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 남편과 함께 딸을 살해하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30대 친모가 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전남 무안에서 의붓아버지와 친어머니가 딸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정부의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있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직권조사 결과 “4월27일 전남 무안에서 피해자인 12살 딸 ㄱ양이 의붓아버지의 성범죄를 신고한 이후 18일 만에 의붓아버지와 친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하기까지 ㄱ양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국가로부터 사회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보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찰청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법무부 장관에게 관행과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18일 밝혔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ㄱ양이 성범죄 피해를 신고하고 사망하기까지 전남 목포경찰서와 광주지방경찰청에서는 ㄱ양이 의붓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점 외에는 ㄱ양의 안전이나 심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경찰청은 피해자심리전문요원(CARE)을 각 지방경찰청에 배치해 강력범죄 발생 초기에 피해자에 대한 전문 상담을 하고, 학대예방경찰관(APO)을 별도로 둬 학대 사건이 발생한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피해 아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ㄱ양 사건에서는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또한 ㄱ양과 ㄱ양의 친아버지가 신고했던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절차위반과 업무소홀, 이송지연과 수사미진 등의 각종 문제점도 확인됐다. 목포경찰서는 지난 4월9일 ㄱ양의 친아버지가 ‘ㄱ양이 의붓아버지로부터 성기 사진과 야한 동영상을 휴대전화로 전송받는 등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을 112에 신고한 사건에 대한 1차 조사에서 신뢰 관계인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같은달 14일 ㄱ양이 ‘의붓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했다’고 신고한 성폭행 미수 사건 2차 조사에서 ㄱ양이 신변보호를 신청했지만, 담당 경찰이 신청 사실을 모르고 후속 조처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15일 ㄱ양이 ‘아버지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며 신변보호 요청을 취소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담당 경찰관은 보호자인 친아버지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신변보호 요청 취소를 이행했다. 아울러 ㄱ양의 신고 사건을 학대예방경찰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후 과정도 엉망이었다. 목포경찰서는 4월15일 전남지방경찰청에 사건을 이송했지만, 전남지방경찰청은 관할을 이유로 사건을 반려했다. 목포경찰서는 같은달 16일 이번에는 광주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송했는데, 사건 서류는 사흘 뒤인 19일에야 광주지방경찰청에 도착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같은달 23일 사건을 접수했고, 같은달 29일 ㄱ양의 사망 보도가 나온 뒤에야 사건을 입건했다. 과거 ㄱ양이 의붓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인권위는 “경찰의 이러한 행위들이 피해 아동의 안전과 보호에 공백으로 작용했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경찰관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며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와 인간의 존엄·가치·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목포경찰서장과 광주지방경찰청장에게 관련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고·주의 조처를 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사건 재발방지와 피해자 보호기능이 실효성 있게 작동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각각 권고했다.
인권위는 아동학대를 관리하고 방지하는 정부 부처에도 필요한 조처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동이 학대로 인해 경찰 수사를 받을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피해의 심각도를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개선할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권고했다. 또 ㄱ양의 의붓아버지 사례처럼 아동학대 가해자가 보호자는 아니지만 보호자에 의한 학대와 유사한 양상으로 학대 가능성이 큰 경우 임시조치 등이 가능하도록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할 것을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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