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열린 제4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전국소년체육대회 경기장과 숙소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 폭력과 불필요한 신체접촉 등 아동학대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26일까지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경기장과 숙소의 인권상황을 현장 조사한 결과, 경기 중과 경기 후 코치와 감독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수에게 고함과 욕설, 폭언, 인격 모욕 행위 등 아동학대 수준의 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고 29일 밝혔다. 올해 전국소년체육대회는 대한체육회 주최로 전북 익산과 군산, 전주 등 전북지역에서 28일까지 열렸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초등학생과 중학생 1만7천여명이 참여했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선수들이 구타나 폭행을 당하는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중 감독과 코치가 선수들에게 “이 새끼, 똑바로 안 뛰어!” “너 시합하기 싫어? 기권해 인마” 등 지속해서 화를 내며 질책하는 행위가 일어났다. 또한, 작전 타임 등 쉬는 시간에도 “지금 장난하냐? 왜 시킨 대로 안 해?” 등 고성을 지르고 혼내는 행위가 목격됐다. 경기 종료 뒤 코치가 패배한 선수를 데리고 나오면서 “그걸 경기라고 했냐”며 선수의 뒷목 부위를 손바닥으로 치며 화를 내는 행위도 있었다. 인권위는 이러한 행위가 일반 관중과 학부모 등이 지켜보는 중에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화된 코치나 독려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고 봤다.
남성 심판이나 코치가 여학생들의 목과 어깨를 껴안고 이동하거나 일부 경기 위원이 중학생 선수의 허리를 잡는 행위 등 지도자가 여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하는 상황도 현장에서 목격됐다. 인권위 ‘스포츠 분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보면, “스포츠 과정에서의 신체접촉은 훈련과 교육, 격려 행위와 혼동될 수 있는 특징이 있고 이를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인권위 현장조사 중 방문한 3곳의 모텔에서 남성 코치가 여성 선수들을 남성 선수들과 함께 모텔로 인솔하면서 여성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도 확인됐다. 인권위 조사단이 방문한 한 모텔 방은 전형적인 러브호텔로 욕실 문이 없이 욕조가 그대로 노출된 구조였다. 인권위는 “사전 훈련을 포함해 최대 일주일까지 모텔에 투숙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여성 보호자가 없는 경우 성폭력 사건의 예방이나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며 “‘여성 선수 동반 시 여성 보호자 동반 필수’ 등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권위는 조사단이 방문한 15개 체육관 가운데 5개 시설만이 탈의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이 가운데 4곳도 사용이 불가능해 학생들이 경기장 화장실이나 복도, 관중석 등 노출된 장소에서 옷을 갈아입는 상황을 지적했다. 특히 대한체육회가 대회 전 “일부 종목 대회에서 ‘스포츠인권센터’ 신고 상담 업무를 안내하고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조사단이 방문한 15개의 경기장에서 성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 상담, 신고 체계를 갖추지 않은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인권위는 종목별 전국대회에서 일어나는 인권상황을 지속해서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아동이 참여하는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위한 ‘인권 보호 가이드라인’ 등 인권지침을 검토할 예정이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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