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개인정보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개정안)’에 담긴 가명정보의 활용 범위와 요건을 명확히 하고, 안전 조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2일 ‘제14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개정안 내용 중 가명정보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와 관련된 사항이 국민의 정보인권 보호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검토한 결과, 이런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가명정보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한 것으로, 추가 정보나 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정보를 뜻한다. 예를 들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소득 등의 정보를 활용할 경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뺀 ‘전화번호 뒷자리’와 ‘소득 월 400만∼500만원대’ 등이 가명정보에 해당한다. ‘소득 20억’ 등으로 특정인 범위가 드러날 만한 정보도 제외한다.
지난해 11월15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을 보면, 개인정보의 개념을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로 나누고, 가명정보를 통계작성·연구·공익적 기록보존의 목적으로 정보주체 동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이용이 필요해 안전한 데이터 이용을 위한 사회적 규범 정립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현행법은 개인정보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게 개정안의 제안 이유다.
하지만 인권위는 개정안에 담긴 가명정보 처리 목적 중 하나인 ‘과학적 연구’의 범위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과학적 연구’의 범위가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가명정보가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목적으로 오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또 가명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보주체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한다’는 요건을 추가해 가명정보 활용에 대한 안전 조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 제도로 전 국민의 식별이 매우 용이한 점 △성명·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이미 대량으로 유출, 음성적으로 거래·활용되고 있는 점 △가명정보 재식별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다른 선진국보다 정보주체의 보호와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그런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가명정보 활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감청 등 통신제한조치 기간을 현행 최대 3년까지 허용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총연장 기간·횟수를 엄격하게 강화하는 등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 전달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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