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순자씨와 골프장에서 걸어가는 모습. 국가기록원 누리집 갈무리
전두환(88) 전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전 재산 29만원”이다. 고급 차량에 수행비서를 데리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그가 법정에서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했다며 붙은 수식어다. 한 초등학생이 썼다고 알려진 ‘29만원 할아버지’라는 시도 있다. 그는 정말 통장에 29만원만 있었던 걸까.
2003년 2월7일 서울지검 총무부는 전씨의 미납 추징금 추징 시효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자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전 전 대통령의 재산명시 신청을 냈다. 재산명시 신청은 재산이 있으면서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중 314억원(추징률 14.3%)만 납부한 상태였다. 법원은 전 전 대통령에게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며 재산명시 명령을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은 본인이 법원에 출석해 재산목록이 맞는지 판사의 심리를 받아야 했다.
2003년 4월28일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 민사26단독 신우진 판사 심리로 열린 306호 법정. 전씨 쪽은 신 판사에게 재산 목록이 기재된 서류를 제출했다. 이 재산 목록에는 진돗개, 피아노, 그림, 병풍, 응접세트, 카펫, 에어컨, 텔레비전, 냉장고, 시계, 도자기, 컴퓨터, 식탁세트 등 총 수억원 상당의 품목이 들어 있었다. 신 판사는 재산 목록 서류를 살펴보며 혼잣말 비슷하게 “예금과 채권은 합쳐서 29만1천원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골프나 해외여행은 어떻게 다니느냐”고 했다. 전씨는 이에 “골프협회에서 전직 대통령에게는 그린피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내 나이가 일흔둘이다. 그동안 인연 있는 사람을 비롯해 측근, 자녀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 판사는 “주변인들이 추징금 낼 돈은 주지 않나”라고 물었고, 전씨는 “겨우 생활할 정도라 추징금을 낼 돈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보면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전씨가 본인 입으로 말한 적은 없다. 다만 그가 재산 목록의 예금 항목에 29만1천원을 써넣은 것은 사실이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2003년 법원으로부터 재산명시 명령 신청을 받고 (확인한 결과) 검찰이 금융자산을 추징해간 휴면계좌(통장)에서 총 29만원의 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액이지만 정확을 기하는 의미에서 기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씨 쪽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과거 기자들에게 낸 보도참고자료에서 “수십점의 유체동산을 압류 추징당했고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 두마리까지 압류돼 경매 처분됐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보도했다. 그 뒤 모든 언론매체와 정치권 등에서 사실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배짱을 부린다고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