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 김용민은 한때 한국의 보수를 네가지로 유형화했다. 모태보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 보수 그리고 자본가 보수다. 모태 보수는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이고, 기회주의 보수는 “어떤 계기에선가 급작스럽게 보수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무지몽매 보수는 묻지 마 보수로 이른바 ‘가스통 할배’ 부류다. 이 셋에 자본가 보수를 더한다. 그는 “대한민국 보수정권은 보수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자본가 보수와 기회주의 보수의 합작품”이었고, 이 둘을 이어주는 존재가 ‘조중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칭 ‘목사 아들 돼지’의 ‘썰’로 치부하기엔 촌철살인의 풍자가 깃들어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좌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고 리영희 선생의 평론집 제목에서 딴 것인데, 실은 우리 사회에 널리 뻗어 있는 맹목적 반공과 냉전수구적 행태에 대한 질타에 본뜻이 있다. 황교안과 나경원 등 자유한국당 고위관계자들의 최근 발언과 행태를 보면 리 선생의 꾸짖음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한다.
제1야당 대표로서 취임 한달째인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두고 “한국을 무너뜨릴 독재 3법”이라고 목청 돋우었고, 나 원내대표 또한 “지금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느냐, 독재 지배로 가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고 가세했다. 우리 사회의 새 비전이나 가치를 설파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좌파독재’를 되뇌며 개혁입법에 몽니를 부리는 이들의 모습은 기괴하다 못해 ‘웃프다’.
김용민의 잣대로 볼 때 이들은 어떤 보수에 속할까? 솔직히 그의 보수유형론은 마뜩잖은 점이 있다. 주장은 재미롭지만 보수를 참칭한 ‘가짜 보수’, 즉 오직 기득권만을 앞세우는 수구의 실체가 또렷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 보수가 아예 없었거나 없는 건 아니다. 세계화와 선진화, 공동체자유주의와 선진통일 개념을 제시했고 사경을 헤매는 순간에도 “대한민국 잘해라”라며 나라 걱정을 하다 작고한 박세일 선생이야말로 진짜 보수이자 ‘개혁보수’였다. 새삼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