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국회가 형사소송법을 만들 때도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핵심 쟁점이었다. 형사소송법 초안 공청회 첫 안건 역시 검사와 경찰의 관계를 어떻게 정할지였다. “상호협력이냐 상명하복이냐”는, 지금도 익숙한 논쟁이 벌어졌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수사권까지 가지면 ‘검찰 파쇼’가 된다” “중앙집권적인 경찰에 수사를 맡기면 ‘경찰 파쇼’가 된다”는 우려가 두루 나왔다. 당시 한격만 검찰총장은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에게는 기소권만 주는 것이 법리상 타당하다”면서도 “앞으로 100년 후”라는 단서를 달았다.
100년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형사소송법 제정 65년 만인 2019년, 경찰이 ‘1차 수사권’ 및 사실상 기소권(불기소권) 행사로 볼 수 있는 ‘수사종결권’을 갖는 것을 뼈대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2011년 검찰의 극심한 반발 속에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국가형벌권의 전면적 수정이라는 점에서 그 차원이 다르다.
검찰과 경찰의 ‘권한 배분’을 중심에 둔 논의는 ‘밥그릇 싸움’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국민 기본권’을 중심에 두고 ‘검찰공화국’ ‘경찰공화국’을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과 쟁점을 짚어봤다.
수사 어떻게 바뀌길래
패스트트랙에 오른 수사권 법안이 국회에서 원안의 뼈대를 유지한 채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수사기관의 사건 처리 절차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대부분의 고소·고발 사건은 경찰이 직접 수사하고 종결하게 된다. 현재도 검찰청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 대부분(85% 이상)을 경찰에 보내 수사하도록 하고 있어 ‘달라졌다’고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이전에는 검찰이 경찰 수사 전반을 검토하고 관여할 수 있었지만, 이젠 경찰 수사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된다.
경찰이 불기소 결정을 할 경우 경찰 단계에서 사건 처리가 끝난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현재는 어떤 의견으로 송치할지도 검찰이 지휘했고, 검찰은 경찰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 법이 개정되면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마무리한 뒤 불송치 결정문과 사건기록을 검찰로 보내면 된다. 이후 검찰은 60일 동안 경찰의 불기소 결정이 위법·부당한지 판단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사건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할 경우 사건은 검찰로 자동 송치된다.
검찰의 경찰 수사 개입은 특수한 경우로 한정된다. 압수수색, 체포 등 영장 신청 단계에서 영장에 기재된 내용 안에서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법령 위반, 인권 침해, 현저한 수사권 남용이 있을 경우에도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은 이처럼 검찰의 보완수사나 시정조치 요구 등을 통해 충분히 경찰 수사를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경찰이 검사의 요구를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경찰 불기소→검사 기소’로 결론이 바뀌는 사건이 연간 3천여건에 이른다며 ‘검사 수사지휘 존치’를 주장한다.
검찰 반발 타당한가
수사권 법안은 현재 검찰이 가진 수사 권한 일부를 경찰에 넘기는 것을 뼈대로 한다. 법안 주요 내용이 현실화하면, 검사는 경찰에 수사지휘를 할 수 없고, 검사의 결정을 거쳐야 가능했던 수사종결(불기소)도 경찰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의 범위도 ‘부패, 경제·금융,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범죄’로 제한된다. 일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 등 경찰의 권한은 커지고 검찰의 영역은 그만큼 쪼그라든다.
검찰은 “수사권을 넘기면 현실적으로 경찰 수사 제어가 어렵다. 이는 곧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찰 수사가 부실해도 거를 방안이 사라질뿐더러 부패한 경찰이 사건을 묻으려 할 경우 이를 적발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여당은 형식상 경찰 손을 들어준 것은 맞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후퇴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수사에 필요한 영장(체포·구속·압수수색) 청구 권한이 여전히 검찰에 있고, 수사 단계에서 보완수사나 시정조치 요구 등을 통해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하더라도 검사가 60일 동안 기록을 검토해 재수사를 요구하거나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13일 “경찰 수사를 통제할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다. 검사가 간섭하려고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안 내용이 이도 저도 아닌 절충형이어서 오히려 검찰의 불만을 초래한 면도 있다. 검찰은 경찰에 기소권의 일부(불기소권)를 사실상 나눠준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한다. 반대로 경찰로서는 검찰이 기존 수사권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됐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경찰 수사 능력 등을 고려할 때 (현 단계에서는)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가 어렵다고 봤다. 일단 과도기적으로 검찰의 권한을 줄이고 경찰의 책임성을 높이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 통제 방안 충분한가
법안에는 검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 방안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에 제기된 검찰개혁의 주요 화두는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와 이를 통한 ‘검찰의 탈정치화’였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주요 수사를 직접 진행하며 살아있는 권력에는 약하고 죽은 권력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는 등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법안을 보면, 검찰의 주요 직접수사 범위는 거의 그대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대원칙도 적용되지 않았다. 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 경제, 금융,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범죄’로 한정했는데, 이는 현재 검찰의 특별수사 대상과 거의 일치한다. 검찰의 과도한 직접수사가 검찰 불신을 초래한 핵심 원인임을 고려하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주는 것과 검찰 직접수사에 대한 통제는 서로 다른 문제”라며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법안에는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사실 검찰 내부에서도 형사부 등을 중심으로 “직접수사 축소가 답”이란 목소리가 있다. 과도한 직접수사(특별수사)가 검찰 불신의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는 것이다.
경찰권 비대화 대책은 있는가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원 대신 3천여명에 이르는 정보경찰 조직을 거느린 경찰이 생산한 정보를 인사검증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검찰은 물론 법학계, 시민단체 등은 경찰이 ‘정보+1차 수사권+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될 경우 ‘검찰공화국’ 폐해 못지않은 ‘경찰공화국’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6월 이낙연 국무총리,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한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포함됐던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 등도 국회 패스트트랙 지정에서 빠졌다. 자치경찰제는 현재 논의되는 안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경찰권 분산 방안이다. 조국 수석은 “경찰개혁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고 하지만, ‘경찰개혁’은 우선순위가 밀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현재 정보경찰과 관련해서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보경찰이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 통로로 활용해온 ‘치안정보’라는 표현을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정보’로만 바꿨을 뿐이라는 박한 평가가 나온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경찰의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 역시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주는 데 공감하는 전문가들도 “경찰청 정보국 폐지 등 통제 장치 마련이 국회의 수사권 법안 심사 과정에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현준 최우리 장예지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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