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 보수화’의 원인이 젠더 갈등이라는 세간의 풀이는 ’계기’를 본질로 오해한 결과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여섯번째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결국엔 바꾼다 #미투가 해낸다”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대 남성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분석과 보도가 지난 연말부터 쏟아지는 가운데, 이를 포함한 전반적인 청년 대책의 방향을 모색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의 연구 용역 결과가 나왔다. 여성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 등 ‘젠더 갈등’이 지지층 이탈의 주요 원인이라는 세간의 풀이와 달리, 젠더 갈등은 하나의 ‘계기’일 뿐 이미 성별·직업 유무·결혼 여부·자녀 유무 등에 따라 세분화된 청년들의 욕구를 ‘기성세대식 정책’이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어서 눈길을 끈다. 정책기획위는 22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포용국가와 청년정책 ― 젠더 갈등을 넘어 공존의 모색’ 토론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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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은 외피일 뿐 젠더 갈등 자체는 이번 연구에서도 두드러진다. 21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미리 살펴본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의 발제문 ‘새로운 세대의 의식과 태도: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에서 여성은 90%가량이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40%가량이 ‘남성에게 불평등하다’, 20%가량은 ‘이미 양성평등하다’고 답했다. 특히 남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응답은 20대 후반 남성(49.2%)이, 양성평등하다는 응답은 20대 초반 남성(24%)이 가장 높았다. 20대 남성 다수가 보기에 한국은 이미 양성평등하거나 오히려 남성이 더 차별받는데, 사회적 쟁점은 ’여성 차별’이고 정부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니 분통이 터질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청년 남성들은 왜 남성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조사에서 남성들이 남성 차별 사례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여성할당제, 지하철·주차장 등의 여성 전용 공간 같은 정책적·문화적 역차별(20%)이었고, 남성상 강요(18.1%)와 군 복무 문제(15%)가 그 뒤를 이었다. 이와 관련해 전효관 전 서울시 혁신기획관,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김선기 청년문화연구자가 20~30대 16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청년정책, 새로운 좌표의 설계’ 발제문)를 보면, 청년 남성들의 ‘박탈감’과 ‘억울함’이 확인된다. ‘나는 군대에 다녀와 시간과 기회에 손해를 봤고 희생했지만 보상도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여성은 할당제 등으로 내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게 20대 남성의 전반적인 의견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보기에 구조적 차별을 받은 건 자신의 어머니 세대와 같은 ‘과거의 여성’이지, 또래이자 경쟁자인 젊은 여성이 아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차별 때문에 현재 아무런 차별을 당하지 않는 젊은 여성이 혜택을 보는 건, 차별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젊은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전효관 전 기획관 등은 이를 “남성들의 경우 자신의 어려움을 여성우대 정책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보인다. ‘역차별’ 담론은 정책 맥락이라기보다 미투, 혜화역 시위와 같은 계기적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정부가) 자신들의 상황을 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여성, 386세대, 현 정부 등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취업, 직장생활, 빈곤 등의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남성들의 눈에 보이는 정책은 ‘여성 배려’밖에 없으니 그 불만이 젠더 갈등의 양상으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첫 설문에서 ‘남성 차별’ 인식이 특히 높았던 남성이 20대, 즉 대체로 취업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남성이라는 점도 본질은 젠더 갈등이 아님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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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공정성 vs. 결과의 공정성 청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놓칠 수 없는 열쇳말이 ‘공정성’이다. 김경희 교수 등의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기회를 보장한다’고 답한 남성은 35.5%였고, 여성은 그보다 낮은 19%였다. ‘경제적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답은 그 절반도 안 돼 남성은 15.6%, 여성은 6.4%였다. ‘우리 사회는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에 동의한 남성은 36.6%, 여성은 20.2%였다. 남성이 좀 더 긍정적이긴 하지만, 성별과 무관하게 청년들은 대체로 한국을 불공정한 사회로 여긴다고 볼 수 있는 결과다.
그런데 청년들은 이렇게 기회와 과정, 결과 모두 불공정하다고 보면서도, 그 돌파구는 ‘불공정의 교정’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경쟁’에서 찾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한 남성이 58.3%, 여성이 43.9%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 응답 역시 20대 남성(초반 65.2%, 후반 59%)이 가장 높았다.
이는 청년, 특히 20대 남성이 공정성을 ‘기회의 평등’으로만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무원시험 열풍, 스펙 경쟁,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효관 전 기획관 등은 심층 인터뷰 분석에서 “한국 사회의 불공정에 저항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보다는 ‘나도 억울하다’는 을의 위치에서 능력주의를 수용하는 태도가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청년들 상당수는 공정함을 노력에 대한 차등적 보상으로 인식하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의 노력을 부인하고 ‘무임승차’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본다. 사회적 기준과 정책 방향의 공정함을 자신들에 대한 차별로, 나아가 기존 세대의 허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며 “이런 결과 사회적 약자 배려와 재분배를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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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라고 다 같은 청년이 아니다 심층 인터뷰 결과를 조금 더 살펴보면, 청년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이슈 대응을 두고 “기존세대의 관심사에 집중한 것일 뿐, 자신들의 상황에는 무관심하다는 식으로 반응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남성은 정부 정책이 이념편향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여성은 육아·여성 차별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폭력 문제에는 단호히 대처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책 체감도도 아이를 키우는 30대 중반을 제외하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청년 정책이 “청년의 욕구에 부응하지 않는 숫자 중심의 일자리”와 가구 중심이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1인 가구, 결혼·출산 의사가 없는 청년이 급증하고, 취업 자체가 어려운 조건에 놓인 이도 많은 상황으로, “정책 패러다임 자체가 청년들과 조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의 청년이 빈곤, 불안, 취업, 직장생활, 육아 등 각각 다른 이유로 일상생활의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어, 이미 그 세대 안에서 성별, 직업별 또는 취업 유무, 결혼 여부, 자녀 유무 등에 따라 세분화돼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청년들의 다양성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청년 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며 “청년들의 사회적·정치적 기회구조를 넓혀야 한다. 당사자가 스스로 발언하고 의제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논의기구와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