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ㄱ씨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8년 국가보훈처에 취업지원 신청을 했지만 ㄱ씨의 아버지가 ‘장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취업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보훈처는 ‘장손은’ 사회 관습적으로 ‘장남의 장남(1남의 1남)’인데, ㄱ씨 아버지의 어머니는 독립운동가의 ‘딸’이기 때문에 ㄱ씨 아버지가 ‘장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ㄱ씨는 “독립운동가 자녀 4남매 가운데 아들 2명은 6·25전쟁 때 북한으로 갔고, 막내딸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따라서 맏딸의 아들인 아버지를 장손으로 인정하는 게 맞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손자녀의 자녀에게 취업지원을 할 때 장손을 ‘장남의 장남’으로 한정해 취업지원을 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성평등에 맞게 독립유공자 손자녀의 자녀가 취업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구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2일 밝혔다. 독립유공자 취업지원제도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장손이 질병 등을 이유로 직접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 그의 자녀 중 1명을 지정해 장손을 대신해 취업지원 혜택을 받는 제도다.
보훈처는 사회관습에 근거에 장손은 ‘장남의 장남’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보훈처는 “장손이란 호주승계인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장남의 장남’을 의미한다”며 “행정 선례에 반한 판단을 하는 경우 행정 관행의 존속을 믿는 국가유공자 유족의 신뢰를 깨뜨려 행정상 신뢰보호의 원칙과 법적 안정성, 평등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3월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취업지원 대상자 자료를 보면, 지정권자(장손) 229명 가운데 남성은 222명(97%), 여성은 6명(3%)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보훈처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호주제는 전래적 여성상에 뿌리 박은 차별로서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며 “호주가 폐지되고 가족의 기능이나 가족원의 역할분담에 대한 의식이 현저히 달라졌음에도 ‘장손’의 개념을 기존의 호주제에 근거한 ‘호주승계인’ 남성으로 한정하는 것은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이다”고 설명했다.
또 보훈처가 주장하는 신뢰보호의 원칙과 관련해선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과 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며 “기존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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