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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묘지 비석처럼…교문 기둥만 남은 ‘폐교의 풍경’

등록 2019-11-08 10:37수정 2019-11-08 13:27

출생률 낮아지며 문 닫은 학교들
폐교된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초등학교문암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폐교된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초등학교문암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널따란 운동장 한쪽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 옆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을바람에 떨어지고 있었다. 학교엔 인기척이 없었다. 폐교다. 1928년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오천리에 들어섰다가 학생 수가 줄면서 2012년 폐교된 지사초등학교의 풍경이다.

전국 17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9~2019년) 폐교된 곳이 무려 574군데에 이른다고 한다. 학생 수 감소와 학교 통폐합 등으로 문을 닫는 학교가 전국에서 늘어나는 추세다.

내륙 지역을 벗어나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폐교를 찾았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초등학교 구남분교장도 2014년에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되었다.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사는 주민 이종철(62)씨는 “폐교되기 전 학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어울려 사람이 사는 맛이 났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고 쓸쓸하다”라고 말했다.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자 잡초만 무성한 운동장에 어른 키만큼 커버린 억새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흔들리고 있었다.

학교의 지번을 알리는 표지판에도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학교의 지번을 알리는 표지판에도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경북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의 자천초등학교 상송분교장(1948년 개교, 2007년 폐교)을 찾았다. 마을의 한 할머니는 “우리 남편이 2회 졸업생이고, 우리 집 아이들도 모두 저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온 가족이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를 찾아서 자녀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새롭다”며 옛 기억을 되살렸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울긋불긋 색을 내뿜던 단풍잎들이 가을바람에 힘없이 함박눈처럼 떨어져 잡초만 무성한 운동장을 덮고 있었다.

개교와 폐교의 기록이 새겨진 교적비. 김봉규 선임기자
개교와 폐교의 기록이 새겨진 교적비. 김봉규 선임기자

강원도는 전남과 경북, 경남에 이어 폐교가 많다. 땅이 넓고 인구 소멸 현상이 심한 편이어서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초등학교 문암분교장에 가니 개 짖는 소리만 폐교 운동장을 맴돌았다. 학교 건물 문 위엔 ‘향토를 지키는 투철한 어린이’란 글귀가 세월을 피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훌쩍 커버린 나무들의 그림자가 오후 햇살을 받고 운동장에 길게 누워 있었다. 교문은 없어지고 교문을 붙들고 있던 기둥만 오래된 비석처럼 겨우 서서 버티고 있었다.

운동장 은행나무에는 올해에도 고운 단풍이 들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운동장 은행나무에는 올해에도 고운 단풍이 들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운동장 한 쪽에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운동장 한 쪽에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초등학교 구남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초등학교 구남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경북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자천초등학교 상송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경북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자천초등학교 상송분교장. 김봉규 선임기자

최근 들어 낮은 출생률은 인구 감소와 직결되고, 고스란히 학생 수 감소로 이어져 수많은 폐교를 낳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는 끊긴 지 오래됐고 빈집이 늘면서 시골 학교들도 폐교로 변해간다. 무성한 잡초로 뒤덮인 학교의 교문이 다시 활짝 열리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은, 이젠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 것인가?

성주 영천 포항 홍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9년 11월 8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2019년 11월 8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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