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떠나는 ‘특수통’ 검사가 자신의 수사 경험과 기법을 총정리해 <수사감각>이라는 두툼한 책을 썼다. 지난달 말 검사들을 재교육하는 법무연수원 교재로 냈는데 검사와 수사관들의 반응이 좋아 일선 배포용을 추가로 찍었다고 한다.
이 ‘수사교범’을 쓴 사람은 조은석(54·사법연수원 19기) 법무연수원장이다. 이번 주 퇴임할 예정인 그는 검사로 재직한 27년 동안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특수부, 대검 중수부 등을 거치며 수많은 사건을 수사했다. 대통령의 아들과 최측근,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재벌 회장, 전직 국회의장, 집권당 실세, 전·현직 국회의원, 금융감독위원장 등 그가 기소한 대상은 수십 명에 이른다. 대부분 유죄가 확정됐다.
대검 형사부장 때인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 해경 수사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인사 보복’으로 공직 생활의 중대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결국 유죄를 받아내 ‘국가 책임’을 분명히 했다.
책은 특별(인지)수사의 착수에서 판결 확정까지 검사가 해야 할 일을 다룬다. 어떻게 하면 빈틈없이 조사하고, 필요한 진술을 이끌어 내며,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지 상세한 비결을 들려준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병서의 가르침과 실제 사건 수사 경험을 교직해 빠르고 흥미롭게 읽힌다. 가령 ‘수사는 심리다’ 편에선 “최선의 전쟁은 적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이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수사에 어떻게 응용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검사의 공격법은 뒤집으면 피의자의 방어법이 될 수도 있다.
‘정치 검찰’의 흑역사도 언뜻언뜻 보인다. 역대 청와대와 법무부가 집권 세력에게 불리한 수사를 막기 위해 어떻게 움직였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갖은 구실로 수사 일정을 지연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내부 수사보고서를 수사 대상 정치인에게 유출한 범죄 행위까지도 저질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는 ‘거악’ 척결만을 역설하지는 않는다. 사소해 보이는 부검을 통해 살인 사건을 밝혀낸 경험을 들려주며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조 원장은 서문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내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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