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기소, 비위 통보 내용을 확인해 조처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해당 판사들을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지 않아 사법부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6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기소 내용과 비위 통보 내용을 확인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비위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권순일 대법관과 관련해서는 “그 부분은 비위 통보인지 (검찰이) 참고용으로 통보한 것인지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법원은 ‘적절한 조처’를 예고하면서도 정작 기소나 비위 통보 대상이 된 판사들을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의 수사 자료나 비위 통보 내용을 믿기 어려우니 별도의 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행정처 관계자는 “검찰이 보내온 자료를 보고 사실 확인부터 할 단계이다. 징계 절차를 밟거나 재판 업무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우려면 사실 확인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중한 사안을 대하는 대법원의 이런 ‘느긋함’은 처음이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말 취임하면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가장 먼저 얘기할 부분”이라고 밝혔지만, 한달을 훌쩍 넘긴 그해 11월에야 추가 조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내놓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내부 의견을 더 듣겠다”며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 비판을 받았다.
법원이 다시 사실 확인을 이유로 시간을 끄는 동안 기소되거나 비위 통보가 된 법관들 다수는 평소처럼 재판 업무를 이어가게 된다. 임성근·신광렬·이태종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민사재판을 하고 있다. 심상철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광주시법원에서 소액 사건을 맡고 있다. 조의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와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도 역시 재판 업무를 맡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기소되거나 비위 통보를 받은 판사가 법원에 있는 것만으로도 재판에 부담이 된다”며 “판사 직무 윤리를 위반하고 조직적 비리를 저지르고도 재판하는 걸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재판 결과를 믿으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징계 착수가 늦어지면 남은 징계 시효조차 끝나버린다.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사람은 시효가 지나 징계를 받지 않고 경미한 비위를 저지른 사람만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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