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잠시 시간을 거슬러 보자.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친 12월11일 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 등이 대거 몰려들었다. 문을 열라는 이들과 잠그고 버티는 집주인의 대치가 시작됐다.
“저녁 7시에, (오피스텔 거주자가) 포털 사이트 등에 접속해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제3차장실 심리정보국 소속 김아무개씨라고 한다. 국정원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지난 수개월간 여론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단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문 후보 쪽 진성준 대변인 브리핑)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조사 뒤 “불법선거운동을 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관할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 김씨’의 집과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하려다 ‘윗선’의 지시를 받고 그만뒀다. 김씨를 조사한 경찰은 대선 이틀 전인 12월17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김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 등을 분석한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증거가 남아 있어야 할 노트북과 컴퓨터는 깨끗이 ‘세탁’된 채 임의 제출됐다. 국정원 직원은 자진 출석해 미리 짜 맞춰진 진술만 반복했다. 당시 경찰이, 최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태워진 수사종결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 사건은 여기서 ‘혐의없음’으로 끝났다. 그 배후를 밝히려는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나 원세훈 처벌, 채동욱의 낙마 따위는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았다.
1987년 1월14일 이른 아침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서울대생 박종철이 끌려왔다. 선배의 행방을 캐묻는 추궁과 구타에도 입을 다물자 얼굴을 욕조에 강제로 밀어 넣는 물고문이 가해졌다. 어느 순간 욕조 턱에 목을 눌린 박종철이 의식을 잃었다. 근처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박종철은 숨을 거뒀고, 경찰은 당황했다. 고문한 사실을 숨겼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내가 아는 한 가혹 행위는 없었다.”(강민창 치안본부장)
당시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 사건도 여기서 끝났다.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경찰은 부검도 하지 않고 화장을 서두른다. 고문의 증거인 종철이의 몸은 그렇게 한 줌 재로 ‘인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더 이상의 의혹도, 폭로도 없었을 테고, 어쩌면 6월 항쟁도, 그 이후의 역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현실엔 ‘버닝썬’이 있다.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졌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업소와 유착 관계가 노출될까 두려워 경찰은 클럽 직원과 피해자 김상교씨의 ‘쌍방 단순폭행’으로 ‘혐의없음’ 처분했을 공산이 크다. 그랬다면 그 이후 드러난 성폭행, 성 접대, 횡령, 경찰관 뇌물수수, 마약은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면 지금까지의 가정은 ‘실화’가 될 수 있다.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면 경찰의 결정을 검증하고 감시할 존재가 사라진다. 그 폐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수사종결권은 ‘조정’이란 이름으로 빼앗아 넘겨줄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경찰은 시중의 온갖 정보를 수집해 최고 권력자에게 보고하는 3000여 정보경찰까지 거느린 채 전국 단일조직으로 움직인다. 이 정보경찰을 포함한 행정 경찰과 사법(수사) 경찰의 분리가, 국회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는 아예 빠져 있다. 그래서 퇴행을 넘어 위험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경찰은 바뀐 게 없는데, 일단 수사종결권을 준 다음에 개혁하겠다? 경찰국가, 경찰사법이 문제가 됐던 이승만 시대로 돌아가는 게 경찰 개혁일까?”(정승환 고려대 교수·형사법)
그럼에도 이 법안의 뼈대를 만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패스트트랙이 성사되던 날 “1954년형 주종적 검경 관계가 현대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 글에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과연 그런가.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