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씨의 유가족과 직장 동료,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와 제도개선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마공원) 기수 문중원(40)씨가 지난달 한국마사회의 승부조작 등 비리 행태를 고발하고 숨진 가운데, 경마기수 10명 중 6명은 부당한 지시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이 11일 발표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기수의 절반이 넘는 58.5%가 부당한 지시를 경험했고, 60.3%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때 어떤 불이익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85%가 ‘말을 탈 수 없다’고 응답했다. 문중원씨가 생전에 감내한 ‘갑질문화’와 비리가 경마업계에 만연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전국 전체 경마기수 125명 가운데 75명이 참여했다.
기수들이 경험한 부당 지시는 대부분 승부조작 의혹과 연결돼 있다. 응답자의 93.3%는 부상당한 말에 타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답했고, 37.2%는 한 단계 높은 군의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 벌이는 ‘승군전’ 순위를 조작하도록 지시받았다. 한국마사회법은 경마 경주에서 말의 전능력을 발휘시키지 않은 기수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응답자의 29.9%는 ‘말의 전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지시받았다고 했다. 숨진 문씨 역시 유서에서 조교사(감독) 등으로부터 “말들의 주행 습성에 맞지 않는 작전을 지시”받거나 “아예 대충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썼다. 문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부당한 지시를 받아 늘 힘들어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해 훌륭한 조교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정정당당한 방법을 택하면 늘 엉뚱한 일만 생겼다”고 말했다.
기수들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한 계약관계 때문이다. 조사에 참여한 기수의 41.4%는 아예 노동조건 계약서를 보지 못했고, 서명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문씨가 근무했던 부산경마공원에선 기수 56.3%가 노동조건 계약서도 없이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서를 쓰더라도 계약의 내용은 대개 기수에게 불리하다. 어떤 기수와 계약할 것인지는 조교사의 마음에 달렸다. 조교사는 언제든 계약을 바꾸거나 해지할 수 있다. 기수의 경기 참여 여부는 물론 말 배정 권한까지 갖는다. 한 번 경주를 할 때마다 9만6천원을 받는 기수는 기승 계약만 하고 경주 출전을 못할 경우 월수입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150만원 안팎에 그친다. 기수가 조교사의 ‘갑질’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운수노조는 “2017년 이후 부산경마공원에서 목숨을 잃은 네 명의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무한 경쟁 속에 과도한 업무와 갑질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선진 경마’라는 포장으로 경마를 투전판으로 만들고 있는 마사회는 공공기관으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정부가 경마업계 내 불공정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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