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요양원 등 장기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기관 직원들의 동의 없이 사물함과 서랍 등을 뒤진 행위를 해 인권침해를 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2일 “‘장기요양기관 현지조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2개의 진정 사건에 대해 건보공단 이사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조사 관행 개선과 관련 지침을 명확하게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지난해 3월26일 건보공단 경기지역본부 안산지사 직원과 안산시청 직원 등 7명은 안산에 있는 제보를 받고 ㄱ요양원을 현지조사했다. 이들은 ‘현장조사서’, ‘장기요양기관 현지조사 안내문’ 등 조사와 관련된 서류에 서명을 받고, 3월29일까지 200개가 넘는 자료를 가져갔다. 서류를 가져가는 과정에서 ㄱ요양원 사무국장의 서명은 확인됐지만, ㄱ요양원 책상과 사물함의 점유자에게 직접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당시 ㄱ요양원 직원들의 책상 서랍과 사물함에는 잠금장치가 없었고, 수첩과 화장품 등 개인 소지품들이 보관돼 있었다. 또한 압수된 부위원장의 수첩에는 공인인증서번호 등 개인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인권위 조사관은 “특정한 증거를 긴급하게 확보할 필요성이 없음에도 조사관이 현장에 부재한 직원들의 책상 서랍과 사물함을 동의 없이 열어 관련 서류를 찾는 행위는 행정조사기본법 상 허용되지 않는 조사방식”이라고 판단했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진정은 올해 방문요양기관에서도 접수됐다.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는 지난 2월27일 서울 강동구청에 “강동구 소재의 ㄴ방문요양기관을 현지조사 대상기관으로 의뢰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ㄴ방문요양기관에서 시설장을 하면서 동시에 요양보호사 업무를 했다고 신고해 한 사람이 2명치 급여를 받은 사실이 확인돼 현지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 강동지사 소속 조사관과 강동구청 담당자 등 6명은 3월4일 ㄴ기관 부원장에게 조사하겠다고 전화하고 약 30분 뒤 ㄴ기관에 도착해 현지조사를 했다. 건보공단 조사관들은 시설 근무자 전체의 병원출입기록과 출입국 기록도 조사에 활용했다. 인권위 조사관은 “증거인멸과 관련한 구체적 정보 입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행정조사기본법에 명시된 ‘일주일 전 사전통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조사 사유를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은 데다 혐의가 없는 직원들의 병원 출입기록까지 동의 없이 조사에 활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조사관들은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등의 부정수급과 위법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 같은 조사방법은 평소 수행하는 조사 방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건보공단 조사관들이 조사 대상자의 방어권과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들을 침해했다”며 “개인의 일탈보다는 관행적인 조사방법의 문제라는 점에서 건보공단과 보건복지부 차원의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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