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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마을버스 없어지면 주민들 발 묶이는 상황이었죠”

등록 2019-08-03 15:48수정 2019-08-05 09:36

[토요판] 커버스토리

서대문구 홍은1동 산비탈 마을에서
시장·병원·지하철까지 이어주는
11번 마을버스 노선 조정 움직임
주민들 서명운동, 토론회로 막아내
서대문11번 마을버스는 북한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홍은1동의 산비탈 마을과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주민들의 ‘발’ 노릇을 한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대문11번 마을버스는 북한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홍은1동의 산비탈 마을과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주민들의 ‘발’ 노릇을 한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 주민 한아무개(58)씨는 동네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을버스 노선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지난 1년간 반대 운동을 벌였다.

“우리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고 노인분들도 많이 사시는데, 병원과 시장이 있는 전철역(독립문역) 근처로 바로 가는 마을버스 노선은 하나 있어요. 이 노선이 사라지면 중간에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합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발이 꽁꽁 묶이는 상황이었죠.”

북한산 등산로 들머리에 위치한 홍은1동 산비탈 마을에 11번 마을버스가 더이상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이 동네는 성인 남성 걸음으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3호선 홍제역)까지 30여분,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20여분이 걸린다. 주민들은 마을버스 서대문11번을 타고 지하철역(홍제역, 독립문역)과 도심인 광화문 인근까지 나갈 수 있었다. 서대문구는 마을버스 서대문11번 노선을 조정한다며 종점인 홍은1동 산비탈 마을부터 홍제역까지의 구간을 폐지하고, 노선의 반대편 지점인 독립문역부터 신촌역 방향의 구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긴 논쟁 끝에 지난 5월 서대문구는 기존 11번 노선을 유지하면서 반대편 구간도 연장하는 결론을 내렸다.

구청이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홍은1동 주민들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 곳곳에 ‘주민의 발 11번 마을버스를 돌려달라’는 펼침막을 붙였다. 노선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자 8천여명의 주민들이 서명을 했다. 풀뿌리 주민자치운동단체 ‘서대문마을넷’이 주축이 돼 마을버스 11번 노선이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토론회 ‘마을버스 공론장’, 마을공동체 방송 ‘가재울라듸오’ 등을 통해서 알렸다. 당시 홍은1동 주민들은 “구청과 버스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우리 동네로 오는 구간을 폐지하고 대신 이용객 수요가 더 많은 구간을 늘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마을버스 노선을 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주민센터 앞 홍은대교에 내걸린 마을버스(서대문11) 노선 조정 반대 펼침막.  사진 서대문마을넷 제공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주민센터 앞 홍은대교에 내걸린 마을버스(서대문11) 노선 조정 반대 펼침막. 사진 서대문마을넷 제공
마을버스 간절한 산기슭 두 동네

구청과 버스회사의 움직임이 단지 수익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마을버스 11번 노선의 반대편 구간에는 버스가 절실히 필요한 또다른 산비탈 마을(신촌동, 옛 봉원동)이 있었다. 이 마을에선 수년 전부터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놓아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었다. 안산 기슭에 위치한 이 마을은 가장 가까운 역인 신촌역(경의중앙선)까지 걸어서 30분쯤 걸리고, 시내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쯤 걸린다. 안산을 끼고 있어 오르막이 가파르고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쪽으로 나가려면 대형 터널(금화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독립문역에서 연세대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들은 이 마을 앞에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단체인 봉원마을협의체는 2~3년 동안 활동가들이 버스 정책을 공부해 직접 여러 대안을 만들어 시청, 구청, 버스회사를 찾아다녔다. 박은수 봉원마을협의체 회장은 “동네 사람들이 시내로 가야 하는데 제대로 된 버스노선이 없었다. 서울시에선 주민등록상 봉원동 인구가 적어서 시내버스 노선을 신설할 기준에 못 미친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안산을 오가는 등산객, 봉원사 절을 오가는 신도들, 주소 이전은 안 하고 하숙만 하는 신촌의 대학생 등을 감안하면 유동인구와 실제 거주자는 주민등록상 인구보다 많다”고 말했다.

북한산 기슭의 홍은1동과 안산 기슭의 봉원동 두 동네의 교통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서대문구는 난감했다. 2년 전 구는 봉원동 주민이 지하철역으로 쉽게 나갈 수 있도록 시내버스 노선 신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선 승인 권한을 가진 서울시에서 인구수 등 노선 신설 여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기존 마을버스 노선을 조정해 구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서대문구는 지난해 6월께 마을버스 11번 노선의 홍은1동 쪽 구간을 줄이고 신촌 쪽 방향을 늘려 봉원동의 교통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꾀한 것이었다. 양쪽 마을 모두 교통이 취약하지만 홍은1동 쪽 사정이 그나마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국이었다. 기존 노선이 없어질 위기에 놓인 홍은1동 주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서대문구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저희는 구 전체를 보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동네마다 주민들 의견이 다르고 운수회사의 여건, 서울시 지침 등을 모두 충족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1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신촌동)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새로 생기자, 주민들이 모여 떡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이를 축하했다. 버스 유치 운동을 벌여온 박은수 봉원마을협의체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박은수씨 제공
지난 5월1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신촌동)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새로 생기자, 주민들이 모여 떡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이를 축하했다. 버스 유치 운동을 벌여온 박은수 봉원마을협의체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박은수씨 제공
정류장 생기니 마을잔치

마을버스가 없으면 지하철역과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나가기가 어려웠던 두 마을의 문제는 지난 5월 양쪽의 주장을 절충한 합의에 이르렀다. 서대문11번의 기존 노선을 유지해 홍은1동 주민들의 교통수요를 만족시키고, 애초 연장하려 했던 구간의 규모를 줄여 형편이 어렵다는 버스회사도 설득한 것이다. 버스 정류장이 없던 봉원동 마을 초입에 ‘봉원동 입구’라는 새 마을버스 정류장이 생기자 봉원동 마을 주민들은 다 함께 축하 행사를 열었다. 지난 5월1일 마을 어귀에 ‘경축, 11번 마을버스 봉원동 연장 운행’ 펼침막을 내걸고 동네 주민, 동장, 구의원 등 30여명이 모여서 떡과 과일을 나눠 먹었다. 오랜 세월 ‘버스 한 대’가 간절했던 주민들에겐 이날이 잔칫날이었다.

서울의 버스는 경기 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빨간 버스), 서울 내 도심을 잇는 간선버스(파란 버스), 그보다 작은 지역을 운행하는 지선버스(초록 버스)로 나뉜다. 마을버스는 지선버스가 다니기 어려운 소규모 구간을 다닌다. 적자 노선의 경우 서울시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마을버스는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며, 나머지는 버스회사와 서울시가 공동운영(준공영제)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홍은동 사례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마을버스 노선 결정에 반영된 첫 사례”라며 “여기저기서 교통수요는 증가하는데 버스노선의 신규 개설이 충분치 않다 보니 기존 노선을 조정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 간에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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