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과 손동작’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한 뇌병변 장애인에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인감증명 발급을 거부한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4일 “장애 유형과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인감증명 발급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명확인 및 인감증명 사무편람(사무편람)’을 개정할 것을 행안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진정인 ㄱ씨는 지난 6월 활동지원사와 함께 주민센터에 방문해 인감증명서 발급을 신청했지만, 해당 주민센터 담당 공무원 ㄴ씨는 ‘뇌병변 장애인 등은 통상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므로 법원에서 피성년후견제도 판결을 받아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발급을 거부했다. 이에 ㄱ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성년후견이란 판단능력이 충분치 않은 고령자나 장애인의 재산과 신상을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관리하는 법률 제도로, 장애 정도를 가정법원에서 판정해 정도에 맞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ㄴ씨는 인권위에 “사건 당시 뇌병변 장애인을 접촉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며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방안을 모색해 봤지만 역부족이어서 사무편람에 따라 법원 판결로 성년후견인이 인감증명서 발급을 신청하도록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결과, ㄱ씨는 뇌병변 장애로 필기나 말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우나 주먹을 쥐고 손을 세우는 손짓으로 ‘예’, ‘아니오’를 답할 수 있으며, 활동지원사도 ‘몸짓과 손동작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며 ㄱ씨와 소통을 권했지만, ㄴ씨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발급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무편람은 인감증명 발급 때 정상적인 사고를 ‘구술 또는 필기로 성명·주민등록 번호·주소’로 표시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지만, 본인 의사 표현 여부가 확인될 때는 다른 방법으로 인감증명서 발급담당자가 의사 표현을 판단할 수 있다면 발급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권위는 ㄴ씨가 ㄱ씨의 장애 상태와 정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의사소통의 노력 없이 외양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서 배제한 것이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서의 차별금지)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 사건에서 ㄴ씨와 같은 업무 담당자가 장애인의 의사를 판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관해 참고할 만한 구체적 예시가 사무편람에 없기 때문에 ㄴ씨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사무편람의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에 사무편람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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