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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석암투쟁 ‘마로니에 8인’, 장애인 활동가 황정용씨 별세

등록 2019-07-14 17:02수정 2019-07-25 13:33

탈시설 자립 활동가, 13일 새벽 자택서 숨져
2007년 장애수당 횡령 등 석암재단 비리 폭로
시설 나와 ‘장애인 자립 정책’ 요구 62일 농성
“투쟁 현장서 묵묵히 자리 지켰던 사람”
장애인 활동가 등 조문 발길 끊이지 않아
2009년 6월 경기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와 중증장애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하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 동안 노숙 농성을 벌였던 황정용씨가 13일 새벽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황씨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9년 6월 경기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와 중증장애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하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 동안 노숙 농성을 벌였던 황정용씨가 13일 새벽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황씨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장애인 시설에서 나오고 싶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이 많다. 나가고 나와야 뭔가 일이 이뤄지는데, 도망간다. 나오고 싶은 사람은 기회는 많다. 대화를 나눠서 (자립)했으면 좋겠다.” (2019년 6월4일, ‘석암투쟁 10주년 기념행사’ 중)

장애인 활동가 황정용(59)씨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지체장애 1급의 탈시설 장애인 활동가 황씨는 13일 새벽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죽기 전까지 ‘장애인 탈시설·자립’을 위해 싸웠다.

황씨는 2007년 경기도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했다. 이후 시설에서 벌어진 장애인 인권침해, 장애수당 횡령 등을 알게 됐다. 황씨는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석암비대위)를 꾸리고 시설 비리를 폭로한 뒤 석암재단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2009년 6월 황씨는 중증장애인 8명은 시설에서 나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 농성을 벌이며 서울시에 ‘탈시설 자립 생활 정책’을 요구했다. 이른바 ‘마로니에 8인’이다. 투쟁 이후 서울시는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만들었고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통합을 꿈꾸는 ‘향유의집’으로 바뀌었다. 마로니에 8인 중 세상을 떠난 건 황 씨가 처음이다.

2009년부터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황씨의 빈소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조문객들의 대부분은 황씨와 같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었다. 더운 날씨와 불편한 조건은 이들의 조문을 막지 못했다. 황씨의 빈소 입구에는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이 설치됐고, 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황 씨의 입관도 함께했다. 황씨의 빈소를 찾은 동료들은 고인을 “과묵하지만, 우직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입관식에서 유독 황씨의 곁을 떠나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마로니에 8인 가운데 한 명인 김진수(70)씨다. 그는 황씨가 요양원에 입소했던 2007년부터 단짝처럼 황씨와 함께했다. 김씨는 빈소에서 황씨와 함께 2009년 마로니에공원에서 같이 노숙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2009년 시설에서 처음 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투쟁한 첫날 황씨가 ‘내가 자고 싶은 데서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진작에 밖으로 나올 걸 그랬어’라며 환하게 웃었지요.”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장례식장 황정용(59)씨 빈소를 찾은 황 씨의 동료들. 왼쪽부터 임영채(51), 홍성호(65), 김진수(70), 김영수(64)씨. 사진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장례식장 황정용(59)씨 빈소를 찾은 황 씨의 동료들. 왼쪽부터 임영채(51), 홍성호(65), 김진수(70), 김영수(64)씨. 사진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김씨는 “평소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불의를 못 참고 투쟁 현장에서 항상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친구”라며 “더운 여름 탈진해 시멘트 바닥에 눕고, 추운 겨울 손가락과 발가락이 동상에 걸려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쫓아다니며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을 요구하는 데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살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보금자리를 꾸려 혼자 살기 시작 한지 이제 겨우 1년 정도 됐는데, 오래 살아야 하는데 마로니에 8인 중에 먼저 갈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황씨의 빈소 주변에서는 휠체어를 탄 활동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김영수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황씨는 투쟁 현장에서 나서서 발언하기보다는 한결 같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었다”며 “몸이 좋지 않아 한여름에도 겉옷을 입고 동상 걸린 손이 벗겨진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황씨와 함께 5년간 장애인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임영채(51)씨도 “항상 현장에서 ‘동생 왔냐’며 반겨주고, 사람들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대해줬던 분”이라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일 제쳐놓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역할을 해온 황씨를 아빠처럼 따랐던 동생들은 황씨의 죽음 앞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씨의 여동생 황남산(54)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오빠는 불편한 몸으로 아빠가 운영했던 시계점에서 도장을 파고 시계를 고치며 아래 다섯명의 동생들의 가르치고 학교에 보냈다”며 “오빠는 아빠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어 “불편한 몸으로 싸울 때면 가족 입장에서는 걱정돼 말렸지만, 지난 5월 마지막으로 오빠를 봤을 때도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힘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씨의 남동생 황주용(53)씨는 황씨와 마찬가지로 장애를 겪고 있는 막내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열악한 장애인들의 환경에 대해 토로했다. 황주용씨는 “막내동생은 현재 몸이 불편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장애인이 아닌 딸과 함께 11평 아파트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며 “집이 너무 좁아 휠체어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임대 아파트 신청은 너무 오래 걸리고,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수급비도 네 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황 씨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장례식장 1층 7호실에 마련됐으며, 14일 오후 6시 장례식장에서는 황 씨의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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