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윤석열에 힘 실어주되 ‘집권층 건들지마’ 경고 뜻 담겨

등록 2019-08-02 17:07수정 2019-08-02 22:46

강희철의 법조외전(68) 검찰인사 심층분석
총장 직계 ‘윤석열 사단’ 특수·공안 요직에 전면 배치
적폐수사 계속·내년 총선 사건 철저관리 의지 드러내
‘총장동기’ 검찰국장·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혀 견제 포석
‘환경부 사건’ 등 문 정부 수사 검사들은 한직·좌천시켜
“‘피아 구분’ 메시지…특수강화는 개혁 역행” 비판 나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 고위·중간 간부 인사가 지난달 31일로 모두 마무리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뒤 첫 인사다. 지난달 26일 먼저 발표된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방향성을 보여줬다면, 중간 간부 인사를 거치면서는 한층 분명한 구도를 드러냈다.

‘외형상으론 윤 총장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주었지만, 큰 틀에서는 통제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검찰 인사를 잘 아는 법조인들의 중평이다. 무엇보다 대검-서울중앙지검에 ‘윤석열 사단’을 전면 배치해 ‘윤석열식 특별수사’를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 또는 폐지하기로 한 개혁 방향에 역행하는 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으론 문재인 정부 고위 관료, 집권세력 쪽 인사를 겨눴던 검사들을 거의 예외 없이 한직으로 보냈다. “‘출세하려거든 피아 구분 잘 하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에선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때문에 좌천당했던 윤 총장의 과거가 생각난다”는 반응도 있다.

그에 따른 ‘후유증’도 예상을 넘어 섰다. 중간 간부 인사가 발표되고 사흘만인 2일까지 40명 넘는 검사가 옷을 벗었다. 일찍이 유례가 없는 ‘줄사표’다. 일부 예정됐던 사람도 있지만, ‘반발성 사직’도 적지 않다.

이번 인사는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이라면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이번엔 박상기 장관의 경질이 예고된 상황이라 청와대의 의중이 많이 관철됐다고 봐야 한다. 곳곳에 그런 흔적이 보인다.” (검찰국장을 지낸 변호사)

‘우리 윤 총장’을 위한 친정체제 구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여러 차례 ‘우리 윤 총장’이라 불렀다. 국어사전에선 인칭대명사 ‘우리’를 “말하는 이가 자기와 관련된 대상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 신임은 인사에서 윤 총장의 ‘친정체제’ 구축으로 구체화했다. 검찰국장을 지낸 변호사는 “수많은 인사를 봐왔지만, 역대 어느 총장도 이렇게 자기 사람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 적이 없다. 오너가 있는 사기업 인사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윤 총장은 대검찰청에서 자신을 보좌하며 일선 검찰청의 수사를 지휘할 검사장(부장)들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대거 포진시켰다. 특히 핵심으로 꼽히는 반부패·강력부장(옛 대검 중수부장)과 내년 4월 총선 수사를 총괄할 공안부장에 각각 한동훈(사법연수원 27기)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박찬호(26기) 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앉혔다.

특수통인 두 사람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아래서 지난 2년 동안 ‘적폐 수사’를 함께했다. 박 검사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 국군기무사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 수사 등을 지휘했고, 한 검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사법농단 의혹 수사 등을 총괄했다. 새로 대검 과학수사부장에 임명된 이두봉(25기) 검사장까지 합치면, 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휘하 1·2·3차장을 그대로 거느리고 총장에 부임한 모양새가 됐다.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윤석열 사단’의 약진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부 등 인지 수사를 총괄할 3차장에 송경호(29기) 특수2부장을, 공안 쪽을 지휘할 2차장에 신봉수 특수1부장을 각각 승진시켰다. 일반 형사 사건을 책임질 신자용 1차장 역시 윤 사단의 일원이다. 2016년 말 국정농단 특검 때부터 윤 총장, 한동훈 검사장 등과 호흡을 맞췄고, 윤석열 지검장 1기(2017년 7월~2018년 7월) 때 특수1부장을 지냈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양석조(29기) 특수3부장은 대검 선임연구관(옛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김창진(31기) 특수4부장은 전국 검찰청의 인지 수사 상황을 파악해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법무부의 방침을 일선 검찰에 전달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옛 검찰2과장)으로 옮겼다. 이들과 함께 2016년 말 국정농단 특검에 파견됐던 이복현(32기) 검사도 특수4부장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복귀’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윤 총장(당시 팀장) 휘하에 있던 진재선(30기)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검찰 인사·예산 실무를 다루는 법무부 검찰과장(옛 검찰1과장)으로 한 계단 승진했다. 김성훈(30기) 중앙지검 공안2부장은 대검 공안 1과장으로 이동해 박찬호 공안부장을 보좌한다.

다시 정리하면, ‘법무부 형사기획과장-대검 반부패부(부장·선임연구관)-서울중앙지검 3차장-특수부’로 이어지는 특수 라인, ‘대검 공안부장-서울중앙지검 2차장-공안부’로 연결되는 공안 라인 양쪽에 윤석열 사단을 깔아놓은 셈이다. 이로써 윤 총장은 이어질 ‘적폐 수사’와 내년 4월 총선 전후 벌어질 ‘선거사범 수사’에 대한 장악력을 극대화했다. 내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서 검찰 수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무섭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얼마나 신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진용이면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다”고 했다.

검찰 개혁 거스르는 ‘역주행’ 인사

기존 특수는 물론 공안까지 특수로 채운 이번 인사를 두고는 검찰 개혁에 역행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검찰의 힘은 직접·인지 수사의 핵심인 특별수사에서 나온다. 사건의 인지와 수사는 물론 기소까지 ‘3역’을 검찰이 독점하면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됐다. 그 폐단의 정점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가 있다. 그러고도 검찰의 특별수사는 계속돼 왔다. 윤 총장도 검찰 직접 수사의 대폭 축소 또는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다.

?금태섭 위원: 검찰 개혁 방안과 관련해서 좀 묻겠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에 너무나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 개혁을 해야 된다는 것이 지금 시대적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검찰이 어떻게든 개혁되어야 된다는 데 국민적 인식이 같이 있다는 것을 후보자도 알고 계시지요?

?검찰총장후보자 윤석열: 그렇습니다.

(…)

?금: 언론보도에 따르면 후보자께서는 평소 사석에서 검사 업무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공소유지라는 본연의 업무고, 둘째가 경찰 수사지휘, 셋째가 경찰이 보낸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우선순위 네 번째라고 강조해 왔다고 보도가 됐는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윤: 그렇습니다.

?금: 그러면 궁극적으로 장기적으로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를 한 채, (…) 직접수사 기능은 사실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취지십니까?

?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검찰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 전성시대’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렇지 않아도 “날개 다는 검찰권력”(참여연대 ‘문재인 정부 검찰 2년 보고서’)에 초음속 엔진을 달아준 셈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소속으로 검찰 개혁 방안 연구에 참여했던 법조계 인사는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방향은 특수부 위주의 검찰 운영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별수사 총량을 줄이겠다는 둥 이상한 얘기가 자꾸 나오더니, 이번 인사에서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고 지적했다.

‘총장 동기’들은 견제와 경쟁 카드로

윤 총장에게 힘을 듬뿍 실어주면서도 다소 불안했던 것일까. 이번 인사에서는 윤 총장을 견제할 수 있는 몇 개 카드를 끼워 넣었다. 검찰총장 기수가 연수원 18기(문무일 총장)에서 23기로 ‘다섯 계단’을 내려가면서 총장 동기를 모두 사퇴시키기 어렵게 된 사정도 작용했다. 윤 총장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선배·동기들과의 ‘동거’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우선 청와대와 직결돼 있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이성윤 전 대검 반부패부장을 임명했다.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청와대의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국장은 법무부 장관을 보좌해 대국회 업무와 검찰 인사·예산 등을 관장한다. 또 전국 검찰청의 각종 수사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도 검찰국장의 주요 역할이다. 장관과 총장 또는 정권과 검찰 사이에 있는, 검사인 듯 검사가 아닌-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핵심 요직이다.

기존엔 ‘선배 총장-후배 국장’ 체제가 관례였다. 직전 문무일 총장 때도 윤대진 검찰국장이 일곱 기수 아래였다. 이번처럼 시험 동기가 나란히 검찰총장, 검찰국장을 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이 국장은 단순한 총장 동기 이상의 비중이 있다. 그는 참여정부 때인 2004년 3월29일부터 이듬해 4월1일까지 1년간 청와대 사정비서관실로 파견 가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째 민정수석 임기와 시기가 일부 겹친다. 경희대 법대 출신 최초의 검사장인 그는 문 대통령의 직계 후배이기도 하다. “검찰국장이 동기면 총장 입장이 편할 리 없다. 만약 정권과 불편한 관계라도 되면 강력한 ‘대체 카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전국 검찰청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크고, 중요한 사건을 가장 많이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지검장에도 윤 총장 동기인 배성범 검사장이 임명됐다. 윤 총장과 배 검사장은 대학 1년 선·후배이고, 검찰에서도 친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동기가 있으면 총장 입장에선 아무래도 불편하다. 매주 주례보고를 받아야 하는 데다, 수시로 협의할 일이 많아서다. 이견이 생겨도 총장이 선배면 지시로 끝낼 수 있지만, 동기 사이면 어색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잠시 연수원 7기 동기가 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던 참여정부에서도 결국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갈았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직거래’를 할 가능성이 늘 있다. 총장은 검찰에서 마지막 자리이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은 총장을 바라보는 자리다. 윤 총장도 서울중앙지검장에서 총장으로 ‘직행’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로 총장의 권한이 약화한 반면 그 기능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장은 이전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과거 어느 총장은 주요 피의자의 소환 사실을 뉴스를 보고서야 알게 된 경우까지 있었다.

“수도 검사장(서울중앙지검장) 자리는 원래부터 총장이 터치할 수 없는 영역이다. 100%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된다. 그런데 이번엔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느라 서로 의사를 확인하다가 배성범 검사장 선에서 합의를 봤을 수 있다. 그러나 인사는 인사 날 때, 그때뿐이다. 자기 자리에 가서 앉으면 입장과 생각이 생기게 마련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이 두 사람은 아직 고검장이 아니다. 윤 총장 동기 중에선 유일하게 강남일 대검차장만이 이번에 고검장을 달았다. 윤 총장의 약점으로 꼽히는 기획, 살림살이 등을 챙기는 역할이라고 한다. 나머지 동기들은 서울남부·북부·서부, 부산, 인천 등 일선 검사장으로 배치됐다. 심지어 대구·대전·광주 고검장 자리가 비었는데도 승진시키지 않았다. 일부러 비워 놨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어차피 윤 총장 2년 임기 중에 내년 여름 인사가 한 번 더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얼마나 잘하나 정권 차원에서 지켜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냐”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 함부로 겨누지 마라”

검찰 중간 간부 인사가 31일 공개되자 검찰 내부에선 “정권에 부담스러운 수사를 한 검사들이 대부분 좌천당했다”는 평이 나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진우(31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이다.

그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고발로 시작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공직자로는 최초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을 직권남용(인사권 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김 장관에 대해서는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환경부 장관과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너무도 정상적인 업무 절차”(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홍용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라던 여권의 해명이 무색해졌다.

앞서 주 부장은 ‘드루킹 특검’이 수사해 이첩한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송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이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를 나왔고, 지난 6월에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4519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총선 출마는 물론 정치활동 자체가 오랜 기간 금지돼 송 전 비서관에겐 치명적이다.

주 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안동지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부장검사가 지청장을 맡는 이른바 ‘부치지청’으로 평검사가 5명뿐인 자그마한 곳이다. 전임자들이 대부분 서울중앙지검 부장 또는 법무부나 대검으로 자리를 옮긴 전례에 비춰 보면 좌천이 명백해 보였다. “못 견디고 사표 내는 거 아니냐?”라는 일부의 우려는 하루가 지나기 전 현실이 됐다. 주 부장은 1일 사직 인사를 이프로스(검사 전용망)에 올리고 검찰을 떠났다. 그가 사직함으로써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사건의 공소유지에 이상이 생겼다.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입니다. (…)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였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하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 부장만이 아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에 그야말로 ‘재앙’이 됐다. 권순철(25기) 차장검사는 한직인 서울고검으로 발령 난 당일 “인사는 메시지”라는 뼈 있는 말을 남기고 사직했다. 그의 연수원 동기인 ‘소윤’ 윤대진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다음으로 꼽히는 수원지검장에 임명된 것과 대비된다. 그에 앞서 한찬식(21기) 서울동부지검장도 검찰에 자신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옷을 벗었다. 환경부 사건 당시 지검장-차장-부장이 모두 불명예 퇴진을 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애초 이 사건은, (문 전 총장과 대검이) 서울중앙에 내리면 언론보도가 계속 나올 것을 우려해 관심이 적은 서울동부로 보낸 것인데 나중 인사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을 것”이라며 “‘배당이 결재보다 중요하다’는 검찰 속담이 맞았다”고 했다.

동부 말고 남부와 수원도 무사하지 못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손혜원 의원 사건이 화근이 됐다. 고검장 승진이 기대되던 권익환(22기) 서울남부지검장은 진작 검찰을 떠났다. 그의 동기인 차경환 수원지검장도 비슷한 시기에 자진 퇴임했다. “조국 수석 등 청와대를 공격한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을 일찌감치 구속하지 않아 미운털이 박혔을 것이다.”(검찰 관계자)

두 사람은 지난해 검찰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도 고검장으로 승진한 ‘동기’ 양부남 검사장과 비교된다. 호남 출신인 양 고검장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재수사를 맡아 당시 문 전 총장을 보좌하던 김우현(22기) 대검 반부패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하려다 전문자문단 심의에서 7대0으로 부결당했다. 지난해 5월의 일이다. 당시 큰 충격을 받은 문 전 총장은 곧바로 사퇴하려다 주변의 만류로 뜻을 접은 바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자신의 ‘타깃’이던 김 검사장과 나란히 승진 티켓을 거머쥐었다.

서울남부지검의 김범기(26기) 차장은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채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전보됐고, 손 의원 사건 주임검사인 이방현 부부장은 “본인이 섭섭해 할” 포항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 의원 사건의 공소유지를 직관(직접관여)하기엔 먼 곳이다. 그의 상관이던 김영일 형사6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대검 수사정보1담당관이 됐는데, “부장 때 수사해 기소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의 공소유지를 잘하라는 당부성 인사가 아니겠냐”는 말이 나온다.

수사 검사들뿐 아니라 정부 방침과 다른 견해를 나타낸 기획 검사도 불이익을 받았다. 문 전 총장 재임 2년 차에 검경 수사권 조정 주무를 맡았던 김웅(29기)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은 이번에 한직인 법무연수원 교수로 발령이 났다. 그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초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불편·불안·부당한 ‘3불법’”(MBC 라디오), “거꾸로 가는 형사사법개혁”(대한변협 토론회)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었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이번 인사를 보고 “말과 행동이 너무 달라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전 정권 적폐 수사와) 똑같은 자세로, 정말 공정하게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당부를 떠올리면서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엄정히 수사해 주기 바란다’는 말 바로 뒤에 괄호가 있는 것을 순진한 검사들이 몰랐던 거다. ‘그렇게 하고도 무사하리라 자신한다면’이란 구절이 있었던 거지. 체크리스트라고 하면, (위험을)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과거 어떤 대통령 권력도 마찬가지다. 인사로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이다. 검사들이 사건이 아니라 청와대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놓으면 당분간 웬만한 검사들은 현 정권 겨냥한 수사, 꿈도 못 꾼다. 그러나 윤 총장 2년 임기는 이 정부 3~4년 차에 걸쳐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의 힘이 차츰 빠져나가는 시기다. 역대 최강의 특수 라인을 전면 배치한 이번 인사가 정권에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1.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2.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눈도 눈인데 바람이 살벌하네…귀성길 안전운전 필수 3.

눈도 눈인데 바람이 살벌하네…귀성길 안전운전 필수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4.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전도사 “빨갱이 잡으러 법원 침투”…‘전광훈 영향’ 광폭 수사 5.

전도사 “빨갱이 잡으러 법원 침투”…‘전광훈 영향’ 광폭 수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