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15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해 7월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주변에는 반대단체에서 제작한 ‘이성애 예스(YES), 동성애 노(NO)’라고 적힌 부채가 쌓인 교회 탁자가 늘어섰다. 서울광장 건너편 대한문광장 앞엔 ‘동성애 합법화 저지’, ‘차별금지법 아웃(OUT)’, ‘대한민국 살리기’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우수수 내걸렸다. 광장 한편엔 대형 두더지게임기까지 등장했다. 반대단체 사람들은 두더지 인형이 나오는 구멍에 ‘동성애’, ‘성평등’, ‘여가부’(여성가족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여놓고 두더지가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망치로 마구 때리는 게임을 시민들에게 권했다. 반대단체들은 이런 현장을 ‘퀴어축제 반대 영상’ 등으로 엮어 유튜브 등에 올린 뒤 “침묵하는 다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퀴어축제에 모입시다. 많은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와 참여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 자리를 잡았지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축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단체들의 움직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탈동성애’(동성애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반대단체가 쓰는 용어)를 주장하는 단체 홀리라이프는 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1일 ‘홀리페스티벌문화축제’를 청계광장에서 열겠다며 500여명 규모로 사용신고를 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도 서울광장 바로 옆 대한문광장에 퀴어축제 기간 5만여명 규모의 집회신고를 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는 퀴어축제 조직위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됐다.
‘동성애동성혼 개헌반대 국민연합’ 등은 지난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직권을 남용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수리해줬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올해는 서울시 공무원 17명이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며 서울광장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반대세력은 유튜브에 찬송가와 기도, 설교로 이뤄진 ‘퀴어축제 반대 구국기도회’를 영상으로 찍어 올리거나, ‘퀴어축제에 대한 올바른 정보 길잡이’ 등의 이름으로 목사와 아나운서가 왜곡된 설명을 하는 시리즈 영상물도 제작한다.
지난해 7월14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축제 당일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역의 퀴어축제들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퀴어축제는 서울 외에 대구, 부산, 제주, 광주, 인천, 전주, 경남 등 전국 8개 도시에서 열린다. 지난해 9월 인천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처음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 곳곳에선 “사람 살려” 비명 소리가 들리고 축제 참가자들이 머리채를 잡히거나 폭행을 당했다. 축제 참가자는 300명이었지만 반대단체 사람들 1천여명이 광장을 점령하고 집단행동을 벌여 축제가 중단됐다. 지난해 6월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엔 ‘레알 러브’란 이름의 반대행동 버스가 등장했다. 서울,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반대단체 사람들을 태우고 축제 현장에 가 길게 늘어서서 퀴어퍼레이드를 막았다.
지난 2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청장에게 “사회적 약자나 소수집단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가 진행될 경우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이는 지난해 6월 대구 축제에서 반대단체가 참가자들의 평화 행진을 차단하자 축제 주최 쪽이 인권위에 진정을 낸 것에 대한 인권위의 답변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몇년 전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았던 서울의 퀴어축제 반대세력들은 점차 평화적인 방식으로 집회 방법을 바꾸고 있다. 폭력 행사가 시민들에게 지지받지 못하니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는 데 손해가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시민들이 혐오세력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