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러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재판장님, 다 아시겠지만 적극적인 소송 지휘를 부탁하는 차원에서 1분 정도만 발언하겠습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 임 전 차장 지시로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을 다수 작성한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앞두고 임 전 차장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형사소송법 74조 1항을 들었다. “(관련 법은 증인신문에서) 두 개 이상의 사항을 하나의 질문으로 묻는 복합질문과 포괄신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검사는 자기가 바라는 답을 유도해선 안 되고 재판장은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에 당부하듯 말했다. “판사는 법정에서 직접 조사한 내용을 통해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검찰의 증인신문을 재판장이 막아야 합니다.”
사법농단 실무 총책임자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은 자신의 재판에서 때로는 ‘재판장’처럼 소송 진행 방식에 훈수를 두거나 때로는 ‘변호인’처럼 증인신문에 직접 나서고 있다. 통상의 형사 재판 피고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날 임 전 차장은 자신의 변호인에 이어 ‘셀프 증인신문’에 나섰다. 임 전 차장은 “피고인과 오랜 인연이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마음이 아프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데 대해 상급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정 부장판사에게 “행정부와 입법부 협력 없이는 사법부 고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죠?” “일선 법원의 재판 독립이라는 가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지만 재판을 지원하는 행정처로서는 외부 국가기관과의 상호 협력 체계 구축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죠?” 등의 질문을 던졌다. 임 전 차장은 공소 사실과 관계없는 ‘사법부 예산 편성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하다 재판부의 제지를 받은 뒤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질문하겠다”고 신문을 마무리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3일 “임 전 차장과 정 부장판사는 상하관계였던 사이로, 과거 부하직원에 대해 본인이 직접 질문에 나선 것이다. 이 자체가 ‘압박’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피고인이 보충적 차원에서 증인신문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임 전 차장의 질문 내용을 살펴보면 증인에게 뭔가를 물어보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주장하는 바를 증인신문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의 답변을 얻어내 ‘증인도 자신의 의견에 긍정했다’고 주장할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검찰이 질문하기도 전에 “유도신문이다” “증인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 의견을 묻고 있다” 등 거듭 이의를 제기하다가 검찰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소송 지휘는 재판장이 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몇 번씩이나 (검찰에) 질문하지 말라고 하면 이게 과연 누구의 소송 지휘인지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자정께까지 14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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