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하나인데, 재판은 다섯군데로 나뉘어 진행된다. 법원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 14명의 사건을 5개 재판부에 분리 배당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곤혹스러운 재판을 앞둔 법원의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지난 5일 추가 기소된 10명의 전·현직 법관들과 ‘공모’한 결과라는 것이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그런데 기소된 14명에 대한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5개 재판부에 각각 분리 배당됐다.
구체적으로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행정처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형사28부 △임 전 차장은 형사36부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이 형사32부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형사21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은 형사27부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대부분 공범 관계에 있는 이들을 병합하는 대신 분리 재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는 10일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공범 또는 지시·실행 관계로 모두 연결돼 있고, 증인도 겹쳐 한 재판부가 병합·심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 관련자 수십명이 한 재판부에서 재판받은 ‘12·12와 5·18 사건’ 등을 예로 들었다.
법관을 지낸 다른 변호사도 “이런 사건을 여러 재판부로 쪼개어 심리하면 재판부별로 상이한 결론이 나올 수 있고, 선고 시점도 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재판부는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을 인정했는데, 다른 재판부는 무죄를 쓰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판결 이전에 재판부끼리 유무죄 심증의 공유나 공동 합의는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법원이 구태여 재판부를 분리 배당하자 당장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법원이 위험 부담을 회피하려고 일종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심을 단일 재판부가 맡아 유죄를 선고하면 항소심에선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에 무죄를 못 쓰게 될 우려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1심에선 여러 재판부가 나눠 맡아 유무죄가 각기 나오도록 하고, 사실심의 마무리인 2심에서 어느 한쪽으로 정리를 하려는 포석이 아니겠느냐”고 전망했다.
사법농단 재판을 가급적 빨리 끝내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각 재판부가 먼저 증거로 채택된 ‘증인신문 조서’ 등을 활용할 수 있어 단일 재판부가 할 때보다 훨씬 속도를 낼 수 있다”며 “법원 이미지에 불리한 사건인 만큼 재판을 오래 끌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일 “각 사건을 적시 처리가 필요한 중요 사건으로 선정하고,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무작위 전산 배당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왜 5개 재판부에 분산 배당을 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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