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10일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8집’ 발표
‘직접고용 상하관계’로 인한 성희롱 65.6%, 피해자 72.4% ‘평직원’
게티이미지뱅크
사례1) ㄱ씨 : 웬일로 뒤에 있는 식충이 걸레X은 안 처먹는대? ㄴ씨 : 얼라 배서 입덧하나 보죠
사례2) ㄱ씨 : 부산 갈 때 000 데리고 가서 000차장 접대 좀 해야겠는데 노리갯감으로 ㄴ씨 : 맘에 들어 할까요 늙은 징어 ㄱ씨 : 아쉬운 대로
직장인 ㄷ씨는 2016년 회사의 남성 상사 ㄱ씨의 요청을 받고 ㄱ씨의 컴퓨터로 업무를 수행하던 중 ㄱ씨와 또 다른 남성 직원 ㄴ씨가 나눈 위와 같은 메신저 대화를 발견했다. 이들은 업무 중 회사 내 컴퓨터에 설치된 메신저에서 비속어를 동원해 ㄷ씨나 ㄹ씨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ㄷ씨는 ㄹ씨와 대화 내용을 공유했다. ㄷ씨는 회사 대표에게 ㄱ씨와 ㄴ씨를 성희롱으로 신고했지만, 회사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ㄷ씨와 ㄹ씨는 출근을 거부하며 강하게 항의했고 뒤늦게 회사 인사위원회가 열려 ㄱ씨와 ㄴ씨는 90일 무급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후 ㄷ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ㄱ씨와 ㄴ씨의 메신저에서 이뤄진 성적 비하 대화를 성희롱으로 판단하고 ㄱ씨와 ㄴ씨에게 인권위에서 주관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하라는 시정권고를 했다고 10일 밝혔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 동안 접수한 501건의 성희롱 진정 사건 가운데 인권위가 시정 권고한 사례 37건을 담은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8집’을 발표하면서다. 인권위가 대면 상황에서 이뤄진 성적 행위나 언동과 달리 메신저상 대화를 성희롱으로 판단한 건 처음이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는 상용메신저를 통한 개인 간의 대화는 사적 영역에 해당하지만 성희롱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회사 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라는 점, 업무용 컴퓨터에 설치한 메신저를 사용해 주로 업무시간에 사무실에서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적으로 비하하는 대화를 나눈 점 등을 고려할 때 대화 내용이 온전히 사생활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2007년부터 성희롱 시정권고 사건에 대한 사례집을 발간하고 있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2017년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은 296건으로 2016년 205건보다 44.4% 늘었다.
사례집에선 기혼여성이 기혼남성인 직장 상사와 함께 출장을 다녀온 것을 두고 “신혼부부 같다”고 표현하는 등 소문을 유포한 행위가 피해자의 ‘고용상 불이익’에 해당한다는 판단도 처음 공개됐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의 진정서에서 “부적절한 관계 등 성적 행실을 내포하는 표현이나 소문이 여성에게 더 불리하고 치명적이라는 현실을 악용해 피해자에게 적대적·모욕적 근무환경을 조성하려는 행위를 한 것은 피해자의 업무환경을 악화시켜 고용상의 불이익을 야기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0일 발표한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8집’ 중 성희롱 진정사건 통계(2001∼2017.12) 갈무리.
사례집을 보면, 인권위가 권고한 성희롱은 대부분 ‘직장 내 권력관계’에서 일어났다. 인권위가 설립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인권위가 권고한 성희롱 권고사건 209건 가운데 ‘직접고용 상하관계’로 인한 성희롱은 65.6%로 조사됐다. 성희롱 당사자의 직위도 대표자, 고위관리자, 중간관리자 등이 63.6%를 차지했다. 피해자는 평직원이 74.2%로 가장 많았다.
공공기관도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희롱의 63.2%가 기업과 단체 등 사적 영역에서 발생했지만,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도 36.8%로 적지 않았다. 성희롱 발생 장소 가운데 직장이 44.6%로 가장 많았고, 회식장소가 22.3%로 뒤를 이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