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강제동원문제에 관한 한·일 법률가 공동선언 기자회견.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법률가단체 13곳이 피해자 인권 회복을 위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0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와 일본변호사연합회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취지의 공동선언을 한 뒤 9년만에 나온 양국 법률가들의 공동선언이다.
20일 오후 서울과 도쿄에서는 한일 법률가 단체들이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한·일 법률가 공동선언’ 내용을 공개했다. 서울 서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는 △민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 △인권법학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등 6개 단체가 참여해 공동선언을 함께 했다.
일본 도쿄에서도 △오사카노동자변호단 △사회문화법률센터 △자유법조단 △청년법률가협회 변호사 학자 합동부회 △일본민주법률가협회 △민주법률협회 △징용공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일본 법률가 유지 모임 등 7개 단체 대표가 모여 같은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읽었다. 일본에서는 이들 단체 외에도 변호사와 연구자 123명 등이 공동선언에 찬성하는 뜻을 보탰다.
이들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더라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법치주의 아래에서 한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일본기업은 판결을 수용하고 일본 정부는 이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배상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공동선언문에는 “한일 양국 정부와 일본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명예와 권리 회복을 위해 독일에서의 ‘기억·책임·미래’ 기금, 중국인 강제연행·강제노동사건에서의 일본 기업과 피해자와의 화해에 기초한 기금에 따른 해결 등을 참고하면서 가능한 조처를 신속히 도모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0년 독일 정부와 6천여개 독일 기업이 조성한 ‘기억·책임·미래 기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 노동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기금으로 100개국 피해자 166만명에게 44억유로(약 5조8515억원)가 지급됐다. 중국 강제연행 피해자들 일부도 일본 법원에 가지마 건설과 니시마츠 건설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뒤 승소해, 기업들이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배상금을 받은 선례가 있다.
박찬운 인권법학회 회장(한양대 교수)은 이런 사례를 제시하며 “어떤 방법이든 중요한 것은 양국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인권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분명한 책임의식,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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