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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법부 개혁,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등록 2019-04-05 19:40수정 2019-04-06 15:35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등 혐의로 구속된 지난 1월24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출근하며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등 혐의로 구속된 지난 1월24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출근하며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요즘 서초동은 대통령의 손끝 쳐다보느라 바쁘다. 그가 가리킨 곳에 ‘김학의 수사단’이란 것이 생겨났다. 투입된 검사만 13명이니 춘천지검 하나 정도가 통째로 매달린 셈이다. 언제 비슷한 일이라도 있었나 싶은데, 갖은 ‘흥행 요소’가 버무려진 사건이라 여론의 관심은 한여름 모래밭처럼 뜨겁다. 어느 조사에선 응답자의 67%가 대통령의 지시가 적절했다고 답했다. “당대표를 탄압하기 위한 부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를 반대쪽 선택지로 들이밀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테지만, 그걸 따지는 건 한가롭다.

다시 찾아 읽어본 최고권력자의 수사 지시문엔 정제되지 않은 분노가 넘실거린다. “대단히 강한 의혹”은 몇줄 안 가 “진실이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다. 대통령은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포청천 같은 표정으로 명령했다.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주기 바랍니다.”

장관 둘의 목을 걸라는 지엄한 분부에 허둥대는 검경, 흥미 만점 뉴스들에 눈이 팔린 여론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을 얼굴이 딱 한 사람 떠오른다. ‘사법부 개혁’ 논의가 실종된 지금의 현실을 누구보다 반길 사람, 전임자가 저지른 범죄 혐의의 ‘본산’(법원행정처)을 거의 그대로 승계해 운영 중인 사람, 그 본산을 혁파하겠다고 두번 세번 약속하고도 정작 국회에는 ‘법원사무처’로 간판만 바꿔 달겠노라 선언한 사람,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그는 스스로 약속했다. 지난해 9월20일 ‘담화문’까지 냈다. “상고심 제도 개선, 전관예우 논란이 계속되는 재판 제도의 투명성 확보 방안 등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 조치들에 관하여, 입법부와 행정부 및 외부 단체가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추진력 있는 ‘보다 큰’ 개혁기구의 구성 방안도 조만간 마련하여 밝히겠습니다.” 자신이 결단하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그가 밝힌 ‘방안’은 없다.

개혁 입법에 책임이 있는 국회는 물론 청와대도 관심 밖이다. 집권 여당은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서 사법부 개혁안을 원천 배제했다. 어느 야당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거 논의한다고 따로 만든 사법개혁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내년 4월 총선에 다가갈수록 입법은 멀어진다. 사법개혁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면서도, 사법부 개혁은 뒷전으로 물렸다. 수사 지시까지 직접 하는 대통령도 이 문제만은 침묵한 지 오래다.

“재판 청탁을 했다는 서영교 의원 등을 보시오. 법원행정처가 있어야 민원을 해결하지. 한마디만 하면 다 알아서 처리하고 대령해주는데. 세상 편리한 해결사가 없어져봐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재판부에 어떻게 직접 로비를 하나. 행정처가 없어지면 당장 청와대부터 아주 불편해질걸?” 판사 출신 변호사가 빈정댔다.

법원행정처 개혁은 사법부 개혁의 절반 이상이다.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작동했다. 인사와 예산을 지렛대로 법관들을 부렸다. 정치권의 재판 청탁을 들어주고 반대급부를 챙긴 것도 법원행정처가 있어 가능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은 ‘사법권 독립’이란 휘황한 장막 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의 실상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데 양승태 개인의 처벌을 넘어 제도의 변화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할 시점에 사법부 개혁은 사각에 방치된 이슈가 돼버렸다.

사법부 개혁은 김학의 수사만큼 흥미롭지도, 버닝썬 사건처럼 따끈하지도 않다. 하지만 호흡처럼 우리 삶에 깊숙이 직결돼 있다. 판사의 한마디가 구속과 불구속을 가르고, 한 집안을 거덜 내기도 한다. 모두가 분노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사법부 개혁 없이는 반복될 따름이다. 지금 같아서는, 겨우 10초 만에 심리 끝인 대법원 상고심에 목을 매고, ‘도장값’만 3천만원 한다는 전직 대법관의 위력에 눈물짓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전관예우 앞에 좌절하는 현실을 청산하기는 글렀다.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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