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미세먼지 속에서도 셀카를 찍으며 서울 경복궁을 즐기고 있다. 이정규 기자.
5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종로구 경복궁. 사상 처음으로 닷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되는 등 최악의 공기 상태를 보인 이날 경복궁에는 띄엄띄엄 외국인 관광객들이 잿빛 경복궁과 광화문 등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서울을 즐기고 있었다. 한복을 빌려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출근길 시민들과 달리 마스크를 낀 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5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앞 경복궁 돌담길에서 관광객들이 궁 인근을 산책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광화문 빌딩들이 뿌옇게 보인다. 이정규 기자
미국 시카고에서 여행을 왔다는 데니스 켈리(29)는 “홍콩과 일본을 여행한 뒤 스탑바이로 이틀 동안 한국에 머물기 위해 어제 왔다”며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인들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홍콩의 하늘은 더 깨끗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미세먼지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말했다. 한복을 입고 있는 중국인 시 루판(23)도 켈리씨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는 “어린 남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걸 보고 날씨가 추운가 싶었다”며 “중국 베이징과 서울의 대기오염이 비슷한 수준인 것 같다. 목이 건조하다. 날은 좋지만 공기는 오늘이 최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루판 옆에서 똑같이 한복을 입은 중국인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목을 만지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2주 동안 여행 왔다는 모니카 감보아(29)는 “멕시코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한국 갈 때는 마스크를 꼭 챙겨가라’고 했다”라며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경고 메시지를 계속 받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온 우이 제임스(42)는 부인과 경복궁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한국에 미세먼지가 심한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파란 하늘을 아직 못 봤다. 한국에 파란 하늘이 있나? 매일 이런 것인가”라고 물으며 “한국에는 앞으로 5일 동안 더 머문다. 파란 하늘을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임스는 스마트폰으로 오는 긴급재난문자를 보여주면서 기자에게 무슨 뜻인지 묻기도 했다. 영어 제목에 한국어로 적힌 경고 메시지에는 ‘서울특별시청, 오늘 01시 서울지역 초미세먼지(PM-2.5) 경보발령. 어린이, 노약자 등은 실외활동 금지, 마스크 착용 바랍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는 “건강을 보호하고 싶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서 영어로 번역해줘야 한다”라고 했다.
5일 오후 4시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진입로 앞의 모습. 이준희 기자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외국인들도 미세먼지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싱가포르 관광객 브랜든(18)은 “한국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글로벌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며 “직접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공기가 매우 안 좋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이 자국보다 공기가 좋다는 관광객도 있었다. 아이돌그룹 소녀시대를 좋아해서 한국에 놀러 왔다는 필리핀 관광객 비앙카(23)는 “한국 뉴스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한국의 미세먼지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한국에 오는 결정을 하는 데는 전혀 영향 미치지 않았다”며 “한국의 미세먼지가 심한지 모르겠다. 필리핀이 훨씬 심하다. 한국은 공기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규 이준희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