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컨설팅 업체 에프엠어소시에이츠가 한국마사회에 지난 6월 제출한 정규직 전환 세부 추진방안 최종보고서
공공기관들이 정규직 전환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민간업체에 용역을 맡겨 실행한 컨설팅 보고서 중에서 ‘자회사 몰아가기용’ 보고서가 상당수 발견됐다. “핵심업무가 아닌 용역(노동자들)을 직고용하면 효율성이 저해된다”는 논리를 자회사 설립 근거로 제시하는가 하면, 정부 가이드라인을 왜곡해 생명안전직군이 아니면 자회사로 보내도 된다는 근거를 마련해준 보고서도 있었다.
<한겨레>가 19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자회사를 설립했거나 설립 예정인 공공기관 32곳(정부출연연구기관 21곳, 발전5사는 공동컨설팅)의 컨설팅 보고서 34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올바른 정규직 전환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목적의 컨설팅 보고서임에도 직접 고용 방안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자회사에만 초점을 맞춘 보고서가 상당수였다. 에프엠어소시에이츠가 작성한 한국마사회의 163쪽짜리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 세부 추진 방안 보고서는 자회사 설립 전략 수립으로 시작해 자회사 설립 일정으로 끝난다. 보고서가 나온 올해 6월에는 노사 간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는데도 보고서는 마치 자회사 설립을 전제한 듯 쓰였다. 보고서에 적시된 자회사 설립 근거는 “용역 업무는 핵심업무가 아닌 시설 관리 업무여서 직고용 시 기관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지난해 5월 석유공사에 제출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세부 추진 방안 보고서
갈렙앤컴퍼니는 울산항만공사 특수경비 노동자들이 직고용을 요구하며 청와대 농성을 벌이던 지난해 10월 공사 쪽에 자회사 설립을 전제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먼저 자회사를 설립한 여수광양항만공사와 인천항만공사 등을 벤치마킹 사례로 제시하며 자회사 세부 실행 방안과 조직 운영 계획안을 세세히 담았다. 결국 자회사가 설립됐고, 이는 노사 합의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인 공공기관과 컨설팅사의 합작품이었다.
‘국민의 생명·안전에 밀접한 직군은 직고용해야 한다’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왜곡해 ‘생명안전직군이 아니면 자회사를 설립해도 된다’는 근거를 마련해준 보고서도 많았다. 한국공항공사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 세부 추진 방안 최종보고서’를 보면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생명·안전 밀접성을 기준으로 공사의 직고용 인력 규모를 산정했다. ‘소방구조 252명과 폭발물 처리 45명 직고용’이 1안으로 제시됐는데, 노사전 협의회기구에서 이 안이 채택되면서 나머지 3850여명은 모두 자회사 전환으로 결정됐다. 능률협회컨설팅은 인천공항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공사, 석유공사 보고서도 생명안전직군 밀접성으로 직고용 인원을 산정했다.
노무법인 서정이 지난해 3월 발전5사에 제출한 최종보고서
‘발전5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컨설팅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서정 노무법인은 도심에서 떨어진 발전소의 소방·방재 직군 특성상 “일반 국민의 아니라 직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업무이므로 생명안전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중부발전은 이를 근거로 직고용을 요구하는 소방직 노동자들에게 “직고용 대상이 아니니 자회사로 가라”고 압박했다. 중부발전 소방시설직군 노동자 20여명은 청소·특수경비·시설직이 자회사로 전환된 상황에서 1년째 직고용 요구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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