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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론전+법리 다툼’…보석청구서에 나타난 양승태 재판전략

등록 2019-02-20 17:08수정 2019-02-20 19:51

200자 원고지 81장 분량 보석청구서 제출
“수사기관의 언론 플레이…낙인 찍힌 채 수사” 주장
직권남용죄 여러 판례 인용해 “직권남용 아니다” 항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71·구속기소) 전 대법원장은 지난 19일 변호인을 통해 장문의 보석청구서를 법원에 냈다. 법조계에서는 이 청구서를 두고 사법농단 사건 핵심 피고인의 “변론 전략 압축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1차 패배’한 양 전 대법원장이 1심 재판을 앞두고 검찰과 법리 싸움은 물론 ‘법정 밖 여론전’에도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양 전 대법원장 쪽이 지난달 24일 구속 이후 27일 만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에 낸 청구서는 200자 원고지로 81장 분량이다. 눈에 띄는 것은 양 전 대법원장 쪽의 ‘프레임 전략’이다. 보석청구서에는 “수사기관의 언론 플레이”를 직접 거론하며 “수사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도가 이뤄지면서, 피고인에 대한 수사 개시 이전부터 이른바 ‘사법농단의 최정점’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 의식”을 언급하며 “현재 구속영장 제도가 일종의 징벌이자 보복감정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검찰의 부당한 피의사실공표 등으로 여론 재판을 받은 ‘피해자’라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 쪽은 20만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이유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심 변론 포인트도 일부 내비쳤다. “범죄사실들은 피고인에 대한 사전보고 내지 피고인의 결재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 재판 독립성 침해에 대해선 “어떠한 지시를 하더라도 법관들이 이에 따를 리 없다. 피고인이 지시했다는 취지와 같은 결론의 재판을 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검찰 공소사실은 양 전 대법원장이 법관들의 재판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법원조직법에는 (대법원장이 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직권남용죄와 관련한 법원의 판례를 여럿 인용하며 “하급자가 작성한 검토보고서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상급자의 지시행위가 곧바로 직권남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0일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쪽이 재판에서 동의하지 않을 검찰 쪽 증거까지 사전에 다 볼 수 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사실상 유무죄 판단에 준하는 보석신청을 하는 것은 보통의 변호사라면 권하지 않는 변론 전략”이라며 “아마도 양 전 대법원장이 (보석신청을) 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보석 심문은 오는 26일 열린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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