벌과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 등 6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청와대 100m 이내는 집시법 금지 구역이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절차대로 연행했다”고 설명했다. 6명 중 1명은 연행 도중 허리에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정규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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