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와 생계형 체납자 등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014년 2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되고 지난해 7월 복지 위기 가구 사전 신고제 등이 도입됐으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병원 치료를 포기하거나 탈북 모자가 사망하는 등 생명·건강 위협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건강보험이 사회보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지난해 7월 시민사회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생계형 체납자의 건강권 등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진정을 인권위에 냈다.
인권위 조사 결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징수의 편리성 등을 이유로 세대 단위로 보험료를 내야하는데, 납부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나 고령자 등 상당수의 피부양자에게 건강보험 연대납부 의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인권위는 “이 경우 부양의무자가 사망하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연대납부 의무로 인해 발생한 세대원 전체의 건강보험 체납을 모두 부담하게 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사회적 취약계층의 건강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중대하게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만과 일본 등 한국과 유사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는 나라와 견주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위는 “대만의 경우 성실하게 체납보험료를 납부하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해 연체금 감면과 보험료 무이자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반면 한국은 납부자 간 형평성을 이유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제도는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월 보험료 현황’ 조사 결과, 전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가운데 생계형 체납자로 분류되는 월 보험료 5만원 이하 세대의 비중은 약 63%로 집계됐다. 또 2017년 기준 ‘장기체납자 현황’ 분석결과, 저소득 체납자의 체납이 체납된 해당 연도에 중단되는 경우는 26%에 그친 반면 체납자 가운데 40%는 3년 이상 체납이 반복되거나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인권위는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체납보험료 조정 및 납부 유예제도 등 성실하게 체납보험료를 납부하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 △보험부담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 고령자·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급여제한 예외 확대 △고령자 중 납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연대납부의무 폐지 △경제적 빈곤으로 보험료 체납이 불가능한 결손처분 기준을 만들어 사회 취약계층 발굴 및 지원 강화 △불합리한 예금 통장 압류제도 개선 등을 권고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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