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봄바람영화사 제공
‘그 세대가 무슨 고생?’ 비난도 여전 한국 노동시장 연구논문들 살펴보니
젊을수록 여성들 노동시장 잔류해도
같은 계층서 임금 성별 격차 확대돼
20대도 같은 조건 여성 17% 덜 받아 남성 육아휴직 증가 등 ‘변화 중’이나
선진국 등 비해 ‘갈 길 먼’ 현실 봐야
온라인도 ‘남녀 대결 구도 배격’ 대세 “50년대, 60년대생 분들의 고생은 이해한다. 그런데 82년생이면 나랑 같은 세대인데 그때 무슨 고생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deux****) “82년생은 72년생 62년생에 비하면 꿀 빤 세대인데 어디서 명함을 내밀고 영화까지 싸지르는지 어이가 없다.”(dica****) 이 시대를 사는 30대 여성의 애환을 그린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18일 만에 누적 관객 수가 3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 바깥에선 논란이 여전하다. 원작소설을 두고 일었던 반페미니즘 진영 일부의 ‘댓글 테러’가 영화를 두고서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공격의 핵심 논거는 남녀 차별이 사라지다시피 한 시대를 산 젊은 여성들이 피해자 시늉을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합당한 지적일까? 세대와 성별을 열쇳말 삼아 한국 노동시장 현실을 분석한 최신 연구결과물들을 바탕으로 그 타당성을 짚어봤다. ■ ‘상층 노동시장’ 진입 여성, 넷 중 하나 ‘이탈’ 지난 8월 이철승 서강대 교수(사회학)가 출간한 <불평등의 세대>는 올해 하반기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은 책 가운데 하나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세대 불평등 논의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세대뿐 아니라 성별에 비춰 한국 노동시장의 흐름도 함께 분석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이용해 성별·연령대별 상층(상위 약 20%) 노동시장 진입률과 생존율을 살폈는데, 상층 노동시장에서 남성 대비 여성 비율은 2004년 25.4%에서 2015년 31.6%로 증가했다. 세대별로 나눠보면, 2015년 50대 여성(386세대)의 상층 노동시장 생존율은 10%에 채 못 미쳤지만, 40대(70년대생) 생존율은 10% 후반대로 높아졌고 30대(80년대생) 생존율은 30%가량으로 급격하게 올랐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과거보다 남성들과 더 동등하게 경쟁하며 한국형 위계 구조의 한구석을 허물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현실이 가려져 있다. 2015년 상층 노동시장 생존율이 30%였던 80년대생 여성들의 2004년(당시 20대 후반) 조사 때 상층 노동시장 진입률은 40%가량이었다. 설령 여성이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생존율이 11년 사이 10%포인트 떨어진 셈이다. 이 교수는 “네 명 중 한 명은 출산을 위해 노동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아마도) 반강제적으로 철수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상층 노동시장을 떠난 수많은 ‘넷 중 하나’를 유형화한 캐릭터인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5~54살 기혼여성 가운데 결혼, 임신·출산,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관둔 경력단절 여성은 2018년 185만명(20.5%)에 이른다. ■ 2010년대 들어 더 벌어진 성별 임금 격차 그렇다면 상층 노동시장 잔류에 성공한 ‘넷 중 셋’은 어떨까. 이 교수는 대기업·정규직·유노조 등 세 가지 요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충족하는 상층 노동시장의 남성과 여성이 하층(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여성 노동자보다 얼마나 더 받는지를 분석했다. 2004년 조사 때 상층 남성은 146%를, 상층 여성은 98%를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층 여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상층 남성은 246만원, 상층 여성은 198만원을 받았다는 얘기다. 2015년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상층 남성은 180%(280만원), 상층 여성은 111%(211만원)로 달라졌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층(남성·여성)과 하층 여성 사이 간극이 더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같은 상층이라 해도 남녀 격차가 확대됐다는 점이다. 2004년 48만원이던 상층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2015년엔 69만원으로 늘어났다. 소득 양극화와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확대가 동시에 진행된 셈이다. 이 교수는 “(노동시장 상층 여성인) 교육받은 여성들이 오히려 더 큰 차별을 받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한국형 위계 구조의 중요한 속성은 남성과 여성 간의 성차별이며, 2010년대에 이른 노동시장에서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 ‘같은 조건’ 20대 여성 소득, 남성의 82.6% ‘김지영’보다 젊은 세대인 20대의 사정은 어떨까. 미국 캔자스대의 김창환 교수(사회학)와 오병돈 연구원이 올해 6월 발표한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란 제목의 논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두 사람은 한국고용정보원의 대졸자 직업 이동 경로 조사(GOMS)를 이용해 소득 있는 21~29살 미혼자 7만여명의 월평균 소득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학 졸업 2년 이내 여성의 월평균 소득은 173만원으로 남성(216만원)의 80%로 나타났다. 대기업 근무 비중은 남성이 더 높았지만, 시간제 근무자 비율은 여성이 남성의 두 배였다. 연구진은 370개 대학, 205개 세부 전공, 학점, 국외 어학연수 여부, 고교 계열 등 변수를 통제해 가족 배경이나 학교·학과·학점 등 ‘스펙’이 같은 경우 임금도 비교했다. 조건이 같더라도 20대 여성의 월평균 소득은 남성의 82.6%에 그쳤다. 경력단절 단계 이전인 사회초년병 시절부터 남성(평균)과 여성(평균)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의미다. 이 논문을 다룬 기사들 댓글에서는 남성들이 초과근무를 더 한다거나(2016년 기준 남 45.4시간, 여 39.7시간), 위험수당을 받는 직종에 근무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등 반박도 이어졌다.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으나, 이런 이유만으로 20% 가까운 임금 격차가 모두 설명될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주장 자체가 취업시장에서 남성 선호 현실을 외려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10월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영화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30대 여성의 애환을 그린 이 영화는 개봉 전 반페미니스트 남성들에 의해 ‘평점 테러’와 ‘댓글 테러’를 당했으나, 개봉 18일 만에 누적 관람객이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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