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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민 깊은 ‘사법입원제’...“환자도 결정권”vs“치료 놓칠 위험”

등록 2019-01-31 05:00수정 2019-01-31 13:55

【‘임세원법’ 애도를 넘어 대안으로 ①】

임세원 교수 사망 한달...정신과 진료 현장
서울시은평병원 24시간 진료실 가보니

국회에서는 ‘임세원법’ 발의 잇따라
비자의입원 제도 변경이 논의 핵심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입원환자가 의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입원환자가 의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24일, 서울시은평병원에서 조현병 환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두달간 ‘자의입원’(진단 뒤 자신의 의지에 따른 입원)을 했다가 퇴원해 노숙인 쉼터로 돌아간 뒤 하루 만에 나타난 환자는 의사에게 재입원을 요구했다. 쉼터의 숙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중에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진 셈이다.

최근 여야는 이른바 ‘임세원법’을 앞다퉈 발의하고 있다. 의료인에게 폭력을 가하면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과 정신질환자 치료·관리를 강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뼈대다. <한겨레>는 ‘임세원법’이 시행될 현장을 찾아가 ‘안전한 진료’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해소’라는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2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지난 16일 찾은 첫번째 현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 공공병원인 서울시은평병원이었다. 매년 외래 5만3천명, 입원 6만1천명(2017년 기준)의 환자가 진료를 받는다. 입원환자 가운데 41.7%는 의료급여 1·2종 환자, 8.6%는 행려환자(노숙인)다.

이곳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24시간 진료실’이 있다. 종합병원의 응급실 같은 곳이다. 이날 낮 30년 넘게 조현병을 앓는 60대 여성을 경찰이 데려왔다. 함께 사는 친언니가 “나흘 전부터 약을 중단했더니 망상 증상이 심각해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24시간 진료실’을 찾는 환자 대부분은 이와 같은 ‘응급입원’ 환자다. 응급입원이란, 자해·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 환자를 경찰이 데려와 의사 진단을 받은 뒤 3일(공휴일 제외)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응급입원 뒤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나 ‘행정입원’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복을 갈아입히려고 할 때 환자들이 가장 난폭해져서 할퀴거나 물컵을 던지곤 해요. 자신은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의사가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거죠.” 24시간 진료실에서 4년간 근무한 간호사의 말이다. 진료실에는 건장한 남성 보호사 2~3명이 상주한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의 격리안정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보호사가 침구를 정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의 격리안정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보호사가 침구를 정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입원 제도에 불만이 있는 것은 환자만이 아니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응급입원뿐만 아니라 보호의무자가 입원을 신청하거나(‘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지자체장이 입원(‘행정입원’)시킬 때도 여러 단계의 판단·승인 절차가 추가됐다. 그 뒤 헌법재판소는 옛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법 개정에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일부 반영되긴 했으나, 환자 가족은 자해·타해 위험이 있는 상황인데도 경찰이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는다고, 경찰은 병원에 데려가도 의사가 입원시켜주지 않는다고, 의료진은 복잡한 입원 절차로 인해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 때문에 이른바 ‘임세원법’ 논의에서도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환자 당사자와 가족, 의사,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이해관계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제각각이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신질환자는 손쉽게 배제와 격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극단으로 상충하는 가치와 이념이 개입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당장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정신질환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한쪽 극단의 목소리와, 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아예 강제입원(비자의입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다른 쪽 극단의 주장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는 치료의 대상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처럼 자유와 권리를 지닌 존재인가. 정신질환 유무를 판단해 강제입원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정신질환자들은 해방 이후엔 ‘가정에서 시설 감금으로’,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로는 ‘시설에서 병원 중심의 치료로’,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병원에서 지역사회(복지)로’ 계속 이동해왔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진들은 치료의 관점에서 환자를 대상화하여 정신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복지 측면에서 보는 정신장애에 대한 고민은 치료에 더해 사회적 삶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여야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도입을 주장하는 ‘사법입원제’는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정신질환자 입원에 대한 판단을 의사만 할 게 아니라 가정법원 판사(국가)한테 맡기자는 것이다. 독일·프랑스에서는 사법기관이, 영국·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독립된 준사법기관인 정신보건심판원이 정신질환자 입원 심사를 맡고 있다. 이동진 교수는 “절차의 정당성 측면에서 정신질환자도 직접 판사를 대면해 말할 권리를 보장해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반면 남민 서울시은평병원 병원장은 “정신과 의사가 입원해야 한다고 진단했는데 판사가 보기엔 멀쩡해 보이면, 정말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낮병동 창가에 놓여있는 수생 식물들. 원예 교육 시간에 환자들이 만든 작은 화분에는 각자의 새해 바람이 담겨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낮병동 창가에 놓여있는 수생 식물들. 원예 교육 시간에 환자들이 만든 작은 화분에는 각자의 새해 바람이 담겨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임세원 교수 같은 사고가 우리 병원에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만성·중증 정신질환자를 진료하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6일 서울시은평병원에서 만났던 의사의 말은 8일 만에 현실이 되었다. ‘제2의 임세원’을 막기 위해, 정신질환자 처벌과 격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손쉬운 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인 답이 될 수는 없다. 집중된 위험과 보편적 인권 사이의 좁은 길로 가자는 것은 고 임세원 교수가 남긴 숙제이기도 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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