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사회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명진 스님과 신학철 화백,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전교조는 오는 28일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정부가 얼토당토않은 법외노조라는 이름으로 전교조를 탄압했는데, 촛불 시위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3년 동안 그대로 놔두고 있어요. 이게 뭐요? (중략) 박근혜의 만행을 문재인(대통령)이 나서서 당장 취소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랑 ‘한통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법외노조라는 해괴망측한 탄압을 뒤집어엎기를 바랍니다.”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쬔 20일 오전 11시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백발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백 소장의 여는 말로 시작한 이 날 기자회견은 진보 성향의 재야원로모임 326명과 전국시민사회단체 1610개 단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를 촉구하기 위해 함께 만든 자리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회 각계각층 원로들은 국정 농단을 벌였던 박근혜 정부가 법외노조라는 이름을 통해 전교조를 탄압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가 왜 필요한지 발언을 이어나갔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교조가 진행한 민주시민교육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면서 전교조는 냉전 수구세력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력이 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왜 기득권 세력, 냉전수구 세력 눈치를 보면서 (법외노조 취소라는) 실천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사회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방에 봄이 왔는데 유독 교육계는 봄이 오지 않았다”며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누가 대통령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곽 이사장은 “전교조가 어용노조입니까? 유령노조입니까? 친목노조입니까?”라고 물으며 “전교조만큼 민주성과 자주성, 연대성에 모범을 보여주는 노동조합 있으면 나와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전교조가 국정 농단 진상 규명 투쟁이나 역사교과서 반대 시민투쟁 촛불 시위에 앞장선 사실을 지적하며 “전교조가 노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5·18이 폭도들의 만행’이라고 하는 만큼이나 새빨간 거짓말이고 진실 농단이며 거짓 허위 유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의 심각성은 이 거짓유포를 거짓 정권 박근혜 정권이 시작했지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지 만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거짓말이 법의 세계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행정부가 나서서 법외노조를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사회 원로들은 박근혜 정권이 적용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자체가 당시까지 단 한 번 적용된 적 없고 사문화된 것이었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부정하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노동기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법외노조 취소 통보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중배 전 문화방송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국제노동규약은 해직자나 퇴직자가 노조원이 될 수 없다는 교원노조법을 국제기준에 맞지 않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며 “이 어처구니없는 국정 농단의 사태를 총회 가기 전에 깨끗이 청소하고, 아이엘오(ILO) 총회에 나가서 떳떳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임해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0년, 2013년, 2017년에 법외노조 근거 조항인 시행령을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며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보수정권 때 국가인권위가 그렇게 권고했기 때문에 보수 세력 누구도 시비 걸 수 없고, 문재인 정부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100%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석운 공동대표도 “노동법 전문가로서 보면 전교조는 헌법 노조인데 실정법상 꼬투리를 잡고 박근혜 정부가 법외노조라고 통보한 것”이라며 “전교조 법외노조를 놔두고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라고 얘기하는 것, 노동존중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야 사회원로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끝내고 ‘재야 원로모임 촉구서한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들은 청와대에 보내는 서한에서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문제를 비롯한 노동문제를 바로 잡을 줄 알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폭거 만행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면서 “전교조 결성 30주년 기념 교사대회가 열리는 25일까지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또 기다려달라고 한다면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서한에서 “다음 달 4일이 되면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보낸 시간 중 문재인 정부였던 기간이 박근혜 정부였던 때보다 길어진다”면서 “(현 정부가)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미룰 경우 이전 정부보다 더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전교조의 헌신은 촛불항쟁의 불씨가 됐고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의 헌신 속에 출범했다”면서 “전교조가 ‘합법’ 상태에서 30주년 생일을 맞이하도록 청와대가 즉각 법외노조 취소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서한에는 사회원로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전 서울시 교육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홍세화 노동당 고문, 소설가 황석영 씨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단체로는 민주사회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6월민주포럼, 전국농민회총연맹, 용산참사유가족 등이 참여했다.
오는 28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전교조는 이날부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위한 사실상 ‘총력투쟁’에 돌입한다. 전교조는 이날부터 중앙집행위원 중심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하며 24일까지 시·도 교육감 등과 함께 기자회견도 이어갈 계획이다.
전교조는 30주년 기념 교사대회가 열리는 25일 전까지 정부의 ‘가시적 조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교조는 이날 오후 대의원대회를 열어 향후 투쟁 방향을 논의·결정할 방침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