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예 기자가 지난 13일(한국시간) 미국 엘에이의 한 카페에서 왼손으로 야구공 두 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조미예 기자 제공,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스포츠 취재 중 야구는 가장 고된 종목이다. 시즌 중에는 주 6일 경기가 열리고, 주로 야간 경기라 마감도 늦다. 구단마다 연고지가 달라 여러 곳을 이동한다. 국내도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여성으로, 프리랜서로, 낯선 이방인으로 7년째 취재하는 한국 기자가 있다. 조미예(40) 엠엘비 전문기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이하 엠엘비) 30개 팀 선수들은 매년 각 162경기(정규시즌 기준)를 치른다. 4월부터 9월까지 주 6일(월요일 제외) 경기를 소화한다. 서부, 중부, 동부에 있는 30개 구장에서 한해 2430번의 승부가 난다. 공수에서 시시각각 전개되는 수많은 변주는 야구를 어렵게 만든다. 1970~80년대 총 127승을 거둔 엠엘비 투수 출신 호아킨 안두하르는 “야구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딱 한가지 있다.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알 길 없는 스포츠’ 드라마에 선택받은 엠엘비 선수에겐 명성이 따른다. 누군가의 꿈과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언제까지고 기억될 명장면을 연출해낼 수도 있다. 명성도 추억도 중요하지만 엠엘비 게임이 열리는 목적은 무엇보다 돈이다. 각 구단은 수익을 내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경기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거기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돈이 파생된다. 그래서 프로스포츠는 미디어와 공존·공생한다.
국내 엠엘비 팬의 확산은 투수 박찬호의 1994년 다저스 입단이 기폭제가 됐다. 범접할 수 없는 꿈의 리그로 여겼던 엠엘비의 벽을 한국 선수가 허물었기에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렸고, 당시 국내 신문·방송은 엘에이에 특파원을 보내 박찬호의 홈·원정 경기 소식을 연일 상세히 다뤘다. 이후 한국 선수들의 진출이 잇따랐고 활약상이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관심의 크기는 박찬호 진출 때에 견줘 조금 줄어들었다. 미국에 장기간 머물며 한국 선수들을 전담 취재하는 기자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아직도 소속 언론사 없이 ‘1인 미디어’로 미국에 체류하며 한국 선수들을 중심으로 엠엘비를 취재하는 한국 기자가 있다. 바로 조미예(40) 기자다. 엠엘비 팬들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조 기자는 2013년부터 포털 ‘다음’의 ‘조미예의 엠엘비 현장’, <엠비시(MBC) 스포츠플러스>(이하 엠스플)에 고정 칼럼과 사진, 영상을 게재하고 있다. 그는 류현진(다저스), 추신수(텍사스), 최지만(탬파베이) 등 한국 선수 소식을 언론사들보다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는 ‘조미예의 엠엘비 현장’ 소개란에서 “뛰고 또 뛰겠습니다”라고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2019시즌을 마친 뒤 현재 엘에이 본인 집에서 머무는 그의 엠엘비 취재기를 듣고자 전자우편과 메신저, 통화로 인터뷰했다.
―원래 사진을 전공했나?
“전공은 디자인이다. 평생 미술만 할 줄 알았다. 사진은 전공 수업과 동아리 활동으로 배웠다. 2002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도 디자인회사였다.”
―그런데 어쩌다?
“직장생활 2년 차에 권태기가 왔다. 원래 스타일이 뭘 결심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연수를 마치고 디자인 쪽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중 눈에 띄는 구인광고를 찾았다. 런던에 있는 로컬 한국 언론사였다. 우연히 그 옆에 사진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왜 눈에 들어왔는지 신기하다. 당시 영국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이하 이피엘)에서 박지성, 이영표 선수 등이 뛰고 있었는데, 이들 경기 사진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현장 취재하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워크퍼밋(취업허가증) 받아 3~4년 더 이피엘을 취재했다.”
―디자인회사는 그만뒀나?
“그랬다. 2008년 말 귀국해 스포츠 사진 제공을 전문으로 하는 한 언론사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KBO·이하 케이비오)를 1~2년 취재했다. 홀로 원하는 주제를 잡아 취재하는 것과 언론사 소속으로 취재하는 것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 다시 한번 삶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마침 국내 유명 광고대행사 쪽에 자리가 생겨 2010년 입사했다. 당시 20대 후반이어서 대우 받는 회사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2~3년 일하다 다시 나왔다.”
―왜 그랬나?
“광고대행사 여건은 좋았다. 그런데도 ‘나는 현장 취재가 적성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스포츠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돌고 돌아 앞으로 내가 할 일의 확신이 드니까 돈이고 뭐고 전혀 생각이 없었다. 연봉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결정했다.”
사진 조미예 기자 제공,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텃세는 못 느껴”
미국프로야구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0년대 미국 북서부에서 발생해 번성했다. 이 지역은 겨울에 매서운 바람과 추위로 야구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다. 그래서 연중 따뜻한 서남부가 동계훈련 장소로 좋다. 1년 내내 따뜻한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는 시즌을 준비하는 엠엘비 팀들의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매년 1~2월 각 구단이 이들 지역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면 봄과 함께 야구 시즌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30대 초반에 인생의 모험을 걸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때마침 류현진이 2013년 엠엘비에 진출했다. 스프링캠프부터 류현진을 취재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광고대행사 팀장을 설득하느라 2013년 6월 퇴사하고, 7월에 혼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 국내 한 스포츠신문 객원 통신원으로 출입증을 받아 남은 시즌을 취재했다. 2014년 1월부터는 스포츠 인터넷언론사 ㅇ사로 입사해 스프링캠프부터 취재했다. 그런데 취재 방식에서 ㅇ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 2015년 1월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엠엘비 출입 절차는 까다롭지 않나?
“출입증 발급 기준이 있다. 한 구단을 3년 이상 전담 취재하기 전에는 야구장 갈 때마다 ‘일일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나는 다저스가 2014년부터 바로 시즌 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정규시즌 출입증은 엠엘비 사무국이 아닌 각 구단이 관리한다. 내가 계속 취재할 것을 알고 다저스가 그렇게 한 것 같다.”
―야구로 치면 나 홀로 엠엘비 주전 5년 차다.(웃음)
“경력이 많이 쌓인 걸 느끼는 부분이 사진기자석 배치다. 올해 포스트시즌 때 나만 자리 배정을 받았다. 다른 한국 언론사는 취재석을 못 받았다. 매체 규모 따지지 않고 평소 얼마나 자주 취재했는지 히스토리를 본 거 같다. 사진기자석은 구장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더그아웃 옆에 10~15개 있다. 다저스타디움은 정규시즌 때는 선착순 원칙인데, 지정석이 딱 4자리(1, 3루 각 2자리)다. 게티이미지와 <에이피>(AP) 통신, <엘에이(LA) 타임스>, 그리고 나다. 일반 사진기자석은 그물이 없어 안전상 이유로 노트북을 못 켜게 해 실시간 마감이 안 되지만, 지정석은 그물망이 있어 노트북을 켤 수 있다. 류현진 등판 날은 그마저도 나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준다. 일종의 대우라고 생각한다.”
―텃세는 없었나?
“텃세라고 하긴 그렇지만, 이 부분은 한국이 더 심한 것 같다. 케이비오 취재할 때 선배들한테 ‘여자는 어차피 야구판에서 6개월 못 넘긴다. 너도 힘들 거야’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무거운 카메라 들고, 지방을 왔다 갔다 하고, 밤늦게 끝나니 힘든 게 사실이다. 야구장 취재석 자리 배정할 때 한국은 대형 언론사 중심이고, 인터넷매체는 까다롭게 내준다. 엠엘비는 상당히 열려 있는 편이다. 여기는 출입증에 바코드가 있어 기자가 취재를 어느 정도 했는지 기록이 전부 남는다. 대형 언론사지만 일년에 한번 야구장 찾는 기자와 중소 언론사라도 매일 야구장 취재하는 기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합리적 시스템으로 보인다.
“2013~14년 류현진 통역 마틴 김이 있었다. 그가 나중에 전한 말로는 류현진 데뷔 첫해에는 한국으로 보도된 내 기사를 전부 영어로 번역해 구단에 보고하느라 고역이었다고 했다.”
―미국 기자들의 인상적인 점은?
“백발의 기자들이 정말 많다. 여기자가 많다는 점도 놀라웠다. 친한 <유에스에이(USA) 투데이> 기자는 할머니다. 굉장히 젊고 에너지 넘친다. 연차가 쌓이면 데스크에 앉거나 현장을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언론사 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저 나이에 어쩌면 저렇게 현장을 누비며 뛰어다닐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항상 한다.”
다저스의 목소리로 불리는 캐스터 빈 스컬리는 1950년 브루클린(다저스는 1958년 시즌을 앞두고 동부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주 엘에이로 연고지를 옮김) 시절부터 2016년 시즌까지 다저스 경기만 67시즌을 전담 중계하고 은퇴했다. 다저스타디움 기자석은 빈 스컬리를 기리는 의미에서 2001년부터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로 불린다.
―의사소통은 괜찮나?
“원래 영어는 아예 못했다. 영국 어학연수 때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 건 아니다. 그나마 그때 조금 영어를 배워 미국 올 때 두려움은 없었다. 원래 무데뽀 성격이 있어서 영어 못한다고 걱정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취재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나?
“칼럼 기고를 독점 계약하고 있는 ‘다음’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주고 있다. 연봉은 취재 경비 쓰고 나면 안 남는다.(웃음) 받는 돈 전부 취재하는 데 쓴다. 돈 벌겠다고 뛰어들었으면 절대 못 했을 거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나에겐 절실하다.”
조미예 기자(오른쪽)가 2018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뛴 오승환 선수를 더그아웃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 시즌에 팀당 홈·원정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려면 잦은 이동과 시차에 적응해야 한다. 조미예 기자 제공
집과 야구장이 전부
엠엘비 각 팀은 정규시즌 162경기 중 절반은 원정경기를 치르러 미국 전역을 누빈다. 미국은 시간대가 4개(태평양, 산악, 중부, 동부)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시간이 늦어지고 인접 시간대는 한시간씩 차이 난다. 엠엘비 선수는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에 시달린다. 이는 이들을 따라다니는 야구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야구 기자 출신의 레너드 코페트는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외로움은 야구 생활의 가장 기본 사항 중 하나’라고 썼다.
―일과는?
“시즌 중에는 딱히 일과라고 할 게 없다.(웃음) 오후 2시쯤 야구장에 출근해 선수 인터뷰와 훈련 모습을 체크한 뒤 경기를 취재한다. 집에 오면 자정쯤 된다. 이때부터 칼럼을 쓰고 사진을 정리한다. 새벽 2~3시쯤 잔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일어나 칼럼과 사진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시즌 중에는 이런 날의 반복이다. 집과 야구장이 전부다.”
―시즌 중 장기·단기 취재 일정은?
“류현진 등판 경기를 일순위로 놓고 일정을 짠다. 그런데 일정이 갑자기 변할 때가 많다. 이게 가장 어렵다. 미국은 항공, 숙박 예약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등판 일정이 갑자기 변경돼 예약했던 항공료와 숙박비를 모두 날리거나 취소 수수료를 낸 게 한두번이 아니다. 류현진 등판이 없는 날에는 추신수와 강정호, 최지만 선수를 취재했다. 오승환, 이대호, 박병호, 김현수 선수가 함께 뛸 때는 정말 정신없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30개 구단을 전부 취재했다.”
―이동은 어떻게 하나?
“엘에이에 집이 있어 서부 쪽은 자동차로 이동한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는 편도 7시간, 애리조나는 6시간, 샌디에이고는 2~3시간 운전해 간다.”
―동부 쪽은?
“중부와 동부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도착해서는 차를 빌리거나 우버를 탄다.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는 미디어 주차장도 주차비를 받는다. 하루 40달러에서 50달러다. 그럴 때는 돈을 아끼려 우버를 이용한다. 다저스타디움은 다행히 미디어 주차장이 무료다.”
1962년 개장한 다저스타디움은 현재 엠엘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1912년),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1914년)에 이어 세번째로 오래된 야구장이다. 대중교통으로 방문이 쉽지 않은 골짜기 위에 지어져 대형주차장이 야구장을 둘러싸고 있다.
―비행 마일리지, 자동차 주행거리는 얼마나 되나?
“2년 전 차를 아예 구입했다. 그 이유는 원래 차를 리스해 탔는데, 3년 동안 마일리지 초과 비용만 800만원이 나왔다. 리스 차가 이렇게 마일리지 초과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야구장 취재는 어떻게 하나?
“홈경기 기준으로 경기 시작 4시간 전쯤 각 구단 클럽하우스가 30분 정도(구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음) 개방된다. 이때 선수와 인터뷰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전 예민한 상태인 선발투수와는 눈도 안 마주친다. 일종의 관행이다. 미국에선 감독이든 선수든 기자가 강도 높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때론 치열하게 주거니 받거니 한다. 경기 후에도 클럽하우스가 개방된다. 선발투수와 감독은 기본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클럽하우스에서 사진 촬영은 안 되고 동영상 촬영만 가능하다. 선수에게 사진과 사인 요청도 금기시된다.”
―사진은 안 되는데 동영상은 되나?
“그게 메이저리그 룰이다. 동영상도 인터뷰만 된다. 그것도 배경은 해당 선수 라커룸만 보여야 한다. 선수 라커룸 전체를 스케치 촬영하는 건 안 된다. 기자 복장도 비즈니스 평상복이 규정이다. 찢어진 청바지, 반바지, 슬리퍼도 안 된다.”
―음식은 적응됐나?
“식사는 제때 하려고 한다. 구단마다 기자식당이 따로 있다. 전부 돈 주고 사 먹는다. 입맛이 한국 토종이라 힘들다. 메뉴도 닭고기, 소고기 등 항상 똑같다. 경기 끝나고 집에 오면 자정이어서 점심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그래서 한식당 찾으러 다닌다. 아니면 국물이 있는 쌀국수를 먹는다.”
야간 경기가 있을 때 기자들은 인터뷰와 기사 작성 때문에 선수들보다 1~2시간 늦게 야구장을 빠져나간다. 퇴근하면 식당은 물론 호텔 룸서비스도 안 되는 시간일 때가 많다.
―장비도 만만치 않겠다.
“사진 장비는 보디와 망원렌즈 등 전부 3천만~4천만원 한다. 무게는 총 25㎏ 된다.”
―경기당 사진은 몇장 찍나?
“평균 4천~5천장, 류현진 경기는 8천장 정도다.”
엘에이(LA) 다저스는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지정석 4곳 중 한 자리를 조미예 기자에게 배정한다. 다른 세곳은 게티이미지와 <에이피>(AP) 통신, <엘에이(LA) 타임스> 기자가 앉는다. 조 기자가 다저스타디움 사진기자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미예 기자 제공
여성 기자의 어려움은?
1908년 설립된 미국야구기자협회는 엠엘비 야구장에 기자실 설치를 각 구단에 요청해 배타적으로 운영해왔다. 여성과 방문객, 자유기고가 등은 출입이 금지됐었다. 1950년대 들어 통신사 <웨스턴 유니언>이 송신 요원으로 여성들을 채용하며 기자실 출입을 둘러싼 성차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여성 기자로서 어려움은 없나?
“지금은 내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어려운 점은 잘 모르겠다. 엠엘비는 여성 리포터의 클럽하우스 출입이 많아졌다. 여성, 남성보다는 기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사실 처음 클럽하우스 출입할 때 경기 끝난 뒤 샤워 마치고 수건 하나 두른 채 나오는 선수들이 낯설고 민망하긴 했다. 근데 이제는 그것도 익숙하다.(웃음)”
―취재 주제를 잡는 기준이 있나?
“무조건 현장 우선이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좋은 취재가 된다.”
―인터뷰가 사진 찍을 때 도움이 되나?
“당연하다. 아는 만큼 찍고, 보이는 만큼 찍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사소한 말도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인터뷰하면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축적한 콘텐츠가 상당하겠다.
“데이터를 보관한 외장하드 용량이 벌써 20테라바이트(TB)다.”
―사진 철학은?
“사람 표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거기엔 희로애락이 다 있다. 기사도 사진도 사람 냄새 나는 게 좋다.”
―취재기자로서 야구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룰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 선수의 특징과 사연을 알아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야구의 매력은?
“볼수록 재미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류현진이 처음 완봉승했던 경기, 그리고 올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류현진이 홈런을 날린 경기다. 아, 정말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 류현진이 불펜으로 투입돼 세이브를 기록한 경기다. 상기된 얼굴로 불펜에서 뛰어나오는 류현진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장 가까운 선수, 인상적인 선수는?
“류현진, 추신수 선수와 가장 친하다. 예전엔 다저스의 후안 우리베와 친했고, 요즘엔 저스틴 터너다. 인상적인 선수는 투수 클레이턴 커쇼와 리치 힐이다. 힐은 평소엔 천사 같은 미소와 말투를 지녔지만 마운드에서 자책할 땐 완전히 딴 사람 같다. 커쇼는 최고의 투수지만 정말 열심히 운동한다. 동시에 개그 욕심이 있어 웃기려고 엄청 노력한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웃음) 그래서 정이 더 간다.”
―옆에서 지켜본 엠엘비 선수는 어떤가?
“가족을 매우 중시한다. 원정경기도 항상 가족과 함께한다. 시즌 중 ‘가족의 날’을 만들어 야구장에서 파티도 한다. 올해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했을 때 많은 선수가 눈물을 흘렸다. 저스틴 터너는 월풀 앞에 쭈그려 앉아 혼자 울었다고 한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크다.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지만 돈을 많이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절대 안 한다.”
2000~2001년 다저스 중견수를 본 톰 굿윈은 원정경기에 앞서 훈련 중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외야 펜스 이곳저곳에 야구공을 던지고 튀어나오는 걸 잡는 행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굿윈은 수비할 때 타구가 펜스를 맞고 어디로 튀는지(엠엘비는 야구장마다 펜스 구조가 다름) 점검했던 것이라고 한다. 엠엘비 선수가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엠엘비 전문가 잭 햄플은 저서 <야구교과서>에서 ‘마이너리그 선수 중 많은 수가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세상의 망각 뒤로 사라진다’고 이를 빗댔다. 굿윈의 사례는 엠엘비 선수가 왜 다른지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다.
메이저리그 취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정 변경이다. 원정경기 일정이 바뀌면 사전 예약한 항공료, 숙박료 등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 취소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조 기자가 야구장 러닝트랙에서 카메라를 들고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조미예 기자 제공
“혼자라는 두려움은 없다”
―엠엘비에서 뛰는 한국 선수가 없게 된다면?
“꼭 엠엘비여야 하는 건 아니다. 취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라도 갈 것이다.”
―종목, 지역 상관없나?
“그렇다. 나는 엠엘비 전문기자가 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스포츠 사진 찍는 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사실 이피엘도 취재하고 싶다. 시기가 안 맞아 못할 뿐이다.”
―나 홀로 취재하는 외로움은 없나?
“현장 소식을 내 스타일로 작업하는 지금이 좋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조직에 남아 있으려고 했을 것이다. 현재의 조미예, 그리고 나의 삶에 만족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 후회가 없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다 보니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혼자 취재하는 일이 쉽진 않다. 하지만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말 원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섰다면 생각은 멈추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 순간부터 생각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면 실행은 어려워진다. 후회라는 거는, 일단 해보고 후회하라고 있는 말 같다.”
―현재 본인 인생을 야구 점수로 기록한다면?
“4회 초에 점수는 0-0. 인생을 90살까지 산다고 볼 때 이제 4회 초 정도 뛴 거 같다.(웃음) 난 2-1로 이기는 경기를 가장 좋아한다. 아직은 점수가 나지 않은 것 같다. 50대에는 무엇이라도 하나는 이루지 않을까 기대하며 1점은 그때 내는 걸로 하겠다. 그리고 60대에 한번 더 점수를 내어 성공한 인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본인이 투수라면 주무기를 어떤 구종으로 하고 싶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문득 슬라이더 생각도 드는데, 마지막 승부처에서 공을 하나 던지라면 맞더라도 정면승부 하겠다. 직구다.”
―조미예의 꿈은?
“백발에도 현장 취재하는 기자다. 그게 인생의 목표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참고문헌: 레너드 코페트 <야구란 무엇인가>(2009·황금가지), 잭 햄플 <야구교과서>(2009·보누스), 최영조 <메이저리그 견문록>(2015·이상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